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1 청소년 현대 문학선 3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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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
많이 들었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뼛속까지 깨달아지더라 .
또한 강한 엄마가 강한 아이를 키워낸다고도 하지 않던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태가며 두 아들을 키우는,,그리고 그 어머니에 의해 키워지는 두 아들의 성장기를 수채화처럼 그려낸다. 작가 김주영의 자전적 소설이다. 비록, 하찮은 딱지를 많이 취한것에도 승리감과 승리자의 위치를 깨닫는 아이들,..  그리고 승자가 가져야 할 몫의 쾌감을 그들은 누릴 줄 알았고, 패배자의 내뱉는 악담에도 덤덤히 대응할 줄도..그들은 알았다. 세상이 지식과 가르침만으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하루 살아내며 배워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예쁘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그들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조용히 열거하며 아픔을 엷게 그려내고 있다. 동시대적 공감으로 내게 큰 감동과 기억을 되돌려보는 시간을 준 책이다. 내 기억을 돌이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내 아이들과 나를 강하게 하기위한 담금질의 시간이기도 했다. 난 내가 가진 풍부한 감수성이 가끔 두 아들에게 그다지 좋지만은 않을거라는 생각...가끔 해본다..(내 남편이 평소 입버릇처럼 얘기하다 보니 나도 그런 생각에 물드나보다.)  작은 녀석 무지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하다..감정 풍부해 다 큰 녀석이 아무데서나 이 어미한테 뽀뽀를 서슴치 않는다..당하는(?) 난 좋은데, 그때마다 남편이 도끼눈을 하고 우리를 질시한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 말을 하며 졸업의 감격만을 담고 있었을까..아닐 것이다. 말이 6년이지..6년을 하루같이 맘 졸이며, 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으리라. 난 그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도 엄마이니까...그리고 내 엄마를 생각해본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렸을 내 엄마를...아직도 어눌하게라도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하는 이 못난 나의 엄마를.. 혼자 있는 어머니와 두 아들, 그 주위에서 존재감 없어 보이던 삼손이란 큰 존재도, 그리고 작가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작은 아픔들을 사이사이 끼워 가며 이야기는 대답을 들려준다. 왜 고기잡이가 갈대를 꺽으면 안되는지를.. 그리고 나는 기억한다. 갈대를 꺽지 않은 그 고기잡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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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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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무슨 차이가 있느냐...? 면 
살아지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숫자로 점철된 시간이 흐르는것이고,,,,  살아내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혼 힘을 다해 견뎌내고, 악다구니를  써 대는 것이다.  


난, 고흐를 참 좋아한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를 들라면, 그의 그림을 한번 보고나면 절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않은 최면같은 힘이 있기때문이리라. 보고픈 님의 얼굴마냥 잔상이 맴돈다. 그런데 또 한 화가가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그의 그림을 알게 되었다.  미친듯이 그림에 살다간 고갱의 뜨거운 삶이, 나를 열병으로 앓게 만들었다. 평범하고 너무나 안락해서 무료하기조차했던 생을 살아가던 그가 , 눌려있던 그림의 욕망을 쫓아  모든것을 내던지고 미친듯이 살아내는 고갱의 이야기가 나를 앓게 만든것이다. 
 

   
  이제 그는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온통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그림들엔 이상하게도 그를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는 숨이 막혔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렇게 미친 듯이 그림에 빠져 있었고, 그림엔 그것들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그림을 뺀 그의 모든 생활은 엉망이었고, 비도덕적이며, 지극히 비 정상적이었다. 보통 예술가들은 기이하다고 한다. 피가 뜨거워서 그런가보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수위가 조금 더 높았던 것,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난 판단하고 싶지 않다. 화가로서 그의 그림만 눈에 보이는대로 보고,느끼고 싶다. 왜 가족을 버렸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루아침에 모든것을 팽개쳐 버린 이유가 되기엔 모호하다. "어차피 나와 우린 그를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이 책은 마치 고갱을 유리문 건너편에서 계속 지켜보는듯 정밀하고 섬세하게 그의 변화되는 모습뿐 아니라, 숨겨진 심리를 꽤 뚫고 있으면서도 우연히 그의 소재를 주워듣는 형식으로 그를 놓치지 않고있다. 그만큼 서머싯 몸의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고 자연스럽다. 치밀한 작가의  구성이 흥미진진하다. <뉴욕타임즈> 또한 이 소설이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가 고루 돋보이는 위대한 작품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이견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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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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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내재되어있는것인가...?   아니면 사회성에 기인되어 적응하며 변화하는가...?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단어 하나로, 아님 어떤 주장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성,,, 그 중에서도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잔혹성은 무엇으로도 설명되어지거나,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소년들의 모험을 담고있다.  
최소한 외형적 소설의 배경은 그러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15소년표류기] 나 [보물섬] 등 소년들의 모험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전개방식이나 등장인물을 소년들로 하였을 뿐,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잔혹성과 군중성, 독재성을 예리하게 소설속에 녹아있다.  그래서 더욱 소름이 끼친다.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여지없최소한의 순수함을 여지없이 져버리고 섬에서의, 소년들 모습은 [악마]로변해간다.


물론 모든 등장인물이 잔혹성으로 일관되어지는건 아니다
그들의 본성에 역행하며 도덕적인 장의적인 지도자상의 인물도 있고, 우직하고 순수함을 지키는 인물, 지혜를 갖춘 인물도 존재한다.  단지 그들이 신체적 우위에 있고,권력지향적인 무리들과 얽혀 있을때 야만에 반하는 그들은 스스로의 무기력과 한계에서 저항과 소멸이라는 짓밟힘의 모습을 그린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인간군상[群狀]을 축소시켜놓은듯하다. 더욱 실날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사에 어렵게 생각하고

정리해서 말하려 하고, 어떤 일에 이유를 달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묘한 굴레를 짊어진다.  이것은 교육되어지는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것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그것들을  잊어간다.  그리고, 사회속에서 내가 사회적으로 기여하느것에 대해 성취감과 만족감을 누리는것이 익숙해진다.  과연 그것은 어떠한 의미로 나에게 작용하게 되었는가.  그런 성향은 언제부터 내게 있었으며 언제부터 표출되어졌는가...? 



한동안의 충격으로 멍해있었던듯 하다. 이 책을 읽은 후, 학창시절 읽었을때는 오히려 충격이 덜 하다고 느꼈었는데, 지금에서 더 큰 전율을 느끼는것은 왜일까? 내 안의 나를 들켜버린듯한 무서움과 굴욕감때문은 아닐런지. 소설가들은 흔히, 본인이나 주위에서 소재를 찾는경우가 많다고한다.  그렇다면 교사였던 윌리엄 골딩이 학교라는 小社會에서 인간내면의 악마적 잔혹성을 엿보았을까..? 아니면 평소의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편법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세밀한 감정의 묘사, 철저하게 일관되어지는 인물들의 성격과 모습..시간이 흐를수록 거침없어지는 전개성은 가히 세계적 문학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벨상수상작들의 난해성과는 조금 다른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가 선생님이라서 조금 쉽게(?) 써 주셨나보다...중학생이 되는 아들에게 권해주고픈 몇권의 책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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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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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서를 구하는 일에 서툴다. 잘못을 깨달은 뒤에도 그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에는 늘 용기가 부족했다. 그런 내게 용기를 일깨워준 책이었다. 문득 삶을  뒤돌아  보고 지난 발자국들이 흐뭇하게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십 수년 전에 아스라히  남아있는 그 흔적이 그렇고, 며칠전에 남겨 진 자국이 거슬릴 적이 있으며,  심지어 어제 새로 남겨진 흔적까지도 그러하다. 그런것들을 자주 들추어 내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다.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면 되는거야" 라는 자기 위장으로 돌아보기를 기피한다. 그러나  이런 성장소설을 읽고 나면 별수없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성찰을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요구는, 내 안에 숨겨진 철옹성의 양심도 피해 가지 못하게 만든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이라는 책의 설명을 살짝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인도와는 또 다른 이국의 <천국의 아이들> 을 생각하며, 이 책을 접했다. 한참 빗나갔다. 그래서 처음 몇장은 지루하게 넘어가고, 급기야는 몇 날을 책상 한켠에 놓아 두었었다. 최근에 <부당함>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잡은 이 책은 그 날 밤을 넘기지 않고 다 읽어냈다.  

하산이 연을 쫓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주인의 아들 아미르의 이복동생임을 알지 못했더라도 그는 아미르에게 형제이고 싶었고, 친구이고 싶었으며, 동지이고 싶어서이겠지..그걸 확인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미르가 연싸움에서 끊어 날린 패자의 연을 취함으로써 느끼는 통쾌하고 짜릿한 승리의 감정을 하산은 그에게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미르가 아버지 바바에게 연을 보여주며 기대했던 그런 것들을, 하산도 아미르에게 받고 싶어했다. 



하산의 인생을 도둑질 한 ’아미르’ 가 구한 건 용서였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강직함과 강인함을 스스로의 삶의 푯대로 삼으면서 아들 아미르에게도 강요했다. 그런 그가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말하는 도둑질,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이자 모든 죄의 공통분모라고 했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도둑질보다 더 나쁜 짓은 없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 바바에게 하산에게서 인생을 훔친 죄를 용서 받고 싶어했지만, 하산이 부당한 일을 당할때 그러했던것처럼 아버지 바바에게도 그는 겁쟁이였다.  

진실이란 때론 사람을 옥죄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진실을 숨기는 댓가로 ’죄책감’ 을 짊어지고 가는 삶도 있다. 아미르가 그러했다. 자신이 저항 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과 그런 상황의 가운데 서 있던 하산을 바라보는 일 조차도 두려워했던 그가 할 수 있었던건 도망과 거짓이었다. 진실이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크기만큼으로만 던져지는건 아니다. 그래서 진실이 용기앞에 드러날때 더욱 가치있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진실 자체을 받아들이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아버지 바바의 친구 라힘 칸이 들려준 진실이 그러했다.  아미르가 감추고 싶었던, 부스럼같던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것과 자신이 입밖에도 꺼내지 못했던 죄책감의 근원이 된 그 사건을 라힘 칸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서른여덟 살을 먹고 난 후에야 자신의 삶이 모두 빌어먹을 엄청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았을때가 그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도 그가 더이상 도망칠 수 없도록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데려오라는 라힘 칸의 요구는,  아미르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바바의 죄도 속죄하라는 것임을 알기에 그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미르가 소랍을 찾기위해 다시 찾은 고향 아프가니스탄은 그에게 낯설음이었다. 그때 동행자가 들려주는 진실, 그것은 다시 찾은 도시의 이방인이 아닌 원래부터 그가 그곳에 이방인이었음을 얘기한다. 


그가 세상에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온 수 십년을 그가 나중에 깨닫았을때 그의 낭패감은 다시 찾은 용기를 꺽기에 충분했다. 아미르에게는 또 하나의 용기가 필요했다. 아침이면 늘 그 자리에서 뜨는 해와 어제와 달라지지 않은 버스 노선, 지난 여름보다 색이 조금 붉어진것 말고는 여전한 공원의 단풍나무와 십수년을 같은 자리에 있는 현관문까지도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것에 대한 당혹감은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익숙한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이방인의 자리에 서 있는 존재감은 낭패스럽다.


하산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소랍을 되찾은 아미르는 자신의 숨겨왔던 죄를 고해하고 소랍을 통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구한다. 줄 끊어진 연을 쫓아가며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때 아미르는 말한다 "저 연 잡아다줄까?" 끄덕이는 소랍을 위해 연싸움에서 끊긴 연을 쫓으며 아미르는 그렇게 용서를 외친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 주마."라고..


나는, 천 번이 아니라 
단 한 번만이라도 진정한 용기로 내가 구할 마땅한 용서를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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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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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두아이의 엄마이면서 여전히 제제에 대한 나의 애뜻함은 변함이 없다.   
제제라는 이름만큼 나를 짠하게 하는 것도 없다.천하의 말썽쟁이로 어른들 눈에 보여지는 제제는 사실 엉뚱한 생각과 그것을 시도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게 사실이다.   아마 내 주위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나도 그때 제제를 바라보는 다른 어른들과 별 차이 없이 그 아이를 볼 것이다.   나 또한 그 안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바라보는 눈이 특별하지 못한 평범한 아줌마라서...

   
 

왜 이래야만 할까? 어째서 착한 아기 예수는 날 싫어하는거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들까지도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냐고?  내가 악마 같아서 벌을 주는 건가? 만약 내게 벌을 주는 거라면 내 동생 루이스에게는 왜 선물을 주지 않는 거야? 말도 안 돼.  루이스는 이헐게 천사 같은데, 하늘의 천사도 우리 루이스만큼 착하진 못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선물을 받을수 있다는 말에 동생 루이스를 데리고 힘겹게 가는 제제.  천하의 말썽꾸러기로 어른들에게 보여지는 제제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꾸욱 짚어서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읽을때마다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적이 없다.    힘들어 하는 동생을 얼르고 달래고 그래도 안되니까 업고서 (동생 루이스가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진다면서도..)목적지까지 가지만 행사 시간은 다 끝나버렸고 제제와 루이스는 작은선물 한개도 받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러면서 제제가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너무나 마음아프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땐 나도 학생이었다..  그리고 제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사실처럼, 정말 아프고 애뜻했다.. 그리고 한동안 내가 제제를 따라했던 유치한 행동이 있었는데, 내 사물에...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해... 나만의 이름 붙이는 놀이를 즐겼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운것도 사실이지만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속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책이l 아픔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제제가 이런 슬픔들을 너무 이른 나이에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픔을 겪으면서 너무 빨리 철이 들어가는 꼬마 제제가 안쓰럽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는 언제 철이 들래..?’ 하며 무심코 한마디 하다가 뜨끔하며 한박자 쉬어간다.  빨리 철이 든다는것은 쉬운일도, 꼭 그렇게 좋은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이렇게 되는가 보다. 좀 더 사랑하고 조금은 덜 철이든 아이로 자라는 제제였으면 좋겠다. 가슴 아픔이 아름다운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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