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용서를 구하는 일에 서툴다. 잘못을 깨달은 뒤에도 그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에는 늘 용기가 부족했다. 그런 내게 용기를 일깨워준 책이었다. 문득 삶을  뒤돌아  보고 지난 발자국들이 흐뭇하게만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십 수년 전에 아스라히  남아있는 그 흔적이 그렇고, 며칠전에 남겨 진 자국이 거슬릴 적이 있으며,  심지어 어제 새로 남겨진 흔적까지도 그러하다. 그런것들을 자주 들추어 내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없다.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면 되는거야" 라는 자기 위장으로 돌아보기를 기피한다. 그러나  이런 성장소설을 읽고 나면 별수없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성찰을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요구는, 내 안에 숨겨진 철옹성의 양심도 피해 가지 못하게 만든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이라는 책의 설명을 살짝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인도와는 또 다른 이국의 <천국의 아이들> 을 생각하며, 이 책을 접했다. 한참 빗나갔다. 그래서 처음 몇장은 지루하게 넘어가고, 급기야는 몇 날을 책상 한켠에 놓아 두었었다. 최근에 <부당함>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잡은 이 책은 그 날 밤을 넘기지 않고 다 읽어냈다.  

하산이 연을 쫓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주인의 아들 아미르의 이복동생임을 알지 못했더라도 그는 아미르에게 형제이고 싶었고, 친구이고 싶었으며, 동지이고 싶어서이겠지..그걸 확인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미르가 연싸움에서 끊어 날린 패자의 연을 취함으로써 느끼는 통쾌하고 짜릿한 승리의 감정을 하산은 그에게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미르가 아버지 바바에게 연을 보여주며 기대했던 그런 것들을, 하산도 아미르에게 받고 싶어했다. 



하산의 인생을 도둑질 한 ’아미르’ 가 구한 건 용서였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강직함과 강인함을 스스로의 삶의 푯대로 삼으면서 아들 아미르에게도 강요했다. 그런 그가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말하는 도둑질,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이자 모든 죄의 공통분모라고 했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도둑질보다 더 나쁜 짓은 없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 바바에게 하산에게서 인생을 훔친 죄를 용서 받고 싶어했지만, 하산이 부당한 일을 당할때 그러했던것처럼 아버지 바바에게도 그는 겁쟁이였다.  

진실이란 때론 사람을 옥죄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진실을 숨기는 댓가로 ’죄책감’ 을 짊어지고 가는 삶도 있다. 아미르가 그러했다. 자신이 저항 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과 그런 상황의 가운데 서 있던 하산을 바라보는 일 조차도 두려워했던 그가 할 수 있었던건 도망과 거짓이었다. 진실이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크기만큼으로만 던져지는건 아니다. 그래서 진실이 용기앞에 드러날때 더욱 가치있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진실 자체을 받아들이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아버지 바바의 친구 라힘 칸이 들려준 진실이 그러했다.  아미르가 감추고 싶었던, 부스럼같던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것과 자신이 입밖에도 꺼내지 못했던 죄책감의 근원이 된 그 사건을 라힘 칸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서른여덟 살을 먹고 난 후에야 자신의 삶이 모두 빌어먹을 엄청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았을때가 그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도 그가 더이상 도망칠 수 없도록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데려오라는 라힘 칸의 요구는,  아미르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바바의 죄도 속죄하라는 것임을 알기에 그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미르가 소랍을 찾기위해 다시 찾은 고향 아프가니스탄은 그에게 낯설음이었다. 그때 동행자가 들려주는 진실, 그것은 다시 찾은 도시의 이방인이 아닌 원래부터 그가 그곳에 이방인이었음을 얘기한다. 


그가 세상에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온 수 십년을 그가 나중에 깨닫았을때 그의 낭패감은 다시 찾은 용기를 꺽기에 충분했다. 아미르에게는 또 하나의 용기가 필요했다. 아침이면 늘 그 자리에서 뜨는 해와 어제와 달라지지 않은 버스 노선, 지난 여름보다 색이 조금 붉어진것 말고는 여전한 공원의 단풍나무와 십수년을 같은 자리에 있는 현관문까지도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것에 대한 당혹감은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익숙한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이방인의 자리에 서 있는 존재감은 낭패스럽다.


하산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소랍을 되찾은 아미르는 자신의 숨겨왔던 죄를 고해하고 소랍을 통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구한다. 줄 끊어진 연을 쫓아가며 사람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때 아미르는 말한다 "저 연 잡아다줄까?" 끄덕이는 소랍을 위해 연싸움에서 끊긴 연을 쫓으며 아미르는 그렇게 용서를 외친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 주마."라고..


나는, 천 번이 아니라 
단 한 번만이라도 진정한 용기로 내가 구할 마땅한 용서를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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