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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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숲이 있다. 젊은 날의 숲은 특히나, 간절했던 목마름과 무미함의 경계를 아우르고 있다. 정체되지 않은 시간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흔적이 도사리고 있다. 푸르름만이 아닌, 겨울의 움츠림과 뜨거운 햇살에 고스란히 이파리와 가지를 내주었던, 뒤틀린 흔적과 나무 한 쪽의 썩어들어간, 그리고 황망해진 숲에 가려 나동그라진 밑둥도 있다. 움트기를 시작으로 자라난 나무들은 내 시간들의 흔적이 되었고 그렇게 하나 하나의 흔적들이 숲이 되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해 비가 내리고, 햇살이 비추는 건 아니듯, 내 숲의 어느 한 기억도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토해냈다.    

연주의 숲도, 숲이어서 다가설 수 있었다. 수목원의 안실장은 그녀에게 자라지 않는, 어린 시절, 나무와 같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며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로부터, 끝없이 떨쳐내고 싶었던, 그러면서도 뿌리칠 수 없었던, 눈물로부터도 멀었던 기억의 한 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거다. 안실장의 자폐적, 전 부인과 그녀를 닮은 아들 신우의 그림자가 덧대진 그림자처럼, 흑백의 아픔이 선명하지 않은 이유로 들러붙은 이유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딸로, 연주에게는 안실장이 아버지만큼이나, 목의 가시처럼 따끔거리는 존재다. 그녀의 그림속, 나무나 뼛조각처럼 피부로 느껴지지 못하는 존재감. 그래서 그녀는 신우를, 더 자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기 전에 한 번 안아보고 싶었던 것같다. 자신의 기억을 한 번쯤은 뜨겁거나, 아무렇지 않게 안아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랑같은 연민, 동질성의 연민같은 사랑의 냄새를, 연주는, 김민수 중위로부터 맡는다. 그 네들의 아버지가 하위 공무원으로 마감한 낙엽을 거름으로 해서 자란, 원천적 동질감의 냄새라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다가오는 김민수 중위를 향해 조금씩 몸을, 연주는 기울이고 있다. 단조롭다. 수목원의 나무를 그리는, 발굴된 뼛조각을 그리는 연수의 무심한 손길처럼 그냥 그렇게 흐른다. 숲이라는 제목을 가졌음에도, 이 책, 무척이나 건조하다. 인생이 그러하듯 울창하고 촉촉한 숲만 있는 건 아닌가보다.때문에 기억속에 묻혀 숨겨놓은 가슴, 어느 한 구석을 더욱 바스락거리게 만들었다.  

 

"나무는 숲의 익명성에 파묻히지 않았다.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는 외롭지 않고, 다만 단독했다."  p.63  

"그것이 사람과 나무의 차이"라고 연주는 말했지만, 내겐 그래서 더욱 같다는 말처럼 들린다. 연주의 시간처럼 나의 어느 시간도 익명성에 파묻히길 원하지 않았고, 또 그랬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없었던 건 아니듯 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고 사라져도 그랬다. "외롭지 않은 단독함의 나무"처럼 내 젊은 날과 이후의 시간들, 숲은 여전하다. 바스락 거리는 건조함으로부터 여름 장마가 이어지고 가신 뒤에도 계속될, 연주와 나의 숲이 자족하며 신생의 시간을 견디도록.  

  

"추위 속에서 나무들은 우뚝하고 강건했다. 나무들은 추위와 더불어 자족해서, 봄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았다. 눈 덮힌 숲에 한낮의 햇볕이 내리면 숲은 부풀어 보였다. 숲의 봄은 언 땅 밑에 숨어 있다가 나무뿌리로 스며들고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가서 공중으로 발산되었다. 숲의 봄은 나무가 뿜어내는 신생의 시간이었다." p.93   

 

자칫 이 소설이, 지쳐감에 흐름이라 여겨질 뻔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연주의 아버지, 그러니까 존재감을 상실한, 그림속 느낌처럼 전달되지 못하는 아버지가, 한 줌 뼛가루로, 밥에 버무려져 새들에게 뿌려질 즈음, 나는 숲의 계속되는 신생의 의미를 읽게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주었던, 보이지 않던, 느껴지지 못했던 모두 퍼주심, 남김없이 내어주심을 깨닫는다.  나, 어쩌면,  숲이어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간과 이 시간들. 김훈 작가가 사랑과 희망이기를 말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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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는 것으로 대개는 일과를 마무리합니다. 책은 죽어도 내 돈 주고 사서 봐야 한다는 일편단심에 흠집을 낸 것은, 경제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꼭 사봐야 직성이 풀리는 책들이 아직은 부지기수입니다. 때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몇 페이지 읽다말고는 기어이 책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정신 덜 차렸구만" 이란 말로 나를 몰아세우며 허리띠를 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차 적정한 선에 적응하리라 믿으며 나를 기다려 주기로 했습니다.   

부모란...그런가 봅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면 그것으로 배부른...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내 책은 빌려볼망정 아이책은 꼬박꼬박 다 사준다는겁니다.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는게 참 희안하죠. 덕분에 아이는 어린이도서관보다 우리집에 읽을 책이 더 많다는 것에 좋아라합니다. 아니, 좋아라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몸이 자라니 마음도 자라더군요. 기특하다고 해야할지, 미안하다고 해야할지는 구체적으로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도서관에 책 빌리겠다고 따라 나서는 작은 녀석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애는 애인가봅니다. 이런 기막힌 책을 다 찾아내다니...이 책이 우습고 가볍다는 얘기가 결코 아닙니다. 왠만해선 눈독들이기 어려운 독특한 책이란거죠. 그런데 정말 기막힌게 뭔지 아십니까? 책 속에 있었습니다. 무수한 낙서들 말이죠. 이게 왠말입니까. 간혹 밑줄을 그어놓은, 페이지가 접힌 책은 봤어도 낙서가 되어 있는 책이 요즘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데....나쁘지 않은거랑 낙서랑은 아무 관련이 없나봅니다. 이 책은 애들이 더 좋아해서 그런건가보다, 한박자 쉬고.. 

 

 

 

 

 

 

 

  

 

요즘 관심이 가는  박민규작가의 신작을 본격적으로 읽기전에 간을 보려고 <마지막 팬클럽>을 빌렸습니다. 아...나는 몰랐습니다. 이딴 책에 왜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고 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전 사람이 연필로 그어놓은 밑줄이 맘에 안 드는지 형광펜으로 덧대어진 밑줄까지... 

아이가 묻습니다. 

"누가 이런 걸까요? 이러면 안 되는건데..." 

"그건 말이다. 부끄럽지만 다 우리가 그런거다."  

이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읽고싶은 책을 마음껏 사주지 못한 거,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껴서 깨끗하게 나눠보아야 할 우리 공동의 책을 함부로 다룬 그 모습이 부끄럽고 미안해졌습니다. 문득 <한국인은 광을 좋아한다>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외국인의, 외부인의 시선을  담은 이 책에서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격과 공중시설물을 대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더랬죠.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건 물론 아닙니다만.... 내 것만큼 우리의 것도 소중하지 않을까요? 나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한번쯤 그것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선진의식으로 빛나는 ...

그런 광을 좋아하는 대한국민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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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멘토 부모
강학중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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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을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우리는 공부하고 이외의 것들을 준비한다. 하다못해 새해를 맞이할 때도 마음의 준비와 각오를 다진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무슨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할까, 생각해보면 여타의 문제들보다 가장 절실한 것임에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물론 태교음악을 들으며 부부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까지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할걸까? 하지만 딱히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혹은 키우면서 함께 대처하고 그 안에서 부모도 한 가지씩 배워가는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 상황별로 난감에 봉착할 때가 부지기수라 이 모든 변수를 예상하고 공부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다. 
 


어느 날 문득, 혹은 자주라도 "얘가 왜 이러는걸까?"라는 의문이 들어 주변에 자문을 구하면 대개는, "애들은 원래 그래." "때가 되면 나아질거야" "널 닮아서 그렇지" 라는 일관되고 뜬구름잡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왠만한 눈치코치로 단련된 나였지만 아이들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는 늘 한계를 느꼈다. 한편으로는 내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니까 뚜렷하게 중심을 잡고 주변에 휩쓸리지 않은편이 아이들이나 나에게 더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문 조언자의 충고는 열심히 노를 젖기만 하던 나에게 등대불빛처럼 방법을 비추어준다는 걸 알았다. 

 

 <멘토 부모>라고 해서 심한 부담감으로 접한 책이지만 실은 나를 어루만지는 책이란걸 절감하게 되었다.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 들려주는 대답은 부모가, 부부가 먼저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로 문제를 나누며 머리를 맞대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아이가 가지는 문제나 고민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아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비롯한다고도 하는데 특히나 아이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장점과 고쳐서 발전시킬수 있는 부분을 읽어야한다. 그러러면 아무래도 거리가 필요하겠지.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얻은 쾌답은 그것이다. 거리를 두고 아이를 지켜볼 것. 



가족은 한 팀이다. 팀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께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적당한 거리도 유지하면서 서로의 상태와 위치를 확인하고 공을 던져야한다. 엎드려 신발 끈을 묶고 있는 아이에게 공을 던지고는 "그걸 왜 못 받아?" 라고 핀잔하지는 않는지, "너 힘들지. 내가 들고 골대까지 달리마" 라면서 모든 걸 대신하지는 않는지를 곰곰 돌이켜 볼 일이다. 한 두번 골이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 번에는 넣을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봐. 우리가 어시스트할께 우리와 너 자신을 믿어 봐." 라고 짧고 굵게 말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이런 직접적인 해결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구체적 제시를 돕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 상황별로 혹은 근본적인 문제들로 인한 고민을 해결받게 된다는 점에서 <멘토 부모>는 정직한 실용서다.  

글자를 읽지말고 내용을 읽듯, 아이를 말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는 것을 가르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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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들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새해가 되어 내 나이 몇 이던가. 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12월 31일이 생일인지라 케잌위에 꽂힌 초의 숫자가 강력한 의미를 발산하며 새해에 더해질 숫자를 암시합니다. 어느 덧 그 초가 중년의 빵덩어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도 버겁지 않습니다. 중년이 뭐 어떻겠습니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온 흔적이 주름살로 드리워지는 것도 좋기만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너 몇 살이야? 넌 부모도 없어?"  

"나이 먹은게 자랑이예요? 난 댁같은 부모 없어요."  

라며 전철안에서 젊은 양반, 나이든 양반 다투는 소리에 마음이 무척이나 상했습니다. 대뜸 이렇게 시작되는건 물론 아닙니다. 처음엔 나름대로 사회적 동물에 기초한 대화로 시작하지만 말빨이 딸리거나 오는 말이 마뜩치 않으면 종국에는 꼭 이런 꼴로 변모하는군요. 왜 어른들은 대뜸 나이부터 들먹이며 혼내려드는 걸까요. 왜 젊은이는 나이듦에 빈정거릴까요. 사실은 그게 아닐겁니다. 젊은이의 철없음이 어림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름답게 나이들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한 그 네들로 인해 모든 나이듦이 퇴색되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새해에는 이런 숫자 싸움박질 현장을 목격해야하는 괴로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살림살이뿐 아니라 마음씀도 나아졌으면...비나이다.비나이다.~   

 

젊은이, 나이 먹은게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울 일 아니라오.  

어르신, 그 젊은이 진짜 부모 없는 고아면 어쩔려구 그러십니까.   

 

  

    

 

 

 

 

 

 

 

 

내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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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hka 2011-01-0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느닷없이 서재에 난입해 놀라시지 않았을지... 쓰신 글에 공감이 가서, 추천 누르고 갑니다. 올해는 제발 지하철 XX녀,XX남 없는 기분좋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모름지기 2011-01-05 23:38   좋아요 0 | URL
어제까지 못한 안녕..오늘부터 안녕해집니다.^^ 책사랑님의 느닷없는 난입..언제든 환영합니다.
올해는 님의 말씀대로 기분좋은 일만 모락모락 품어내는 지하철..그리고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추적자들
하랄트 바인리히 지음, 김태희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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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쁜 현대인들이 절대적 부족을 호소하는 것은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는 사람이든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어 나가듯 거침없이 쓰는 사람이든, 어느 순간이 되면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때론 빠듯함에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빠듯하다’함은 더이상의 빈틈도 없는 그야말로 최소한을 의미한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시계가 발명되었을 때부터가 아닐까 - 우리는 시간의 부족함에 허덕이며 시간 빈곤자가 되어 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시간의 부족함은 반비례한다. 경제적 기준으로는 말 할 것도 없고 예술적 개념에서의 시간도 ’빠듯함’의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유명한 문구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는 이 모든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진실은 무엇인가. 기예의 긴 여정을 들어 인생의 짧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생의 짧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내놓은 ’세네카’는 전문적인 수준에서 금융 분야의 은유로 시간과 돈의 관계를 도덕철학적 논변들로 제시한다.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가급적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투자’하고 시간 계좌에 신중하게 ’예금’하며 모든 시간 지출을 마치 돈과 같이 정확히 ’결산’하고 시간이 정말로 잘 계산된 ’수익을 낳을 수 있도록’하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p.31)  그러나 스토아 철학자로서, 세네카에게는 금전적 부유함 보다 시간의 부자가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대문호들에게도 시간은 풀지 못하는 고된 숙제였다. 인생의 시간을 거래하며 문학 작품속에서나마 마침의 시간을 유보했던 작가 괴테,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 등은 <파우스트>를 시작으로 <나귀 가죽> ,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이 책 3장에서 ’인생의 절반들’에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한정된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와  시간을 늘이는 것은 단순한 유보에 불과하다는 진실앞에 수긍한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이 공통의 플롯 작품들 중 <파우스트>를 해독하는데 - 물론 우리말로 쓰여진 책이지만 - 나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회춘을 위해 악마와의 거래에 성공한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얻은 깨달음을 읽기 전에 파우스트 1장에서 2장으로의 전환은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 하랄트 바인리히는 이 부분의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시간 개념에 연관해 담아내고 있으며 괴테의 실제적 인생 시간과의 함수관계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문학의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할 때마다, 아낌없이 연구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이런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 수용한다. 내 고찰과 사유의 발원지다. 


6장 "빠듯한 시간의 경제학’에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일부를 인용한 ’손님 환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님환대의 시한은 사흘이고 주인뿐 아니라 손님도 이 시한을 지켜야 한다." (p.183)  그런데 이 사흘의 시한은 접대 받는 손님에 따라 아주 유동적인 개념으로 바뀐다. 한정된 시간의 개념을 유동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손님은 시간에 대한 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과 손님 환대에 따른 비용이 초과되었을 때의 위험 요소를 간파한 오디세우스의 일화를 통해 시간 조정자는 결국 자신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신이 초과해서 받게될 환대에 대한 댓가를 지불할 생각이나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진 전부를 내어 주어야 했던 <파우스트>를 연관지어볼 수 있다. 


시간의 개념과 시간을 계측하는 시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시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때의 징후, 예를 들어 병이 들었다거나 나이가 아주 많이 들었다거나 했을 때의 불안감은 당혹감을 동반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기에 준비하지도 계획하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응수다. 그러나 시간의 빠듯함 속에서도 내일이라는 기약을 믿으며 정진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 짧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예비된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포기’의 전혀 다른 개념 ’납득’이며 ’수용’인 것이다.    


 시간과 접목한 철학적, 문학적 이해와 더불어 시간에 대한 고찰을 끌어낸 인물은 
’필리어스 포그’다 쥘 베른의 <80일 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제한적 시간에 대한 무모한 도전과 반전으로 
놀라운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한 쥘 베른. 
80일 이라는 단순 시간에 신이 허락한 보너스를 기꺼이 수락한 
쥘 베른의 놀라운 기치를 통해 시간의 빠듯함에서 탈출할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시간적 가치는 개념을 뛰어 넘는다는 것. 

정직한 시간을 살다가
어느 날, 필리어스 포그처럼
숨겨진 시간을 발견하게 되는 행복한 상상. 
근사하지 않은가.
때론 엉뚱한 상상과 괴변이 나를 시간으로부터 홀가분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
이 책 <시간 추적자들>을 읽으며 해봤다.
인생은 짧지만, 시간은 의외로 충분하다. 시간을 도둑맞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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