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추적자들
하랄트 바인리히 지음, 김태희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바쁜 현대인들이 절대적 부족을 호소하는 것은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는 사람이든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어 나가듯 거침없이 쓰는 사람이든, 어느 순간이 되면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때론 빠듯함에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빠듯하다’함은 더이상의 빈틈도 없는 그야말로 최소한을 의미한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시계가 발명되었을 때부터가 아닐까 - 우리는 시간의 부족함에 허덕이며 시간 빈곤자가 되어 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시간의 부족함은 반비례한다. 경제적 기준으로는 말 할 것도 없고 예술적 개념에서의 시간도 ’빠듯함’의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유명한 문구 "인생은 짧고 기예는 길다." 는 이 모든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 진실은 무엇인가. 기예의 긴 여정을 들어 인생의 짧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생의 짧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내놓은 ’세네카’는 전문적인 수준에서 금융 분야의 은유로 시간과 돈의 관계를 도덕철학적 논변들로 제시한다.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가급적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투자’하고 시간 계좌에 신중하게 ’예금’하며 모든 시간 지출을 마치 돈과 같이 정확히 ’결산’하고 시간이 정말로 잘 계산된 ’수익을 낳을 수 있도록’하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p.31)  그러나 스토아 철학자로서, 세네카에게는 금전적 부유함 보다 시간의 부자가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대문호들에게도 시간은 풀지 못하는 고된 숙제였다. 인생의 시간을 거래하며 문학 작품속에서나마 마침의 시간을 유보했던 작가 괴테,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 등은 <파우스트>를 시작으로 <나귀 가죽> ,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이 책 3장에서 ’인생의 절반들’에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한정된 인간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와  시간을 늘이는 것은 단순한 유보에 불과하다는 진실앞에 수긍한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이 공통의 플롯 작품들 중 <파우스트>를 해독하는데 - 물론 우리말로 쓰여진 책이지만 - 나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회춘을 위해 악마와의 거래에 성공한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얻은 깨달음을 읽기 전에 파우스트 1장에서 2장으로의 전환은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다.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 하랄트 바인리히는 이 부분의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시간 개념에 연관해 담아내고 있으며 괴테의 실제적 인생 시간과의 함수관계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문학의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할 때마다, 아낌없이 연구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이런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 수용한다. 내 고찰과 사유의 발원지다. 


6장 "빠듯한 시간의 경제학’에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일부를 인용한 ’손님 환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님환대의 시한은 사흘이고 주인뿐 아니라 손님도 이 시한을 지켜야 한다." (p.183)  그런데 이 사흘의 시한은 접대 받는 손님에 따라 아주 유동적인 개념으로 바뀐다. 한정된 시간의 개념을 유동적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손님은 시간에 대한 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과 손님 환대에 따른 비용이 초과되었을 때의 위험 요소를 간파한 오디세우스의 일화를 통해 시간 조정자는 결국 자신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신이 초과해서 받게될 환대에 대한 댓가를 지불할 생각이나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진 전부를 내어 주어야 했던 <파우스트>를 연관지어볼 수 있다. 


시간의 개념과 시간을 계측하는 시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시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때의 징후, 예를 들어 병이 들었다거나 나이가 아주 많이 들었다거나 했을 때의 불안감은 당혹감을 동반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기에 준비하지도 계획하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응수다. 그러나 시간의 빠듯함 속에서도 내일이라는 기약을 믿으며 정진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 짧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예비된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포기’의 전혀 다른 개념 ’납득’이며 ’수용’인 것이다.    


 시간과 접목한 철학적, 문학적 이해와 더불어 시간에 대한 고찰을 끌어낸 인물은 
’필리어스 포그’다 쥘 베른의 <80일 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제한적 시간에 대한 무모한 도전과 반전으로 
놀라운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한 쥘 베른. 
80일 이라는 단순 시간에 신이 허락한 보너스를 기꺼이 수락한 
쥘 베른의 놀라운 기치를 통해 시간의 빠듯함에서 탈출할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시간적 가치는 개념을 뛰어 넘는다는 것. 

정직한 시간을 살다가
어느 날, 필리어스 포그처럼
숨겨진 시간을 발견하게 되는 행복한 상상. 
근사하지 않은가.
때론 엉뚱한 상상과 괴변이 나를 시간으로부터 홀가분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
이 책 <시간 추적자들>을 읽으며 해봤다.
인생은 짧지만, 시간은 의외로 충분하다. 시간을 도둑맞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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