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 소설이 읽고 싶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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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2-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뭡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 한 권이라도 넣어주지!!! 너무해!!!

다락방 2017-02-24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소설책 한 권 기프티북으로 보냈소. 받아보시오.
 

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들을 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 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그나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통의 자산화가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애 키우고 먹고사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여성은 그럴 겨를조차 없다.

요즘은 소신 있게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 불임 여성도 느는 추세다, 그래서 애 낳은 여자, 애 안(못)낳는 여자의 일상의 구체적 고통을 외면한 '모성의 이상화'는 참 나쁜 관념이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애를 안 낳아봐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온갖 나쁜 관념에 휩싸여 주변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P32

 

 열 번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남처럼 등 돌리는 남자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이틀때 널려 있는 빨래를 걷는데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남편, 결혼 전에 아빠를 볼 때면 좀 궁금했다.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 보일까….나중에 알고 보니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 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에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모른다. 모르고 편하게 살다가 죽느 ㄴ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한평생 고생만 하다가 죽는 여자들도 많다.P58                        

 

사는 일에 크게 미련이 없다. 이 말을 예사롭게 했다. 이는 죽음이 목전에 닿지 않았기에 가능한 팔자 좋은 말잔치 같아 부끄럽지만 나름의 진심이다.

엄마의 돌연한 죽음, 가정 경제의 돌연한 몰락, 이성복 시인의 시구절처럼"몊 개의 돌부리 같은 사건"을 지나면서 삶의 감각이 달라졌다. 자식 두고 죽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쯤이면 나한테는 생의 마지노선까지 다녀온 거다. 지금도 크게 바뀐 건 아니다. 삶이 시시해졌다기보다 죽음이 생생해진 것뿐. 전에는 죽음이 생의 막다른 길에 반쯤 열린 문의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생의 광장에 입 벌리고 있는 웅덩이로 떠오른다. 삼신할머니 랜덤으로 태어났듯이 삑사리로 미끄러지는 것도 순간이겠지 생각한다. P138

 

니체가 남을 동정하고 연민할 때는 섬세한 기예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거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쟤한테 받은 건 얘한테 줘도 되니까, 지금 받고 이따 줘도 되니까 돌봄의 우주적 순환원리가 수건돌리기처럼 재밌고 흥미로운 이세계의 운동으로 이해됐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사랑의 리퀘스트>처럼 나에게 답지하는 온정의 손길로 나는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학력 자본 화폐 자본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내가 밥 먹고 사는 건 누군가의 지극한 돌봄 덕분이었구나, 깨달았다. 신세 한탄 그만하고 나의 돌봄은 어디를 어떻게 향해야 하는가를 연구해야겠구나 마음 다잡았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글픔은 긴 속삭임처럼 흘러다녔다. 난방비 폭탄이 나온 관리비 고지서 앞에서는 그토록 아름다운 이론도 힘을 잃는다. 본디 이데아적 세계는 감각의 세계 앞에서 무기력하다.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면서 꺼지지도 못하는 질긴 인생. 바늘방석 같은 사람. 때로는 망각의 잠을 청하고 싶은. P256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삶을 한 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에 간다면 난 얼마나 다르게 살 것인가. 아파하고 아파하는 이를 알아보면서 이 아픔의 전승 구조에 몸을 싣고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을것 같다. 그것밖에 힘이 없다. 누구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다. 262

 

허수경의 시 구절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 건 당연시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 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 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주는 세상에서 ,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 장 준비해야 할까 보다.

"근데 그게 왜 긍금한 거죠?"

얼굴도 잘 모르는 아저씨가 올해는 국수 먹는거냐고 물어서 국수가 드시고 싶으시면 사서 드시면 된다고 했더니, 그런거 말고 올해는 꼭 국수를 먹여 달라고 해서 니국수는 니가 내국수는 내가 알아서 먹자 라고 대답했다.

그 질문이 무례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조근조근 설명할 기력이 없다.

 

 

발췌해 놓은 글들처럼 누가누가 말했듯이, 라는 인용이 과하게 많다. 그렇지만 그 어떤 정체성을 가진 여성이라도  충분히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 들이 많다.

 

2월 14일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2월 강좌 두번째 시간이었다.

페미니즘 책을 읽고, 강죄를 찾아 듣고 나면 늘 같은 질문이 생긴다.

그래. 그래서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강좌의 주제는 억압을 '폭로'해서 사회의 층에 균열을 만들고 흔들어야 한다  가 주제 였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에 ~계의 성폭력 폭로로 그동안 모른체하고 없었던것처럼 숨겨왔던 하지만 너무나 공공했던 성폭력 사태들이 드러나고 가해자의 실명이 공개되고 피해자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진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 가해자들이 사회적·법적으로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는 둗지 못했다. 오리려 피해자를 역으로 고소하거나, 가해자 자신들의 생활이 불편해진것을 피해자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다. '폭로'는 발화하는 사람의 상처를 기반으로 힘으로 갖는다. '고백'은 발화자가 특정한 청자에게 죄사함을 약속받는다. 고백과는 다른 불특정 한 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로, 자신의 생살을 가르고 내장을 꺼보여야 하는  피해자들의 이 폭로는 어디까지 계속 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그러니까 나는 이들의 폭로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대학내 생리대 자판기가 역차별이고, 메갈때문에 페미니즘 못하겠다고 하고, 지금은 성소수자의 인권따위는 시기상조라 하고, 남녀 임금격차가 60%인 나라에서 더치패이 해야 개념녀라 하고, 출산과 양육의 독박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어야 하는 여자들에게 이기적이라서 애 안낳는다고 하고, 그래도 여자들 예전 보다 살기 편해지지 않았냐고 하는 태어날때부터 권력자인 그들에게 나는  투명해질 때까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인가?

 

페미니즘은 피곤하고 지겨워서 싫다는 어떤 쿨한 작가의 말처럼

피로감이 쌓이고 지겨워지려고 한다.

이번만은 쉽게 지치고 싶지 않은데....

 

 

 

강의날이 발렌타인 데이라 애인애게 받은 커피콩 초코렛. 맛이 굉장히 독특하다. 고마워요. 애인님.

 

어제는 회사에서 개나소나말이나 또는 인간일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공로패 수여식이 있었다.

이런것을 받았는데, 이거 가슴에 달고 태극기 시위 가면 포털 메인에 뜰것이라고 했다.

주말에 애인과 광장에 가기로 했는데 이참에 메스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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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16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곤하고 지겨운 페미니즘을 상쇄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페미니즘 에피소드를 아무개 님의 서재에서 읽기를 기대합니다.

아무개 2017-02-17 15:05   좋아요 1 | URL
공부가 너무 많이 부족해서 그런듯 싶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페미니즘 에피소드를 마립간 님의 서재에서도 읽을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마립간 2017-02-17 15:18   좋아요 1 | URL
아무개 님이 말씀하는 페미니즘과 제 가치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기 때문에 아우개 님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불가능은 아니더라도) 어려울 것을 예상됩니다.

대신 이렇게는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것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든, 여성혐오로 부르든)에 맞춰 딸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고 이에 따라 자라는 아이에 모습은 저에게 보람(이것이 카타르시스를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입니다.

아무개 2017-02-17 15:38   좋아요 3 | URL
마립간 님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맞춰 딸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고
‘딸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 남성성으로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저는 육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무 하므로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남자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갖게 되는 첫번째 남자가
대부분 자신의 아버지인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 말씀만 드립니다.


마립간 2017-02-17 16:07   좋아요 1 | URL
아무개 님께서 지적하신 시항은 제가 묻고 싶었던 (그러나 조심스러워 묻지 못했던) 사항입니다.

제 짧은 소견에는 대부분의 여성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칠 남자가 아버지와 남편으로 생각되고, 저와 대립되는 페미니스트를 선언하신 미혼 여성의 경우, 아버지와의 관계가 궁금했습니다. 딸과 아들을 떠나서 아버지가 양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화하기 곤란한 제 짧은 개인적 경험에 제 딸을 비롯하여, 기저귀 찰 때부터 계속 알고 지내는 고등학교 두 친구의 딸들, 친여동생의 딸, 처가 조카딸 등. 부녀 관계가 (어쩌면 모녀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개 님의 충고는 각골,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댓글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02-16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말은... 맞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피곤하고 지겹다는 말. 깨닫는 순간, 혹은 결심하는 순간들이 금세 절망의 순간으로 변하고 마니까요.

공부 시작하신 것 축하드려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물음표의 시간들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공로패도 초콜릿도 마냥 부럽네요~~~ ㅎㅎㅎ

아무개 2017-02-17 15:11   좋아요 1 | URL
누군가 페미니즘이 피곤하고 지겨운게 아니고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페미니즘이 일깨워 준거라고 하더라구요.
상식과 양식의 기준점이 점점 낮아져 가는것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니, 인권은 다음에 나중에 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약자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전제가 되어버렸어요. 답답합니다...


 

하. 하. 하.
모자라네??

책은 읽어 무엇할까 싶다가.
책이라도 읽을수 있으니 다행인가 싶다가.


이런 구절에서 구구절절
구질구질해지는 나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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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2-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금 기모스타킹 두 개 결제하는데 잔액 부족하다고 승인 거절됐어요.. 인생 Orz

아무개 2017-02-10 11:25   좋아요 0 | URL
남는건 빚하고 살뿐이라니. . .
인생....

hnine 2017-02-1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으신 구절, 좋네요. 사랑을 남는 장사가 되게 하는 것도, 밑지는 장사가 되게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잣대에 달린 것 같아요. 그런 잣대를 아예 만들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그건 아마 이상적으로만 가능할 것 같고요. 그런데 저런 사랑을 하자면 카페라테 거품이나 치즈케잌은 당분간 포기해야돼요 ㅠㅠ

아무개 2017-02-10 11: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잣대를 아예 만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람이라 쉽지 않네요.
사랑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한다는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

 

엊그제 점심 먹으면서 애인에게 사진 찍어 보냈는데 컵라면 옆에 ‘간마늘‘이냐고 물었다.
내가 사람이 덜 된것은 맞지만
간마늘을 통째로 먹지는 않아요.
스팸김치 볶음밥이라고. . .

문제가 많은 애린원(중성화 안해서 개체수 폭발적으로 늘리고 애들 아파도 병원 안데려가고 애들에게 폭력 휘두르고 후원금 유용하고 등등)을 해체시키기 위해
대차게 나선분이 계신다.
3000여마리의 개고양이를 전부 인계받아서
케어하겠다고 하는데
시작도 유지도 힘든 일을 시작하신분께
마음과 조그만 정성을 보태본다.
네이버에 생명존중사랑 카페를 개설하고
3000여마리를 위한 모금 시작하였으니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에 뭔 개소리냐
싶으시겠지만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더 힘없는 동물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제 고만 책 읽어야지 쓰는데
졸립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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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7-02-08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마늘이라는 말이 귀엽네요. 다진 마늘도 아니고 말입니다 ㅎㅎㅎㅎㅎ
3천 마리를 전부 인계하시다니 정말 대차신 분... 저도 그런 꿈을 종종 꿉니다. 꿈만 ㅜ
불쌍한 동물들 어린 아이들 볼 때마다 제가 돈이 많지 않은 거에 더없이 자괴감이 들어요. 돈 좀 열심히 벌지 뭐했니..
소액이나마 후원하며 면피하는 심정이네요.

아무개 2017-02-09 08:14   좋아요 0 | URL
아직 사람이 못되서 어제도 애인님을 또 실망 시킨저는
정말로 오늘 점심으로 간마늘을 한주먹 먹을까 합니다만...

이 대차게 일 시작하신 분은
이미 실험용 비글아이들 구조하는 협회를 운영하셨던 분이시더라구요.
애린원쪽에서 자신들의 부채를 갚아주면 애들을 넘기겠다는
개소리를 해서 법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중이라고 합니다.

저도 제가 가난한게 싫을때가
아픈 아이들 보고도 돈때문에 망설이고 못본체하고 그럴때 제일 싫어요.
지금도 그러고 있구요....
애들 밥이나 챙겨주는걸로 저도 그렇게 면피하는 심정입니다.
 

  백인 페미니즘 서적과는 확실히 다른 관점들이 많이 보인다. 백인 중산층 여성 위주의 부르주아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쏟아 진다. 여성 중산층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백인 남성과 동일해 지기는것) 유색인 노동자 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페미니즘은 결국 그들 계급만을 위한 기회주의적인 페미니즘 운동이된다.

계급, 인종 차별을 논하지 않고서는 성차별에 관해서도 말할수 없다. 이 세가지 모두는 자본주의체제의 다른 얼굴을 한 한몸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의문점도 많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도 많지만 일과 권력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분은 뭔가 동양적인 사고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 싶다. 동양의 여성들 그러니까 제 3세계 여성들이 받는 엄청난 억압은 제1세계 미국 흑인 여성이 받는 그 것보다 결코 더 가볍지 않을텐데....그리고 또 사랑. 사랑꾼이다 이분 진짜. 인류애가 넘쳐....나는 그게 안되고.....

 

 남성과의 사회적 평등에 초점을 맞추어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결과적으로는 차별대우, 남성의 태도, 법적 형태들을 강조하게 된다. 반면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지배체제에, 그리고 성·인종·계급 억압의 상호연관성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후자와 같은 정의는 미국 여성들이 집단으로 처한 사회적 지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성차별적 억압이라는 무서운 공격을 견디는 여성들이 겪는 경험과 그들이 사회에서 처한 곤경에 우리가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페미니즘을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정의하는 것은 이론을 개발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이런 정의는 어느 방향으로 탐구하고 분석할 것인지 제시하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페미니즘 투쟁의 토대는 성차별주의 및 여타 형태의 집단 억압의 문화적 기반과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야 한다. 억압의 철학적 구조에 도전하여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페미니즘적 개혁은 영향력을 오래 발휘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려면, 우리의 투쟁을 남성과 사회적 평등을 이루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등과 같은 용어에는 특정한 이익 집단이 기회주의적 목적으로 페미니즘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일이 지속되지 않도록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모순들은 상징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P66-67

 

 여성은 서로 연대를 맺을 때 많은 것을 이룬다. 그러나 부르주아 여성해방주의자들이 만든 자매애 모델로는 지속적인 유대나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부르주아 여성해방주의자는 공통된 희생이 유대를 유지시키는 기반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그들은 공통된 억압을 강조했지만, 이런 유대의 개념에는 남성 우월적 사고가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성차별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희생자라고 가르친다. 여성해방운동가들은 이런 식으로 경험을 균일화(이는 여성이 겪는 경험을 신비화한다. 그러나 여성 대부분이 일상에서 늘 수동적이고 무력하거나 힘없는 '희생자'인 것은 아니다.)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공통된 희생을 여성 연대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는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자신의 삶과 관련된 것으로 느끼려면 스스로를 '희생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이 희생자의 입장으로 유대를 맺게 될 경우, 자아가 확실한 여성들은 페미니즘 운동에 설 자리가 없는듯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희생자'로 보이고 싶어하고 희생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여성들이 오혀려 우리 사회 절대다수의 여성들보다 특혜를 받으며 권력을 가졌다는 점은 아니러니이다.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관한 글들이다. 매일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여성들은 아무리 상대적일지라도 자신의 삶에 어느 정도 통제력을 행사한다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되며, 스스로를 '희생자'로만 보아서도 안된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힘을 가졌든 그 힘을 지속적으로 행사해야 생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여성들과 연대를 맺는 일이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들은 공통된 힘과 자원을 바탕으로 다른 여성들과 연대를 맺는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 운동이 촉진시켜야 할 여성 연대이다. 이런 유형의 연대가 자매애의 핵심이다. P84-85

 

 민중을 주축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가 있을 때면, 공교롭게도 백인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장도 불붙는다. 이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억압받는 흑인의 요구와 백인 여성(특히 부르주아 계금 출신)의 요구가 있다면 백인 우월주의자 지배층에게는 백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할 것을 정치 문회한 조차도 이해할 수 있다. 인종차별을 종식하려는 급진적 운동(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죽어간 투쟁)은 지위 향상을 꾀하는 백인 여성의 계급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형성되 여성운동에 비해 월씬 위협적이다. P96

 

 자매애가 생기도록 하려면 오직 백인 여성 집단만 인종차별주의에 맞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색인 여성들도 백인 우월주의적 신념인 '내면화된 인종차별'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맞서야 한다. '내면화된 인종차별'로 인해 유색인 여성들은 자기혐오를 갖게 되거나, 억압적 세력에 대해서가 아니라 불공평함에 대해 서로 분노하거나 , 서로 상처와 모욕을 주거나, 혹은 민족이 다른 집단끼리 서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다양한 민족 집단 출신의 유생인 여성들은 서로를 불쾌해하고 미워하거나 경쟁하도록 학습죈 경우가 종종 있다. P101

 

 이렇듯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환경에서 중요하게 돤심두는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다르며 그 다른 점은 타인의 우리에 대한 인식에 얼마나 결정적 요인이 될지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차이를 존중하도록 서로 끊임없이 일꺠워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지만 모두가 억압을 받는 것이 아니며 억압의 정도가 균증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학생들과 나는 이야기 나눴다. 많은 학생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비해 자신들은 억압받거나 착취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은 무의미하다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사람들이 타인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을 경쟁적으로 비교하지 낳고 현실 그대로 자신의 경험에 초점을 맞출 때 더 큰 일치감을 느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P103-104

 

 지금까지 남자를 적으로 간주한 페미니즘의 수사법에는 긍정적 의미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남성들은 비록 삶에 이득이 없더라도 성차별과 성차별적 억압을 영속화하고 유지시키도록 사회화됐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이런 대다수 남성들과 지배계급 남성들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고자 했다면 남성들은 성차별이 자신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남성이 행한 여성학대를 도덕성 붕괴·광기·비인간화의 표출이라기보다는 마치 특권의 행사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성차별주의 이데돌로기는 남성을 세뇌시켜서 여성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아무 이득이 없는데 이득이라고 믿도록 만든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가들 역시 남성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왜곡된 권력관계나 자기행위에 대한 전반적 통제력 부족, 감정의 무력함, 극단적 비이성, 그리고 많은 경우 완전한 광기르 표출한 것이라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남성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이런 불안스러운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된다. 남자들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특권과 동일시하도록 세뇌당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나 타인에게 입힌 피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것이다. P130-131

 

 분리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홀로 페미니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믿도록 부추겼지만 실상은 여성 홀로는 불가능하다. 성차별적 억압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주된 행위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들의 의식과 사회 전체의 의식을 변혁시킬 책임을 맡아야만 성차별적 억압은 사라질 수 있다. 수백 년간의 반인종차별 투쟁을 거친 후, 현재 유생인들은 반인종차별 투쟁에서 백인들이 반드시 맡아야 하는 주요한 역할에 그 어느 때보다 더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성차별을 없애려는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성들은 주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는 남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에 맞게 더 잘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남성들도 저항 투쟁에서 똑같은 몫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P139

 

 여성이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으려면, 기존 사회 구조 안에서 권력을 획득해야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페미니즘 투쟁을 진척키실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부터 거부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은 수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더 큰 물질적 특혜를 얻고, 자신의 운명과 타인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으며 이모두는 중요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체제인 남성지배를 종식시키지 않을 것이다. 여성이 성차별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려면 권력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다. 가장 억압 받는 여성조차도 분명 나름의 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권력을 페미니즘 투쟁을 진척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착취당하고 압받는 집단이 쥐고 있는 권력의 형태에 대해 엘리자베스 제인웨이는 주요 저서 『약한 자의 권력 Powers of the Weak』 에서 설명하고 있다. 약한 자가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권력의 형태 중 하나는 '자산에 관한 정의를 권력자가 강요하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제인웨이는 이런 권력의 형태를 '불신하기 위해 권력을 정돈된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일컬었다.p151

 

 페미니즘 운동은 성차별적 억압·착취·차별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여성이 행사하는 권력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민중여성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이 자신들은 권력이 없다고 믿도록(성차별주의가 그랬던것처럼)조장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이 매일 행사하는 권력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며, 그 권력들이 성차별적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데 어떻게 사요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성자별주의는 절대로 여성에게 권력이 없도록 만들지 않았다. 여성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억압하거나 그 힘을 착취했을 뿐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힘과 권력을 인지한다면 여성 모두가 해방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다. p156

 

 페미니즘이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제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심리적 착취에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임금을 받든 무임금이든 여성이 하는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에게 새로운 자아개념과 자기정의를 제공한다.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전문직과 출세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운동에 창여한 이들은 마치 다른 모든 노동, 특히 저임금의 노동은 가치가 없는듯 행동했다. 페미니즘이 민중여성들이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태도는 남성들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가사노동에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그것이 여성들에게 어느정도 경제력을 주고 그들이 한 일에 대한 간치를 부여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보수가 주어지는 서비스업 역시 가치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사노동에 임금을 책정한다고 해서 사회가 가사노동에 가치를 부여할 가망은 없어 보인다. 보수가 주어지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금전적으로 보수를 받는다고 해서 심리적 착취의 정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들의 일은 가사노동과 마찬가지로 낮게 평가된다.(...)그러나 적절한 가사 노동이 개인의 건강, 미적 감각 발달, 스트레스 해소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조사한 페미니즘 연구는 거의 없다. 아이들과 성인은 가사일을 배우면서 자신의 주변을 정돈해야 하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주변 환경을 올바로 인식하고 돌보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가사일을 배우지 않는 남자아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들은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가정생활에서 여성에게 불필요하게 의존하는 태도를 키우는 것이 허용되며, 그 결과 건강한 자율성을 키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자아이들은 대게 가사노동을 강요당하면서도 그 노동은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여기도록 배운다. 이런 태도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가사노동을 싫어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을 박탈당한다. 그들은 가사노동뿐 아니라 모든 일을 지겨워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며 일하지 않는 삶, 특히 서비스 일을 하지 않는 삶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그들이 가사노동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배웠더라면 모든 일에 다른 식으로 접근했을것이다. p169-170

 

 페미니즘 저술의 가치는 학문 수준을 만족시키는가 여부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읽기 쉬운가 여부로 정해져서도 안 된다. 동시에, 단지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되서도 안 된다. 페미니즘 저술과 학문이 페미니즘 운동은 축진시키고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스타일의 문제는 정치적 의도와 연계하여 고려해야 한다. 교육을 잘 받은 소수만 페미니즘사상들을 이해하는 한 민중 기반의 페미니즘 운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문자가 페미니즘 사상을 널리 보급하는 주요 매체로 유지된다면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들의 교육적 요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부르주아적 계급편견 때문에 많은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대다수 여성의 생생한 경험과는 관계없는 사상과 페미니즘 혁명을 이루는 데 전혀 쓸모없는 이론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런 사상에 화가 난 많은 여성들은 모든 이론을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치부해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을 결집시켜서 사회를 변혁시킬 성공적 페미니즘 운동을 계획하고 이뤄내려면 사상과 이론이 중요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느 사실을 여성들은 알아야 한다. 혁명적 정치학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상과 이론을 중요시 하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다. p180-181

 

 남성은 더 이상 여성에게 완전한 권위와 통제력을 가지지 않을 뿐더러 자기 삶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통제되었다. 우리 문화에서 노동자인 남성 대부분은 (일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통제되고 지배된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과 달리 일하는 남성은 남성 우월주의와 권력이라는 환상을 매일 맛본다. 사실, 일하는 남성들이 지닌 권력은 아주 미미하며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 질서에 저항하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 지배 권력으로 인해 그들은 일이라는 공적인 세상에서 비인간화되고 착취도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었고 사적인 세상, 즉 가정이나 성적관계가 맺어지는 곳에서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권력의 느낌을 그들에게 회복시켜줄 것으로 기대하도록 배웠다. 그들은 자신이 가정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이는 착취적인경제 사회 질서를 받아들이는 데 대한 대가라고 배웠다. 지배적인 남성 자본주의자들은 남성의 여성 지배를 묵과하고 영속화했고, 그럼으로써 남성이 가정에서는 폭력을 행사해도 일터에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확실히 막을 수 있었다. p190-191

 

 페미니즘과 군국주의에 관심을 둔 우리들은 여성(아이를 출산한 여성조차도)이 태생적으로 비폭력적이거나 생명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남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어머니인 여성들은 싸울을 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은 모두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용인되며 사랑하거나 보살피는 상호작용보다 더 가치 있는 방식이라고 아들에게 가르친다. 여성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명을 소중히 하고 보살피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들이 그런 보살피는 역할을 존중하고 가치부여를 하는 정도는 감정을 억제하거나 힘을 사용하여 권력을 주장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폭력과 지배,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쟁을 규탄하는 여성들은(이들이 모성애의 영향으로 이런 샌책을 했을지라도) 정치적 의사결정과 선책을 하는 정치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여성들이 여성에게는 전쟁에 반대하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는 견해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다면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남성 워월주의의 철학적 기반인 생물학적 결정론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다.p200-201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저항하는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 백인 여성에 의해 주도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이 사회에서나 여성 전체에서 대다수 백인 여성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 수많은 백인 여성들의 군국주의에 대한 진심어린 지지는 지속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이 여성들에게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이들의 시각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성과 가부장제만이 사악하다는 듯 행동을 한다면 그들이 해야 할 도전을 피하는 것이다. p202-203

 

 남성과 여성이 함께 미국의 폭력문화를 만들어왔으며 따라서 이런 문화를 변화하고 재창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어떤 형태든 폭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 이를 테면 전쟁,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성인이 아동에게 가하는 폭력, 청소년 폭력, 인종차별적 폭력 등을 말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을 멈추려는 페미니즘의 노력은 모든 형태의 폭력을 멈추려는 운동으로 확대되야 한다. 넓게 본다면, 위계 구조가 인간 상호작용의 기본이라는 사고를 뿌리 뽑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모든 형태의 폭력을 멈추려는 운동은 의식을 급진화시킬 잠재력이 있으며, 남성의 여성 지배를 멈추게 해야 하다는 인식을 강화시킬 수있다.p204-205

 

 공동으로 자녀양육의 책임을 맡도록 하여 여성을 혼자 자녀양육의 우선적 책임을 떠맡는데서 구제하려면, 여성들과 남성들은 우선 자신의 의식부터 변혁해야 한다. 격리된 채 홀로 자녀양육을 하는 것은 (부노의 성별과 상관없이)자녀를 키우거나 부모로서 행복해지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사회에서는 여성이 양육의 대부분을 맡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상황은 금세 바뀌것 같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 측면에서 자녀양육에 관한 이슈를 새롭게 조직화해야 한다. 요점은 홀로 양육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양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 모든 여성들은 군비경쟁이나 다른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던 세금을 사회에서 양육과 보육의 질을 개혁하는 데 사용하자고 단결하여 요구해야 한다. 부모 한쪽이 홀로 맡는 양육의 위험을 강조하고, 남성도 양육에 동참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대개가 남성이 양육에 참여하는 가정에 산다. 그래서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남성이 참요하는 양육형태를 (자녀를 키우기에 가장 좋은 사회시스켐일지라도) 마음대로 선책 할 수 없는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런 유형의 사회시스템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보육의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 기반의 공공 탁아소에서 제공될 수 있다. 여성들과 남성들은 모든 아이들을 가능한 한 최고의 사회시스템에서 자라나도록 해야 하며 여성 홀로, 혹은 여성이 주로 떠맡지 않는 양욱에 관한 이슈들은 조직화해야 할 필요성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 p225

 

'성적 해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는 사람들이 성적 행위를 더 많이 그리고/혹은 더 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성적 해방의 목적이라는 가정이 늘 포함된다. 그러나 성적 규범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억압적이라고 생각한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성적 활동을 '반드시'해아 한다는 가정이다. 이 '반드시'라는 말은 성적 강압을 표현한 것이다. 성적 해방을 지지하는 이들은 자신의 성적 경헝의 질이나 혹은 성적 자유를 훌륭히 행사하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성적으로 억압됐다는 뜻을 비친다. 성적 해방보다는 성적 억압의 종식을 우선적으로 강조해야만, 성행위를 선택 할 성적 자유만큼이나 성행위를 하지 않을 성적 자유도 표명할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할수 있다. p230

 

여성들은 자신들이 성적 취향에 상관없이 페미니즘에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의 목적은 소위 '정치적으로 옳은' 섹슈얼리티에 맞게 규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성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모든 여성(그리고 남성)이 자유롭게 섹스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운동의 일환으로서 동성애자들에게 가하는 억압을 뿌리 뽑으려 노력해야 한다. p235

 

 

 

 

 페미니즘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비판과 교류가 끊이지 않는 특유의 지적인 환경을 형성해왔다는 점이다. 급진적 사상가들의 목소리(유색인 여성의 목소리도 포함된다)에 귀를 기울이면서 페미니즘 이론과 실제의 모습은 변화했다. 계몽되지 않았던 많은 백인 여성은 그제서야 거부의 벽을 깨부수고, 젠더를 다뤘던 과거의 기록과 이야기들을 새롭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온동이 많지만, 그 중 페미니즘 운동이 가장 자기 비판적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필요하다면 그 방향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이런 의지는 페미니즘 투쟁에 힘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 되어 왔다 이런 내부 비판은 모든 변혁의 정치학에서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삶이 고정되거나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는 것처럼, 페미니즘이론은 유연하고 열려 있으며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다. <들어가는 말 중 발췌>

 

 

 먹고 살기 바쁜데 뭔 페미니즘 이냐고 생각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신이 여성이라면 단지 여성이기때문에 남성과 똑같은 대학을 똑같은 학비를 감당해서 똑같은 회사에 취직하고 똑같은 일을 해도 남성에 비해 60%정도의 급여를 받아야 하고, 살림도 하고 애도 키우고 해야 한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당신이 더 먹고 살기 힘든것 아닌가?

또 당신이 남성이라면, 단지 남자로 태어났기에 남자니까 참고 남자니까 울면 안되고 남자니까 도움을 청해서도 안되고 남자니까 군대가고 남자니까 힘들어도 혼자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면 그것도 문제 있는것 아닌가? 그래서 당신도 더 먹고 살기 힘든것 아닌가? (쓰다보니 남자로 사는게 역시 이 대한민국에서는 조금 더 편하다. 적어도 생명의 위협을 시내 한복판 화장실이나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느껴야 하는 일은 없을테니- 심지어 집에서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도)

 

 남자들은 자신이 남자인것 자체가 특권이라는 것을 알길이 없다. 태어나면서 가진 권리가 어떻게 특권으로 느껴지겠는가. 공기같은 특권을 느낄수 있는 사람은 정말 감수성 예민한 분들이다.

자신이 특권을 누리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이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한 것들이 더 많다고 느껴져야 깨닫지도 못한 그 특권을 내려 놓을수 있을까?

 

 

 이 책에서 여러번 남자들에게 동기부여시키는 말이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그려보라'고 하면 남자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흠.....이땅에는 자신의 엄마, 여동생, 여자친구, 아내의 성을 다른 남자들과 공유하는 100만 소라넷 오빠, 아들, 남편, 남자친구가 있다.

분리주의가 결코 성공할수 없을꺼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는 하지만 정말 ....분리주의 하고 싶다.....

 

아! 이책은 정말 좋습니다...아 진짜 남자한테 좋은데 뭐라고 설명이 안되네.....

 

 

 

배울것이 많다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은 요즘이다.

배움에 끝이란것이 없겠지만,

배우고 난 끝은 있어야 하는데.....

 

 

 

 

 

 

너무 무겁나?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와 함께 사는 페미냥 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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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0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에 대한 아무개 님의 감상평을 보니 절판된 ≪행복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 ≫의 재발매처럼 보여집니다.

아무개 2017-02-07 13:02   좋아요 1 | URL
책날개에「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까지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와 「행복한 페미니즘」이 각각 소개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같은책은 아닙니다만. 두책의 내용이 많이 비슷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