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생각했다. 사랑의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한 타인으로 남을수 없는 걸까.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때로는 날 선 말로 서러의 굳은살을 해체하며 예민하게 성장할 수 있는 관계로. 여전히 나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힘들 때가 많지만, 많은 부분 이 욕망이 상대를 위하는 게 아니라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란 걸 떠올리며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아니라면 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는 못하니까. 상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서 영향을 주는 것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친절한 타인으로 남는 게 더 어렵다. 관계 맺음의 상상력 갖기, 존재 앞에서 겸손해지기, 그것이 관심이 아니라 침범이었다는 걸 인정하기.p47

 

 "폐미니스트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잘 몰라요, 특히 저와 여러분의 세대가 직면한 차이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요. 우리가 서로의 경험을 초월하고 온전히 알 수 있을까? 회의감도 들어요. 그래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어요," 지난여름, 카페에서 열린《젠더 감정 정치》출판기념회에서 여성학자 임옥희 교수께서 하신 첫 마디였다. 수십 년 페미니즘을 공부하고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자세는 괜한 겸손이 아니라 정답에 가까워지려는 노력 같았다. 페미니즘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같다.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한 철학자 강신주가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확신했던 자세와 대비된다. 모든 것을 하나로 설명하는 '단순화하기'의 유혹을 뿌리치고 끊임없이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이야기 하려는 시도는 어렵더라도 꼭 필요하다.

 나는 내가 경험하고 겪은 부분에 한해서만 잘 느끼고 알 수 있을 뿐이고, 다른 상황은 분명 모를 수 있다는걸 인정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마땅히 그렇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p122-3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인상 깊었던 개념은 '노여움'이었다. 노여움은 주로 권력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인데, 남성이 자신의 뜻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여성에게 기본적으로 갖는 감정이 이와 같다고 했다. 네가 감히 나를 거부해, 나에게 토 달아, 나를 미워해, 나한테 뭐라고 해? 나와 술자리를 가졌던 그도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은 나에게 노여움을 느꼈을 것이다. '칭찬이었는데, 감히 나에게 정색해?'p132-3

 동등하게 소통할수 있는 존재가 아닌 고분고분한 대상을 찾는 심리는, '내 뜻을 거스를 때 혼낼 수 있다'는 당위를 전제한다. 상대가 여성일 경우 으레 가르치려고 드는 남성의 특성을 일컫는 '맨스플레인'은 그래서 중요하다. 단지 '가르침'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가르칠 수 있다는 불평등한 구도 자체가 폭력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맨스플에레인이 대중적인 언어가 돼서 대화를 하다가 "아, 내가 또 맨스플에인했네"라고 말하는 남자가 많아졌다. 문제는 '말'만 그렇게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인식을 성찰하고 변화하려는 노력 없이 "내가 또 맨스플레인했네, 이렇게 말하면 또 맨스플에인으로 보이나?"라는 손쉬운 반응은, 결국 자신의 상황을 의화시키며 권력관계는 그래도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반영한다. p135-6

 

 임신중절수술을 진료 목적 외에 마약을 처방하거나 환자에게 성폭력을 행한 것과 같은 의료 범죄와 등치시켜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분류해 처벌하겠다는 정부를 보며, 누구를 위한 도덕인가 묻지 않을수 없다. 자생력이 없고 아직 생명으로 볼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존재를 고려하는 도덕은 이처럼 공공연하게 얘기 되지만, 원치 않은 임신으로 신체적·사회적 단절과 험을 끌어안아야 하는 여성을 위한 도덕은 없다. p158

 

 내가 비혼을 고집하게 된 데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가 있다. 동거를 경험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대로 함께 살아도 충분하다고 여기게 된 점, 동물가족과 살면서 종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갖게 된 점, 지구를 위해서라도 인간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생긴 점, 반한적인 성향 탓에 스스로 용남되지 않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은 점,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된 점, 그리고 역할극을 하지 않고 내 고유의 존재로 관계 맥조 살아가는 지금 주위 환경의 영향도 크다.p173

 

 데이트폭력은 언제나 무 자르듯 단순한 구도로 나뉘지 않는다. 피해자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다. 순결하고 합리적인 피해자는 없다. 함꼐 욕하고, 대응하고, 저항하는 , 심지어 '나쁘기도'한 복합적인 존재이다. 피해자를 수식하는 말이 무엇이든, 어떤 존재도 폭력을 당해선 안 된다. 그것만이 절대적 원칙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합리적 대처를 요구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기계적 잣대라는 걸 나는 안다. 데이트폭력은 잧선 남자에게 폭력을 당한 일이 아닌,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은밀하고 친밀한 폭력이다. p.187

 

 여자라서 주목받는 '의외성'은 반동적으로  '여자는 역시 ~하다'와 같이 비하하는 평가의 연장선에 있다. 사회운동을 하며 만났던 전 남자친구는 "너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사회문제에 관심 있고 말이 통해서 좋아"라고 말하곤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너는 여자들 특유의 감정적인 명이 있어, 너는 나처럼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해"하며 나를 깔아 내렸다. 남자친구만이 아니라 사회적 활종을 하며 만난 남자들도 나를 동료라고 여기기 전에 잠재적 연애 대상 혹은 자신이 가르쳐줘야 하는 부족한 여자로 여겼다. 역사와 각종 철학을 줄줄 읊으면서도 젠더 감수정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p271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문제를 사소하게 만드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소한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집회 현장에서 박근혜와 최순실을 '년'으로 욕하지 말라는 발언이 집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거라는 식의 글을 당당히 올릴 수 있는 권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발언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순진한 태도는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의 오만함 일뿐이다. 그들이"조개"라고, "사소하다"고 외면해왔던 문제는 여전히 나와 내 주위 사람을 떨게 하는 일상적 공포다. 국가폭력에 저항하면서 왜 자신의 폭력은 성찰하지 못하나. 당신의 폭력은 술때문인가? 박근혜 때문인가? 자본주의 때문인가? 통일이 안 돼서? 미국의 공작 때문에? 왜 당신은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보고 성찰하지 못하는가?p275

 

 이제 막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를  찾아서 더듬더듬 기존의 '역할'을 벗어나는 중인데, 여전히 많은 여성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자리를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미안해 한다. 또 타인게게 그것을 알릴 때,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상처가 됐거든요,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누군가 흔들 때 충격이 컸어요. 제 세계가 온통 흔들리는 경험이었어요. 밤새 울었어요. 그런데 같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될까요?" 한 청년이 글썽이며 물었다.

 나는 말했다."여성학자 정희진은 '안다는 것은 상처 받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아는 게 편하기만 하면 무슨 소용일까요? 저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알아가는 건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담해왔던 세계를 직면하면, 나도 모르는 새 저질러왔던 폭력이 선명해지면서 자책과 후회·부끄러움이 밀려와요. 동시에 내가 폭력인지 모르고 당하고 지나쳐왔던 일이 선명해 지면서 분노와 슬픔이 밀려오고요. 그렇게 복잡한 감정속에서 상처받는 게 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도 '정상'의 범위에만 안주할 수 없느 현실이니까, 당장 상대가 앎을 삶으로 잇지 못한다고 해도 일단 알게끔 해주는 건 중요한 일 같아요. 침묵이 평화가 아니듯, 모른다고 폭력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아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가 불현라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계속 상처받더라고, 적어도 전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요" p295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인간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그저 세상에 툭 던져진 존재이고, 다만 살아 있기에 살아가는 것뿐이다. 점점 죽어가는 몸, 영원할 수 없는 관계, 불확실한 삶에서 어쩌면 눈물은 필수다, 독방에서 울 것인가, 광야에서 울 것인가, 어디에서든 울어야 한다면 나는 광야를 선택할 것이다. 적어도 나처럼 울고 있는 누군가가 보이는 곳에서 함께 울고 싶다. 그때 나는 인간이, 내 존재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p296

 

 조근조근한 글과는 다르게 여러 사회운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신분이다..

지친마음에 큰 위로를 받고 많이 울기도 했다.

페미니즘 시작하는 모든 분들이 이게 맞나 싶고 지치고 힘들때 한번씩 찬찬히

읽어 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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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0-27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불편한데 인용해주신 부분 참 좋네요...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좀 찬찬히~~~~

아무개 2017-10-27 19:22   좋아요 0 | URL
에세이집들 읽다보면 가시처럼 목에 탁걸리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책에선 그런 점이 없었어요.
저보다 열살넘게 어린분인데 언니 삼고 싶기도 하고요^^;;;

다락방 2017-10-28 07:06   좋아요 0 | URL
어리다구요?!!!!!!!!!!!

다락방 2017-10-28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들이 참 좋네요. 추천 받아들여 저도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