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나를 앞에 두고 말했지만 나를 향해, 나더러 들으라고 말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은 말만 하고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점에서는 누구보다 잘 듣고 가장 잘 드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오래전에 아버지가,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내 앞에서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야말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들은 말은 ,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 였다고 기억하는데, 그것은 그가 정말로 하거나 듣기를 원했던 틀림없는 말, 완전한 그의 말이었을까, 라고 질문하게 되는것은, 그렇게 말한 사람이 이 세상을 (견디지 않고)떠났기 때문이다. p11-12

 

 어머니는 아버지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해서만 그런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타고난 성격 같은 것이었다. 다른 모든 일에 대해 그런 것처럼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쉽고 단순하게 이해하려 했다. 쉽고 단순한 접근을 통해 명쾌하고 효율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어머니에게는 있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자신감과 적극성에 기반한 그녀의 그런 처세 방법은 대체로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쉽고 단순한 파악을 일삼아온 사람은 쉽고 단순하게 파악되지 않은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확정의 상태로 내버려져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쉽게 결론 내리고 의심없이 믿어야 편하기 때문에 쉽게 결론 내리고 의심 없이 믿는다. 그럴 때 그에 의해 파악된 것은 그의 믿음 외에 무엇일까. 그가 믿고 싶은 것 말고 다른 무엇일 수 있을까.p13

 

 이승우의 글은, 저자를 모르고 읽어도 이승우를 아는 사람이면 단박에 알아 차릴수 있다. 그만큼 작가의 스타일이 두드러 진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자기복제를 하고 있다는 것일텐데, 이 한국남성소설가의 자기복제는 자기연민 덩어리인 나에게 낯설지 않다.  이승우 소설의 주인공 대부분은 현실적인 책임감 보다는 윗 발췌글에서처럼 '불확정의 상태로 내버려진'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쉽고 단순한 자신감과 적극성에 기반한 책임감 있는 누군가가 그를 현실에 잡아둔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도망자이며 화자는 그 도망치는 자와 그로부터 버림 받는 사람을 바라보는 방관자이다.

 

그 누군가로부터 도망자이길 바랐고, 그 누군가에게 버림받은자이며 그 누군가들에게 방관자인

나는 이 자기복제의 소설을 복제하듯이 또 찾아 읽는다.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 웅얼웅얼...

 

 

 

 

 

 

 

 

 

 

 

 

 

 

 

 

 

 

 

 

 

 내가 좀 도와줘요? 하고 말을 꺼내놓고 나는 움찔했다. 정말로 도와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다고할 수도 없었다. 그보다 그 말을 할 때 설명하기 힘든 가학적인 쾌감이 혈관을 타고 빠르게 휘돌아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줄 일이 있기는 해요? 하고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어투에서 그가 경솔함이나 교활함을 읽었을까봐 신경이 쓰였다. 꼭 그에게만 그런 건 아니지만, 예의바르고 교양있는 사람으로 이해받으려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부정할수 없다. 그 때문에 가끔 마음속에서 종이 구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는 것도. 그때도 종이 구겨지는 소리 같은 걸 들었으므로, 되도록 ,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서둘러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다.p142-3

 

이 구절을 읽으며 내 마음에서 파삭 소리가 난것 같다. 나의 코르셋은 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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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0-17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이승우가 좋으면서도 약간 두렵기도 하고요. 뭐,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좋아하는 작가, 정말 좋아하는 팬심을 넘어 존경심까지 갖게 되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이런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 양가적이라고 하나요.
좋은데 부담스럽고. 감탄하면서 읽고 다시 또 읽으면서 절망하고. 그런데 다시 또 찾아읽고 ㅠㅠ

잘 지내시죠~~~
오늘 아침에는 특히 바람이 차네요. 아침에는 두툼하게~~~^^

아무개 2017-10-17 13:10   좋아요 0 | URL
이승우 소설들이 기본적으로 종교적이어서 단발님께는 더 그럴수도 있겠어요.

아침 출근길엔 4도였는데 지금은 18도네요. 감기걸리기 딱좋은 일교차에 건강유의 하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