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삐 언니 책읽는 가족 17
강정님 지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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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화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나의 시선을 잡아 끄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강정님 작가의 <이삐 언니>가 그것인데 표지 속 추억의(?) 머리를 하고, 시골 마당을 배경으로 땅을 보고 걸어가는 아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 해왔다. 꼭~ 생생히 살아서 금방이라도 내 곁을 걸어 갈 것 같은 느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삐 언니>는 2000년에 동화집으로 초판이 발행되었고, 다시 3년 만에 성인용 양장본(개정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삐 언니>는 강정님 작가님이 만 63세라는 늦은 나이에 출간한 첫 작품집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1940년대 밤나무정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작가 이금이님은 이 동화집 <이삐 언니>를 읽은 감동을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하였는데, 나도 참~ 따스한 마음으로 정겹고, 포근한 사람들을 만나고 온 느낌이다.^^
이 책 <이삐 언니>는 일제 강점기 말인 1940년대 초와 해방 공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밤나무정 마을에 사는 ‘복이’라는 여자 아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삐 언니},{안개 골짜기}, {봄이 오는 날에}, {월이의 귀가}, {날아라 태극기}, {광암 아저씨의 섬}등 여섯 편의 이야기가 연작의 형태로 서로서로 긴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꼼꼼한 묘사 그리고 깊은 생각과 이야기 속 일 들의 사유들이 잘 정돈되어 이해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삐 언니}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인 복이가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 송엽이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집에 없자 무작정 낯선 길에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기 보이는 저 모퉁이까지만 갔다 오자!’ 하던 처음의 호기심은 길의 신비로움 때문에 마침내 복이를 낯설고 먼 세상의 길 위로 이끌려간다. 복이는 아주 멀게만 느껴지고, 작아보이던 동생산이 실제로는 더 큰 산이라는 걸 알고 놀란다.^^ 복이는 동생산이 “놀라지마, 니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려고 발돋음 한 거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너무~ 감동적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산이 발돋음 한다는 이 말~^^) 설렘과 두려움과 기쁨과 고단함으로 뒤범벅이 된 복이의 우연한 첫 여정은 삼십 리 밖에 있는 자신을 예뻐해 주던 시집 간 친척 언니인 이삐 언니네 집에 까지 이끈다.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복이는 ‘잠깐 내게 와서 머무는 손길, 슬쩍 스치는 손길’ 정도면 족하다는 엄마에 대한 아주 작은 자신의 바람마저 이루어 지지 않아 슬퍼한다. 그런 복이를 위로하고 안아주던 사람이 이삐 언니였다. 이렇게 어쩌면 이삐 언니를 찾아 온 이 길이 겉으로 보기에는 단지 호기심 어린 여정이었지만, 어린 복이가 갇힌 작은 삶에서 스스로 세상 속으로 내딛는 첫발인 것이다. (47쪽의 이삐 언니와 복이가 반가움에 서로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그 따스한 기운이 내게도 전해져 왔다면 너무 지나친 건가~^^;;)

{안개 골짜기}에서는 고모할머니 시집 조카내외가 복이 집에서 한 겨울을 함께 지내게 된다. 그 아주머니는 옛날이야기를 잘 해주셨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가 바로 ‘안개 골짜기’에 얽힌 이야기이다. 미암산의 ‘안개골’이라는 곳에 죽은 어시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어느 부부가 살게 되는데... 어시들에게 시달리다 초당할아버지의 부적으로 어시들을 물리치지만, 결국 그 부부는 그 곳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읽는 동안 정말 한 겨울 시골집 아랫목에서 할머니에게서 듣던 무서운 귀신이야기 같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오싹오싹~ 무섭기도 하였다.^^;;  

{봄이 오는 날에}는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복이를 데리고 행화촌 잔칫집에 간다. 이제 먼 학교 길을 다녀야 하는 복이의 걷는 훈련을 하기 위한 첫 나들이인 셈이다. 그런데 집에서 기르는 개 월이가 자꾸 쫓아도 끝내 잔칫집까지 따라온다. 그리고는 잔칫집 마루 밑에 새끼 다섯 마리를 낳는데 다음 날 아침, 월이와 새끼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자 복이와 할아버지는 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월이와 새끼들이 먼저 돌아와 있었다. 그 날 밤, 월이는 다섯 번이나 왕복하여 강을 건너고 캄캄한 밤길을 지나야 하는 먼 거리를 새끼들을 한 마리씩 물어 나른 월이의 모습에서 어미의 극진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106쪽에 보면 복이가 빠른 할아버지의 걸음을 따라가면서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힘을 아끼고 숨을 고르게 하며 일정한 보폭을 유지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잡으려고 달리거나 걸음을 빨리 하여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 시선을 전방 오 미터 이내에 두고 몸의 긴장을 풀고 다리에 힘을 빼고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머릿속을 텅 비게 하여 몸의 피로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느새 먼 길을 걷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그것은 바로 소에게서 배운 것 이였다.’라고... 이것은 쉬운 듯 보이나, 인생을 깊이 있게 살아 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지혜로움이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 복이가 잔칫집에서 너무 많이 먹어 밤에 뒷간에 가면 무서우니까... 뒷간에 안 가려고 닭들에게 주문을 거는 노래를 하는데...(이 노래는 복이가 집에서도 써 먹는 노래로 효과도 있다^^~~ㅋㅋ)
‘닭아 닭아 꼬끼오 닭아
내 말 좀 들어봐라
닭이 밤에 똥을 누제
사람이 밤에 똥 눈다냐.’
어찌나 우습던지...^^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뒷간을 안 가게 될까?~~^^

{월이의 귀가}에서는 나쁜 사람에게 잡혀간 월이를 무사히 찾아 집으로 데려오는 가족들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날아라, 태극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작은아버지의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독립이야기, 그리고 태극기 이야기들이 나온다. ‘태극’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덕이에게 ‘태극’을 마치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일본 놈들만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귀신보다, 회오리바람보다 무서운 것으로 이야기하는 장면(160쪽~)이 나오는데, 어찌나 그럴듯하던지~^^

그리고 {광암 아저씨의 섬}에서는 할아버지가 옛날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돈 대신 받게 되는 아주 작은 섬에 광암 아저씨가 가서 소금을 얻어 팔아 큰 이익을 챙겨 돌아오는데,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주는 거액의 수고비를 마다하고 대신 아주머니와 함께 그 섬으로 떠난다.~^^    
이렇게 복이가 여섯 이야기 전편에 다~등장하지만, 매 이야기마다 주인공의 모습을 띄지는 않는다. 더러는 주변의 인물로 자연스럽게 함께 한다. 이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무리 없이 협조해서 풍요롭고, 정겨운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족구성원이 모여 완전한 가족의 모습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순수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이끌어내신 강정님 작가님의 살아오신 인생의 아름다움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창가에 앉아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에 잠시 잠겨 보시는건 어떨까요? ~^^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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