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김종영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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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미국영화 아벨 페라라의 신체강탈자. 착륙하는 헬기 아래서 쳐다보는 생물들의 시선은 무척 공포스럽다. 학교든 한국의 어느 장소든 사회조직의 중심에서 멀수록 출신이 미천할수록 영혼없는 종을 강요받을 수 있다. 9세기 한국 최치원 부류의 당 유학은 그런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것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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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쿠데타였다 - 흔들리는 헌법, 윤석열과 정치검찰
이성윤 지음 / 오마이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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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패거리 전통은 슈퍼악당들의 활약으로 생생히 전한다. 문벌, 학벌, 관피아, 신군부 하나회, 머지 않아 완전히 검증될 檢벌(검찰 내 엘리트 집단)에 이르기까지. 이들 이익집단은 국가권력이나 막대한 사익의 독점을 추구한다. 이해관계가 다르면 외로이 적이 되거나 입닥치고 종이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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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문소설 작가 22인 학고방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611
왕더웨이 지음, 김혜준 옮김 / 학고방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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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리된 근현대 외국문학사나 1950년대 이후의 외국문학사/소설사는 드물다. 천쓰허의 《중국당대문학사》도 좋았다. 별권으로 단편선집까지 있으면 그만이겠다. 범중화적인 작가론인데 쑤퉁, 모옌, 위화, 옌롄커 등 거장들 외에도 잘 살필 작가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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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정진영 지음 / 무블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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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시간적으로 거리를 둔 현실을 다룰 때가 많다. 닥터로의 《다니엘서》도 대략 20여 년의 간격이 있다. 한편 일본소설 《공정의 파수꾼》,《하늘을 나는 타이어》처럼 아주 가까운 현실을 끌고오기도 한다. 정진영의 소설들이 그러한데 한국소설의 지형도에서 매우 낯설지만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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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10개 만들기 -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
김종영 지음 / 살림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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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홍사훈의 경제쇼에서 교육평론가 이범 편을 보았다. 거기서 김종영의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상상력을 접하게 되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론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지방자치나 지방분권과 묶어서도 의미있는 시도이기에 다시 살필 기회가 되었다.

앞서 다른 데서 떠들었던 말을 다시 풀어놓겠다.

한국은 인접 국가인 미국, 일본과 유사하면서도 그들을 뺨칠 정도로 유독 강한 학력/학벌사회이다. 이 나라는 예로부터 출신가문이나 혈통을 매우 중시하는 신분제 국가였다. 한국의 마지막 문벌인 민씨 일가와 소수의 가문들(명문가)이 대대로 국가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조 사후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에 그 폐해가 짓누르고 있었다. 갑오개혁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신분제 사회는 와해되어 사라졌다고 믿었다. 적어도 경국대전처럼 법제도로 사회의 계층 구조를 성문화해서 특권을 누리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자기가 전근대적인 한국에 살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자기 신분의 골격인 출신가문이나 혈통이 이제는 출신학교로 바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까? 과거 어딘가에서는 바스커빌(지명)의 수도사 윌리엄이라고 말하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자기 정체성을 밝혔다. 우리로 치면 노량진에서 태어난/사는 공시생 길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역이 출신가문과 더불어 중요한 건 조상의 출생지나 거주지가 신분의 우열을 의미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등록부(호적)상으로 성 앞에 표시되는 본관(지역)을 보면 잘 이해된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 이 시대에는 자기는 서울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윌리엄이라고 서류나 구두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출신학교를 서울대가 아니라 지방국립대인 경북대나 제주대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이미 한국은 출신학교의 우열에 따라 사회의 계층 구조가 촘촘이 성립되어 있다. 서울대 출신의 변호사 윌리엄과 지방국립대 출신의 변호사 윌리엄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 흔히 지방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대의 1/3에서 절반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엄청난 차이는 국가의 교육예산 지원에서 비롯되는데 적서차별이니 부익부 빈익빈이니 하는 논란을 부추긴다. 이 격차는 학교 졸업 후에도 쫓아다니며 혹독한 사회 인식 아래서 직업이나 직장, 소득, 결혼 등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국공립대 영역에서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성립된다면 그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는 파리대학 위에 옥상옥을 만들었지만 건너편 독일의 이상적인 국공립대 운영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방향은 다르지만 저자가 밝힌 캘리포니아 대학 모델도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제도에 변화를 준다면 말 못할 자기 정체성의 사회 구조를 서서히 완화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19세기 한국에서 단절된 것이 아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상상력은 프랑스혁명처럼 단숨에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인생이 19세기 한국으로 타임슬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 거기서 출신학교의 굴레를 쓴 변호사 윌리엄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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