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
김종영 지음 / 살림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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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홍사훈의 경제쇼에서 교육평론가 이범 편을 보았다. 거기서 김종영의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상상력을 접하게 되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론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지방자치나 지방분권과 묶어서도 의미있는 시도이기에 다시 살필 기회가 되었다.

앞서 다른 데서 떠들었던 말을 다시 풀어놓겠다.

한국은 인접 국가인 미국, 일본과 유사하면서도 그들을 뺨칠 정도로 유독 강한 학력/학벌사회이다. 이 나라는 예로부터 출신가문이나 혈통을 매우 중시하는 신분제 국가였다. 한국의 마지막 문벌인 민씨 일가와 소수의 가문들(명문가)이 대대로 국가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조 사후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에 그 폐해가 짓누르고 있었다. 갑오개혁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신분제 사회는 와해되어 사라졌다고 믿었다. 적어도 경국대전처럼 법제도로 사회의 계층 구조를 성문화해서 특권을 누리거나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자기가 전근대적인 한국에 살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자기 신분의 골격인 출신가문이나 혈통이 이제는 출신학교로 바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까? 과거 어딘가에서는 바스커빌(지명)의 수도사 윌리엄이라고 말하되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자기 정체성을 밝혔다. 우리로 치면 노량진에서 태어난/사는 공시생 길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역이 출신가문과 더불어 중요한 건 조상의 출생지나 거주지가 신분의 우열을 의미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등록부(호적)상으로 성 앞에 표시되는 본관(지역)을 보면 잘 이해된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 이 시대에는 자기는 서울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윌리엄이라고 서류나 구두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출신학교를 서울대가 아니라 지방국립대인 경북대나 제주대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이미 한국은 출신학교의 우열에 따라 사회의 계층 구조가 촘촘이 성립되어 있다. 서울대 출신의 변호사 윌리엄과 지방국립대 출신의 변호사 윌리엄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 흔히 지방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서울대의 1/3에서 절반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엄청난 차이는 국가의 교육예산 지원에서 비롯되는데 적서차별이니 부익부 빈익빈이니 하는 논란을 부추긴다. 이 격차는 학교 졸업 후에도 쫓아다니며 혹독한 사회 인식 아래서 직업이나 직장, 소득, 결혼 등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국공립대 영역에서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성립된다면 그 변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는 파리대학 위에 옥상옥을 만들었지만 건너편 독일의 이상적인 국공립대 운영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시도가 제도에 변화를 준다면 말 못할 자기 정체성의 사회 구조를 서서히 완화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19세기 한국에서 단절된 것이 아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상상력은 프랑스혁명처럼 단숨에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인생이 19세기 한국으로 타임슬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 거기서 출신학교의 굴레를 쓴 변호사 윌리엄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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