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 어느 교사의 마지막 인생 수업
다비드 메나셰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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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점점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밤, 한 도시에서 다름 도시로 밤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문득, 학생들에게 읽기 과제로 종종 내주었던 영감을 주는 작가 낸시 메어스의 에세이가 떠올랐다, '병신으로 사는 것에 관하여( On being a cripple)'라는 에세이다. 선행학습반 학생들에게 내주었던 에세이 과제 중에 내가 고민의 여지 없이 가장 좋아하는 글로 꼽는 작품이다.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만약 내가 살면서, 혹시라도 메어스 씨가 겪는 것과 같은 역경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가 보여준 것과 같은 품위와 유머 감각, 극기심을 그것을 극복할 수 있기를 늘 다짐한다고 말했다. 내가 스스로 내뱉은 그 말이 귓가에 울려,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그 에세이를 찾아 다시 읽어보았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한 말을 새기면서 삶을 활기있게 마무리하고 있다.

뇌종양 말기인 저자가 보여준 삶의 용기와 활기가 학생들에게 삶을 가르친다.

그 가르침은 죽음을 앞두고도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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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박노해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잎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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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단지에서 그릇으로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으리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문학과 지성사 2016. 2. 15 

 

고요와 집중이 아름답다. 그 순간을 그린 베르메르와

그 순간을 언어로 남긴 시인이 있어 다시 그 순간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의 절망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나에게 말하든 듯하다.

하루 또 하루 고요와 집중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그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를.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작가는 2012년 돌아갔다. 

우유를 따라 함께 마시던 사람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이 시 덕분에 아름다운 우유를 떠올릴 수 있겠다.  

 

 

“나는 참으로 길고, 행복하고, 흥미로운 생(生)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달리 인복(人福)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운명에 감사하며,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화해를 청합니다.”

 

 

 

운명에 감사하고 인사나누는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남긴 시가 나에게 화해를 청한다.

이 시를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시인이 이 곳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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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많을수록 좋다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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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는 인천 만석동으로 들어가 공부방을 만들고 그 아이들과 함께 산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이들과 공동체의 버팀목이 되었다.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방의 불빛은 따뜻한 의지처였다.

공부방 이모가 되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유와 행복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온몸과 맘으로 살아낸 김중미 선생이 있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제 앞길만 보고 가는 세상에 떨어진 아이들 손을 잡고 묵묵하게 글을 쓰고 삶을 이해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먼저 좋은 삶과 사랑을 보여준 이가 있다.

행복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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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하는 말들 - 2006-2007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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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말을 사랑하는 거예요.

작가는 말이 제 할 일을 하도록 돌보는 사람이에요.

 

글은 내 몸을 빌려 태어나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에요. (82p)

 

말하고 상관없이 사람을, 생명을 사랑해서 쓰는 작가들이 있다.

말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생명을,  삶을 돌보려고 쓰는 이들이 있다.

 

 

시는 버려진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래서 인생에 대한 사랑이에요.

 

시의 윤리는 순간적인 각성이에요.

내가 얼마나 잡놈인가를 보여주면

읽는 사람 누구나 감동받게 돼 있어요.

읽는 사람도 잡놈이기 때문이지요, (132p)

 

그것도 사랑일까?

 순간적인 각성을 노래하는 시인의 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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