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 문학동네 시인선 73
고영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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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꽃이 피면 꽃이 핀다가 아니라 눈이 내린다고 말하는 마을이 있다

 

 

꽃이 지면 꽃이 진다가 아니라 눈이 그친다고 말하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의 오래된 아낙들은 꽃이 필 즈음. 아니 눈이 내릴 즈음  

 

 

장독 위의 숫눈을 털고

 

쓰쓰쓰, 입소리를 내며 장독을 닦고

 

겨우내 닫아놓았던 독을 열어 하늘과 제 얼굴을 비춰 보면서

 

하얀 웃소금을 한 번 더 쳤다

 

 

 

 

정독을 닦는 오래된 아낙을 보고 싶다.

오래된 아낙을 만나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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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일 -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인생학교 3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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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을 살려면 '예술은 불필요함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피카소의 철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 어떤 일을 해야  삶의 안전과 자유와  의미를 얻으며 몰입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 찾는 이에게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일이 주는 속박을 벗어나 자유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은 바를 알려주고 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질식 지경에까지 이른 일을 돌아보며 영혼을 찾는 일을 해야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시험성적을 조작하여 구속되는 청년에게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영혼이 질식되는 줄도 모르고 시험에 매달리는 사회의 풍경이 으스스하다.

 

천직은 찾는 것이 아니라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행복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고통이 적은 상태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영소에서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삶의 목표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가족의 목표를 넘어  가치있는 목표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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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 어느 교사의 마지막 인생 수업
다비드 메나셰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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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점점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밤, 한 도시에서 다름 도시로 밤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문득, 학생들에게 읽기 과제로 종종 내주었던 영감을 주는 작가 낸시 메어스의 에세이가 떠올랐다, '병신으로 사는 것에 관하여( On being a cripple)'라는 에세이다. 선행학습반 학생들에게 내주었던 에세이 과제 중에 내가 고민의 여지 없이 가장 좋아하는 글로 꼽는 작품이다. 학생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만약 내가 살면서, 혹시라도 메어스 씨가 겪는 것과 같은 역경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가 보여준 것과 같은 품위와 유머 감각, 극기심을 그것을 극복할 수 있기를 늘 다짐한다고 말했다. 내가 스스로 내뱉은 그 말이 귓가에 울려,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그 에세이를 찾아 다시 읽어보았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한 말을 새기면서 삶을 활기있게 마무리하고 있다.

뇌종양 말기인 저자가 보여준 삶의 용기와 활기가 학생들에게 삶을 가르친다.

그 가르침은 죽음을 앞두고도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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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박노해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잎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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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단지에서 그릇으로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으리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문학과 지성사 2016. 2. 15 

 

고요와 집중이 아름답다. 그 순간을 그린 베르메르와

그 순간을 언어로 남긴 시인이 있어 다시 그 순간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의 절망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나에게 말하든 듯하다.

하루 또 하루 고요와 집중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그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를.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작가는 2012년 돌아갔다. 

우유를 따라 함께 마시던 사람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이 시 덕분에 아름다운 우유를 떠올릴 수 있겠다.  

 

 

“나는 참으로 길고, 행복하고, 흥미로운 생(生)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달리 인복(人福)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운명에 감사하며,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화해를 청합니다.”

 

 

 

운명에 감사하고 인사나누는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남긴 시가 나에게 화해를 청한다.

이 시를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시인이 이 곳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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