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마음
안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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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피엔스의 마음에 대해 탐구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 시대의 어른들을 만나 묻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 진지한 질문과 대답을 오가며 나 자신의 질문과 대답을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끼어든다. 그마음조차 욕망의 한 측면일 수 있지만 그 욕망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일수도 있겠지.

 

마음의 과학에 대해 잘 안다면 살면서 경험하는 면면을 깊고 넓게 살필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36p) 스티븐 핑커의 말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게리스나이더는 일상에서 진정으로 모든 일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면 곧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명상을 한다는 게리 스나이더의 삶이 아름답다.

 

이해인수녀님을 만나 나눈 이야기에서 그동안 에세이와 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깊이를 맛볼 수 있어 감사하다.

"사람들이 우정을 틀 때 장점부터 트지만, 나는 단점부터 튼다. 좋은 점만 보면 누구인들 친구를 못하겠냐. 손가락질 받는 이라 해도 친구가 있어야살지 않겠냐. 내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구상 선생님의 마음을 본받아 상처많은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수녀님의 말씀이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판단보류의 영성에 대해 말씀하신다.

'인간에 대해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 하라.'

남편에 대해, 자식에 대해,. 형제에 대해. 친구에 대해 판단을 하면서 내 기준으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화내고 서운한 감정을 표현할 때가 많았다. 그런 판단은 미루고 사랑이 먼저라는 말씀이다.

 

사랑은 정해져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매일 스스로 만들고 다시 허물고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이 삶이라면 지칠 것도 없이 매일 삶과 마주해야 한다.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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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 피아니스트의 아흔 해 인생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시모어 번스타인.앤드루 하비 지음, 장호연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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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의 말을 글로 읽는다. 글을 읽으며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풍경 소식을 들으면 그 풍경이 보고 싶듯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글이지만 보고 싶고 듣고 싶다.

예술가와 인간 사이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번스타인은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존재의 신비, 자연의 신비. 창조적  천재들이 수백 년의 세월에 걸쳐 이룩한 놀라운 위업의 신비 앞에서는 경외감과   경이감에 머리를 숙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경이를 설명하거나 이름을 붙이려 하지 않는 것은 겸손함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질문에는 결코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사실은 내 존재 자체도 영원한 물음표라고 생각합니다. (305p)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그 음악을 삶으로 가져와 삶을 아름답게 살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배웠던 사람 시모어 번스타인.

그리고 시모오 번스타인과 대화를 나누며 배운 앤드루 하비,  두 사람은 서로 말하고 듣고 배우는 삶을 보여주었다.

감사하다. 이 목소리를 남겨주고 책으로 보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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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꿈 산지니시인선 4
조향미 지음 / 산지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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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

 

아이들은 등에 공부를 잔뜩 지고

공부의 사막을 걷는 낙타다

누군가 낙타의 눈을 가리고

바늘 구멍보다 작은 문으로 이끈다

애초부터 눈이 없는 양 낙타는 고분고분하다

등에 진 공부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므로

낙타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막상 공부를 펼쳐 세상을 탐구하지도 않는다

하여간 공부의 사막은 험난하였으므로

많은 낙타는 짐에 짓눌려 허우적댄다

그들은 같은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맴돌거나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서 꾸벅꾸벅 졸았다

간혹 먼 곳으로 도망쳐 황야의 무법자가 되는

낙타가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공부의 길은 단순도 하였으므로

낙타 떼는 눈을 감고 꾸역꾸역 걸어서

우글우글 바늘구멍으로 몰려든다

 

시인은 학교 현장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모습이 '재난' 현장에 있는 낙타와 같다고 한다.

우글우글 바늘구멍으로 몰려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딱하지만 시인은 그 현실에서 밥벌이를 하는 선생님이다.

그러면 시인은 그 재난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감독일까?

감독인 시인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칠칠하다

 

맑고 큰 눈을 가진 지민이가 수업시간에 잘 잔다

짐이 요즘 예쁜 눈을 안 보여 주네

밤에 잠 안 자냐?

지민이 여친 생겼어요

고 1 머슴애들 왁자지껄 덤벼든다

지민이 여친 아주 쪼끄매요

이마가 엄청 넓어요

이마 넓으면 시원하겠네

예 맞아요.청 시원한 애예요

지민이가 빨개진 얼굴로 말이 없다

칠칠하다, 낱말 뜻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지민이 여자 친구는 칠칠하니, 칠칠하지 못하니?

칠칠해요

지민이 빙긋 웃으며 처음 입을 연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따뜻하다. 현실이 재난일지라도 시인의 눈과 칠칠한 아이들이 있으니 세상은 아름답다.

 

 아무것도 안 하기

 

고비사막에 주막 차리기가 소원이라는

소설가 이시백 선생의 몽골기행단 일정에는

아무것도 안 하기가 있다

칠팔월 염천 사막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 또는 마음대로 해 보기

햇빛과 바람은 무제한이다

전날 밤 일행들은 조금 걱정했다

민가도 없고 시장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데

뭘 하지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책을 읽을까 휴대폰 영화를 볼까

떼어놓고 온 줄 알았던

인생의 짐도 슬글슬금 따라붙는데

 

막상 다음 날 일찍부터 눈이 뜨여

떠오르는 태양에 경배드리기

지구의 원주를 따라 슬렁슬렁 걸어보기

풀 뜯는 염소 떼와 말똥히 눈 맞추기

모래밭에 갓 돋은 풀싹 쓰다듬기

지평선 밖으로 팔을 뻗어보기

개르 천장으로 별빛 헤아리기

가만가만 내 숨소리듣기

크고 높고 무한한 것

작고 낮고 여린 것

경외하고 경탄하기 고요와 마주하기

정녕 아무 것도 안 하기

 

아무것도 안하고 태양에 경배드리는 시인, 염소 떼와 눈 맞추고 풀싹을 쓰다듬고 별빛을 헤아리는 시간이 왔다.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크고 높고 무한한 것과 작고 낮고 여린 것을 마주하며 경외하고 경탄하는 시간에 충만함이 가득하다.

 

시인은 자주 재난의 현실에 아파하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밝은 눈이 있어 눈을 맞추고 존재의 충만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쓰인 시들이 밝게 빛나는 '봄 꿈'이 되었다.

시를 읽으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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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리워 깊은 바다 그리워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르다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한강되어 흐르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설레이는 두물머리 깊은 물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바다 그리워 푸른바다 그리워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바다 그리워 푸른바다 그리워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현주 시인의 시를 장사익의 노래로 듣다

나는 무얼 버리고 살았을까

바다가 그립다. 버리고 살았으면 좀 더 삶이 평화로웠을까

시끄러운 하루를 보내고 이 노래를 들으며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내 생각을 움켜쥐고 있었구나,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릴까?

상대방이 버리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버리고 스며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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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여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조오현(1932~ )

                 ('적멸을 위하여', 문학사상사, 2012)


"늙은 중님"하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름답다. 보시라는말도 모르고 보시공덕이라는 것도 모르는 아이가 길을 걷는 스님에게 감자 한 알 바침으로써 세상 한 구석이 환하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감자 한 알을 받기 위해서라고 하는 스님의 목소리도  따뜻하다. 그 장면 속에서 나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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