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창비시선 50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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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라

지난 겨울밤, 나는 물었고 딸애는 대답했다

규연이는 무슨 색깔이 좋아? 응, 청보라
청보라는 새벽에 별이 깔려 있는 색깔이라 좋아

도라지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던 밤이 떠올라
나는 칠월 도라지꽃밭으로 딸애를 데리고 갔다

봐, 도러지꽃에도 청보라가 있지?
도라지꽃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래
와, 예쁘다 정말 청보라네
아빠 근데, 사랑은 원래부터 영원한거 아니야?

나는 청보라빛 도라지꽃을
보여주있을 뿐인데
너는 청보라빛 전구를 켜기도 하겠지
그러다가는 또 새벽하늘에
청보라 도라지꽃을 끝없이 피워두기도 하겠지

그래, 사랑이란 원래부터 끝이 없어야 할 테니까

잠이 아주 멀어진 늦여름 새벽,
청보랏빛 별 마당에 돗자리 깔고 누워
'새벽에 별이 깔려 있는 색깔'을 올려다본다

청보라 도라지꽃, 같은 말을 떠올려보다가
청보라 도라지 꽃말 같은 사랑을 깜빡거려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빠가 묻고 딸이 답하는 순간.
시인은 그 순간을 남겨두고 싶어 시로 옮긴다.
나는 그 시를 읽고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떠올려본다.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을 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그런 아버지 마음이 더 아프셨겠지.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남겨두고 싶은 순간을 주었을까?
그런 순간들이 힘이 되어 순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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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기쁨 - 흐릿한 어둠 속에서 인생의 빛을 발견하는 태도에 관하여
프랭크 브루니 지음,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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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외향적이고 매력적이었던 아버지는 이제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칫 90분이 아홉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최신 기술과 최신이 아닌 음악이 나를 구했다. 내가 빌린 차는 아이폰을 자동차의 음향 시스템에 연결해 노래를 재생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감탄했다. (292p)

그러고는 터무니없이 행복해졌다. 누군가를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가끔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알게 되어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발견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나누는 것이 삶을 끝없는 선물의 교환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어 행복했다. 무엇보다 이 연결의 순간이 행복했다. (293p)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했던 불행이 찾아온다. 그 불행 앞에서 기쁨 쪽으로 향해 가는 작가의 여정이 놀랍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처럼 낯선 불행을 겪어간다. 그리고 그 낯섬 앞에서도 춤을 추고, 여행하고, 직업을 이어가는 이들의 삶을 찾아간다.
살아있는 축복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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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밭 걷기 문학동네 시인선 214
안희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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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드볼트

금고를 열면
씨앗처럼 웅크린 사람이 있다

함부로 열지 말랬잖아 한번 죽었으면 됐잖아 비극도 습관이야
그는 항상 투덜대면서도
번번이 밖으로 걸어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에게는 같은 이야기를 매번 다르거 하는 재주가 있다

그가 다녀간 후엔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방안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개들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시름시름 앓고
온 벽은 이끼료 뒤덮이지만

나는 그가 죽음을 말하는 방식이 좋다
나는 이 누수를 멈추고 싶지 않다

그는 귀신같이 내 눈빛을 읽는다
누가 누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네
너는 나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언제니 그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
흙에 묻혀 기다리는 씨앗의 일을 한다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듵릴 거야, 그게 너의 영윈이야
그의 마지막 인사는 십 년이 지나도 똑같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새는 곳은 없다
그래도 물이 떨어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금고를 열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
나는 누구의.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아버지, 할머니,
그분들은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씨를 뿌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 씨앗이 자란 열매를 먹고 아픈 이들이 나았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야기를 잘 듣는 귀가 필요하다. 내 귀를 잘 돌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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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함의 힘 - 회복탄력성에 대한 오해 그리고 강인함의 비밀
스티브 매그니스 지음, 이주만 옮김 / 상상스퀘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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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운동 경력이 쌓이고 감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면서 훈련 내용도 경기 내용도 바뀌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릴 투지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려고  경기 전마다 나는 억지로 각성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신 경기하다가 피로감이 느껴지면 이 감각과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힘들고 피로한 느낌이 들면 정면으로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신호로 인식했다. 바뀌고 나서는 내 몸 상태를 확인하는 피드백 정보로 인식한다. 피로감은 내 몸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고, 내 몸의 연로가 떨어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전에는 통증이 증가하면 딩황하거나 두려움을 먼저 느꼈고 이대로는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하리라고 걱정했다. 바뀌고 나서는 주의를 기울일 신호와 그냥 흘려보낼 신호를 구분하며 경기를 풀어갈 수 있었다. 아킬레스건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면 부상 가능성을 떠올렸고, 넓적다리에서 묵직한 느낌이 들면 근육이 부풀어오른 상태애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예전 같으면 "젠장! 아파죽겠어, 하지만 넌 강인한 남자야. 고통쯤은 참고 뛰어애지!"라는 목소리가 들렸겠지만, 바뀌고 나서는 차분한 내면의 대화가 이어졌다. "정말 불편해지네. 괜찮아. 아픈 게 당연한 거야. 잘못된 거 없어. 예상한 일이야. 팔에 힘을 빼고 주의를 집중하자." 선불고 고수로 변신해 고통이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게 아니다. 내가 느끼는 피로감과 고통, 괴로움은 차이가 없었다. 머릿속의 악마는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나타나서 나더러 포기하라고 소리쳤다. 에전과 달라진 점은 힘들거나 괴로운 느낌이 들 때 습관처럼 자동으로 당황하지 않도록 나를 제어하는 기술을 익혔다는 것이다.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틈으로 인해 모든 게 달라졌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조용한 내면의 대화다. 

 (244p)


  작가는 '조용한 내면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자극에 바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절하고 잘 대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 자신감과 진정한 강인함을 주었을 것이다. 

센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강인함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선택을 향해 갈 수 있을 때 개인에게도 선물이 되고 사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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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지배 사회 - 정치·경제·문화를 움직이는 이기적 유전자, 그에 반항하는 인간
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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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관념과 편견도 문제다. 혐오는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이나 부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확장되는데, 이는 모든 것을 분류해서 받아들이려는 사고 체계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감염 가능성을 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로서 발달한 혐오라는 감정이 인식의 영역으로도 침투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발전하게 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에서 인류에게 위험한 물체나 생명체를 재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듯이, 위험한 인간을 알아채는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타인을 개성 있는 각각의 개체로 분석하고 기억하고 평가하는 것은 두뇌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느리고 복잡한 정보처리 과정이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을 몇 개의 간단한 범주로 나누어 분류하고 그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는 사회적 인지 방식이 적응에 유리했을 것이다. (61p)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지는 기제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서 우리 인간은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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