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창비시선 50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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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라

지난 겨울밤, 나는 물었고 딸애는 대답했다

규연이는 무슨 색깔이 좋아? 응, 청보라
청보라는 새벽에 별이 깔려 있는 색깔이라 좋아

도라지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던 밤이 떠올라
나는 칠월 도라지꽃밭으로 딸애를 데리고 갔다

봐, 도러지꽃에도 청보라가 있지?
도라지꽃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래
와, 예쁘다 정말 청보라네
아빠 근데, 사랑은 원래부터 영원한거 아니야?

나는 청보라빛 도라지꽃을
보여주있을 뿐인데
너는 청보라빛 전구를 켜기도 하겠지
그러다가는 또 새벽하늘에
청보라 도라지꽃을 끝없이 피워두기도 하겠지

그래, 사랑이란 원래부터 끝이 없어야 할 테니까

잠이 아주 멀어진 늦여름 새벽,
청보랏빛 별 마당에 돗자리 깔고 누워
'새벽에 별이 깔려 있는 색깔'을 올려다본다

청보라 도라지꽃, 같은 말을 떠올려보다가
청보라 도라지 꽃말 같은 사랑을 깜빡거려본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빠가 묻고 딸이 답하는 순간.
시인은 그 순간을 남겨두고 싶어 시로 옮긴다.
나는 그 시를 읽고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떠올려본다.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을 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그런 아버지 마음이 더 아프셨겠지.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남겨두고 싶은 순간을 주었을까?
그런 순간들이 힘이 되어 순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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