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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옛 그림 - 조선의 옛 그림에서 내 마음의 경영을 배우다
손태호 지음 / 아트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이정의「풍죽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풍죽도」에서는 왼쪽에 바람을 맞이하는 쪽의 대나무 잎은 네 잎으로 그려 경아식의 한 종류인 사필경아식을, 아래쪽 대나무 잎은 분자식을 여러 번 겹쳐 그린 첩분자식, 오른쪽에는 세 개의 잎으로 그린 삼필개자식등 다양한 형식을 보여 줍니다. (65쪽)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딴 생각을 하며 웃었습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글만 읽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나무잎을 그리는 방식을 이해하기 쉽게 표시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매화 쌍조도」를 보면서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부인이 보내 온 낡고 헤어진 활옷에 정약용은 딸에 대한 마음을 담아서 「매화 쌍조도」 그렸습니다. 딸의 혼사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유배지에서 가볼 수도 없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사람이란 때로 물고기를 버리고 곰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삶을 버리고 죽음을 택할 때도 있다, (……)내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운명이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92쪽)
영·정조시대에 정선과 김홍도는 잘 알려져 있지만 심사정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심사정을 알기 위해서 청송 심씨의 가문을 따라가다 조선왕조 개국공신으로 떠오르는 심덕부를 알게 됩니다. 심덕부의 다섯째 아들이 바로 심온이라고 합니다. 태종대 역적으로 몰려 몰살당한 심온을 알게 되면서 뿌리깊은 나무에서 보았던 그때 그 장면이 떠올라서 매우 반갑게 느껴집니다. 심사정의 「딱따구리」에서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딱따구리의 모습에서 어떤 시련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심사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딱따구리의 모습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딱따구리가 순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물렁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어서 익숙합니다. 어찌 꿈에도 잊어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몽유도원도」도만 보았을때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읽고 난 후에 다시 바라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꿈속의 풍경을 치밀하게 그려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한 점, 한 점 만날수록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동양화에 대해서 조금씩 편안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옛 그림을 통해서 스스로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자연스레 동양화 이야기를 풀어 내놓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레 옷고름을 풀듯이, 그 안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자꾸만 기대됩니다.
편안한 느낌, 그리고 독자를 배려하는 저자의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동양화에 대한 난독증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동양화에 대해서 전래동화처럼 풀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읽다보면 자꾸만 걸려서 어려워지는 말이 있습니다. 읽어 보고 싶지만 책이 자꾸만 저를 밀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번듯해 보이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지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후자 쪽이라 힘들어졌을지 모르는 여행을 가볍게 걸으면서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