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평화로운 몬테피오레에 영주인 비첸테 데 네바다와 그의 사랑스러운 딸 비안카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인 체사레와 루크레치아만 아니였다면 그들의 삶은 오래토록 행복했으리라. 어쩌면 이일은 비첸테네외가 몬테피오레로 오기전에 이미 계획되어진 일인지도 모른다. 가엷은 비안카는 체사레와 루크레치아에 의해 아버지를 빼앗기고 그녀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지게 된다.

이 이야기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간다. 체사레와 루크레치아가 실제 인물이라는 점과 그외에는 원작과 대략적인 내용은 함께 한다. 그런데 한가지 작가의 의도적인 부분이 궁금하다. 루크레치아가 충분히 비안카의 계모가 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음에도 여기에선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성한 열매를 찾아 떠난 비첸테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지하감옥에 갇히게 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지하감옥에서 비첸테는 다시 돌아오지 몰할 줄 알았지만, 그와 함께 했었던 돌(난쟁이)이 도와 신성한 열매와 함께 집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게 된다.

비첸테는 루크레치아의 아름다움에 잠시 반한듯 했지만, 오로지 자신의 딸만 사랑하고 비안카만 찾아다닌다. 여기에서 조금은 의문이다. 루크레치아는 비첸테 앞에서 그녀의 악마적인 본성을 내비치지 않았고 순결한척, 자비로운척을 해왔다. 그럼에도 비첸테는 루크레치아 그녀를 믿지 못했으며 그녀의 미모에 넘어가지도 않았다. 저자는 왜 루크레치아를 계모로 두지 않았을까? 루크레치아가 계모라는 이유가 비안카를 죽이기에 더 안성맞춤 아닌가 싶다. 우연한 기회에 얻은 거울을 통해서 루크레치아는 무엇을 바란것일까?  비안카는 죽지 않았고, 자꾸만 거울속에 그녀가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히 사랑했던 오빠가 그녀에게 반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약하지 않은가? 체사르 그의 오빠가 마다할 여자가 있단 말인가? 루크레치아는 이세상에 자신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살아가는 것은 봐둘수 없다는 비위가 꼬이는듯한 심사인가 싶다. 


그 거울을 만든 장본인들은 일곱째인가 여덟째인가 하는 난쟁이들이였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서 무엇을 시도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으나 잃어버린 거울을 찾아서 다음날(여덟번째인가 하는 난쟁이의 이름)이 몬테피오레로 길을 떠났다. 일곱째인가 여덟째인가 하는 난쟁이들은 처음엔 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돌의 형상에서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과정도, 그들의 익살스러운 말솜씨가 재미있었다. 이 책에 씌여진 표현들은 극적이면서도 섬세하고 풍부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것들이였다.


결국에 이 이야기도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비첸테가 지하감옥에 있는 동안 반절이상의 세월이, 그리고 딸을 찾아 해맨시간속에 그 반절의 세월이 묻혀버렸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어가버린다. 비안카는 아이에서 숙녀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비안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루크레치아에 손에 죽임을 당하고 관에 묻히게 된다. 백설공주의 이야기처럼 마지막에 왕자님은 나타나 주지 않았다. 상상속의 이야기였음에 마지막은 동화처럼 흐르지 않았던 점은 아쉽기 보다도 현실적인 느낌이다.  마지막에 사냥꾼이 나타나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그의 입맞춤으로 비안카는 깨어난다. 이런점들은 좀 아이러니였다. 거위소년의 등장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는 루크레치아의 유일한 혈육이였고 비안카에게는 수사와 요리사를 제외한 그리 가깝진 않았지만 어울리던 친구였다. 마지막에 이리 허무하게 끝내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소리의 희미한 그림자 속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표현력은 참으로 매력적이라서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가는구나 싶어도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몇가지 아쉬운점을 빼고서는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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