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학원에 다니는 나, 예전과 많이 바뀌어서 교육과정이 참 달라졌다. (예전, 내가 첫 시도했던 94년과 비교하면 정말 천지차이다) 그 중 하나가 의무 교육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의도는 좋다. 면허를 취득하는 일은 잠재적인 운전자를 배양하는 일이므로, 처음부터 제대로 된 교통문화와 운전문화를 습득시키는 일은 정말 긍정적인 일이다. 두 가지 의무 교육이 있는데, 하나는 '학과 교육 1시간'이고 또 하나는 '교통 안전 교육 3시간'이 그것이다. 1시간짜리 학과 교육은 말 그대로 학과(필기시험) 시험을 보기 전에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이고, 3시간짜리 안전 교육은 기능 시험을 보기 전에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이다. 요즘은 모두 전산화가 되어 있어, 왼손 엄지 지문을 인식시켜 이수 시간 확인을 실시간으로 경찰청과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전달된다. (뿐만 아니라, 기능연습 시간도 의무적인 사항인지라, 강사와 학생의 지문인식을 통해 교육 시간을 체크하고 확인한다)

그래서 오늘 3시간짜리 의무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그 의무교육이라는 것이 학원에서도 대행해주는 과정인지라, 다소간의 형식적인 면이 더 많다. 그런데 오늘은 1교시 비디오시청, 2교시 수업, 3교시 비디오시청을 한다. 학과 교육도 그러하더니만, 이번 안전 교육도 교육생이 나 혼자다. 그래서 그런지, 첫번째 학과 의무 교육은 모의고사지 다섯장을 나눠주고 풀라고 해서, 한시간동안 혼자 풀고, 교육관은 그걸 채점해주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이런 거 알려지면 안되는 건가? 그런 또 모르겠네;;) 그리고 오늘, 역시나 큰 강의실에 나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약간 절망했다. 그나마 비디오 시청은 흥미로왔는데, 교육관 아저씨의 왈, 졸리시면 그냥 슬쩍 자요- 라고 한다. 그럼, 되나. 그래서 나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똘망똘망하게 비디오 시청을 했다. 뭐, 내용도 재미가 있기도 했고. (희한하지, 나는 모두가 지겨울거라,라고 우려하던 그 영상물이 왜 그리 재미있던지)

아무튼, 문제는 2교시 교육이었는데, 교육관이 직접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큰 강의실에 나 혼자 앉혀두고 강의하는 교육관도 그렇지만, 앉아 있는 나도 그렇다. 보니, 사실, 그리 교육적이지도 않고(왜냐하면 교재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데다가, 학과 시험 과정에서 이미 습득한 정보들이었기 때문이다 - 문제는 반복되는 내용의 교육이라는 것이겠지- ) 참 밍밍하다. 뭐, 그러다가, 이래저래 내용중에, 자동차의 신고, 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신규와 변경, 이전, 말소,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내가 뜬금없는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뜬금없다기 보다는, 나에게 필요한 궁금증을 물은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동생의 몰던 차를 몰게 되면, 그 차의 소유주는 아버지고, 보험은 아버지로 되어 있는지, 동생 걸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내가 받아 운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남편의 차와 남편의 보험과는 또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등등, 운운.

아- 그러자, 교육관 아저씨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나는 마치 보험 설계사 앞에 앉아 있는 고객이 된 입장이 되어 버렸다. 어찌나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든지, 소유의 개념과 보험의 개념이 이상하게 엉켜있던 나는,나는 이제 보험에 대해서는 빠삭! 하게 알 것 같다.

중요한 건, 그거다. 용감해 졌다는 것. 미혼이었어도 그랬을까? 내 성격이 워낙 데면데면 낯선 사람들에게 낯가림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기는 하지만, 문득, 내가 교육관의 말허리를 뎅강 자르고 질문을 한 상황이나, 설명을 들으면서 (너무) 적극적으로 추가 질문을 하고, 재차 확인을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나도 아줌마가 되어가는 구나, 라고 실감했던 것 같다.

음, 좋은 자세다, 좋은 자세. 아줌마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부러 새침할 필요도 없고, 아가씨처럼 보이고 싶다고 해서 부러 이쁜척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뭐 그런 것이 이제는 슬슬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결혼 초-뭐, 지금도 '초'이기는 하다만- 에는 아줌마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결혼했다고 당당히 밝혔는데, 아가씨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부러 이쁜척, 새침한 척을 했던지라;; )

아줌마,라고 하면 세3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있는 이 사회의 깊은 각인 속에, 나는 왜 이리 무턱대고 그쪽으로 편입하고 싶어 안달하는지 모르겠다.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모습, 그리 닮고 싶지 않았던 아줌마영역에 나는 왜 이리 몰입하고 싶은지 말이다.
오늘, 그 질문이 뭐 대단한가. 아줌마가 아니어도 아가씨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는데, 나는 그걸 또 호들갑스럽게 아줌마되다,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이 양태도 내가 아줌마가 되는 과정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 나는 빨리 아줌마가 되고 싶다. 그래서 아무도 못 말리는, 누구나 손사래를 치는, 그래서 제3의 영역에 안착하는, 그래서 다른 아줌마들과 아주 잘 어울릴 수 있는, 아줌마여서 그래- 라는 말을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생활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내가 아직도 생활인도 아니고, 생활인이 아닌 것도 아닌,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것이겠지.

흠, 아무튼, 일단 용감해지는 것. 그것이 아줌마 되기의 지름길 아닐까?

ㅡ 어쩌면, 내가 '아줌마'라는 단어를 너무 비하해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분명한 건, 내가 말하고 싶은 '아줌마'란 '생활인'의 동일의미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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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이 유별난 건 아니지만, 성장과 유년의 각인에 따라 손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좀 예민한 편이다. 뭐 그렇다고 핸드크림을 발라주지도 않고, 하다못해 고무장갑도 못 끼는 주제에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할 수는 없다. 설거지고, 걸레질이고간에. 그래서 나는 늘 맨손이다.) 엄마는 늘 나에게 손은 그 사람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 게다 여자의 손,에 대해서는 누누히 강조하고, 또한 그렇게 기르신 편이었다. 나도 그에 따라 손만큼은 곱상해야 한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그래서 그런지, 결혼하고서 내 외양에 가장 큰 변화는 손에 상처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 유독 나에게는 큰 의미처럼 느껴진다. 뭐, 별 거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살림이라는 것이, 뭐, 그악스럽고 철두철미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결혼 전과는 확실히 물을 대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주방용 세제, 빨래비누, 기타 세정 용액들이 손에 그대로 묻는 일이 다반사. 그러니 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거야, 샘플용 에센스를 발라주거나 하면 조금 차도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손톱이 부러지는 현상과, 더불어 손에 생기는 상처들이다.
부엌일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나는 잘 몰랐다. 예전, 엄마가 기름에 팔이 데여 물집이 잡히고, 칼에 베어 반창고를 붙이고 있을때마다, 아니 살림을 몇 십년을 했는데도 왜 그러냐며, 괜히 안스러운 마음을 그렇게 퉁명하게 반응하곤 했는데, 내가 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겠다.
몇십 년을 살림한 여자도 그렇게 다치고, 데이는데, 이제 갓 살림을 시작한 나는 어쩌겠는가. 말 안 해도 DVD다.

지금 내 손을 펴서 보니, 왼손에만 네 군데의 상처가 있다. 손바닥에서 손가락으로 뻗어가는 그 부분, 그러니, 손등을 보니 반지 네 개를 끼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부부동반 외출에는 결혼반지를 끼는데, 아주 모양새가 안 좋다. 보통때는 결혼 전부터 끼던 반지 두 개를 엄지와 검지에 끼고 있는데, 남은 세 군데의 손가락이 그지경이니, 완전 다섯 개의 반지를 낀 모양.
오른손은 좀 더 가관인데, 엄지 손가락 부분에 긁힌 상처(마치, 손톱으로 할큄을 당한 것 같은 모양으로;;), 새끼손가락도 반지를 끼고 있는 것 같은 상처 하나. 희한하게도 모두 비슷한 자리의 상처들. 그리고 손등에 하나.

게다, 상처는 잘 아물지를 않는다. 그거야 계속 물기가 닿아 있고, 세제들을 만지기 때문이겠지. 갈라지는 손가락끝은 그렇다해도, 아물지 않는 상처들이 검게 곪았다가, 딱지도 생기지 않고 다시 곪고 하는 과정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왼손은 흉터까지 생겼고, 오른쪽은 진행중인 상처들. 기름에 데인 팔은, 아직은 긴팔을 입으니 눈에 보이지 않아 그저그런데, 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별로다.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손톱이 깨져서 기르지 못하는 것은 뭐 이제 별 문제 같지도 않다. (사실, 처음에는 결혼 전처럼 손톱을 길렀지만, 칼질을 하다가 손톱을 잘라먹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왼손 손톱이 뭉떵, 잘려나갈때마다 얼마나 섬뜩하던지;;)
친정엄마는 손에 유난한 정성을 들이는 여자에 든다. 살림을 하는 여자인데도, 언제나 엄마의 손톱은 적당한 길이의 동그스름한 모양이었고, 그 손톱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하게 메니큐어를 발라져 있었다. 그리고 쉰 중반인 지금도 엄마는 그러하다. 그런데, 이제 서른하나, 결혼 6개월차인 내 손은, 손만 보면 6개월이 아니라 6년을 살림한 여자 손같다. (6년을 살림한 여자의 손이라면 연륜이라도 보이지, 내 손은 사실, 뭐 그런 푸근한 맛도 없이 말이다)

관리,의 문제라는 것도 안다. 관리를 위해서라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상처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주의해야 하고, 조금 더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아차, 하는 순간 벌써 빨간 피가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하니, 어쩌겠는가.

집안일, 특히 부엌일이라는 것이 불과 칼을 만지는 과정이어서, 사실 따지면 참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단 하나도 없지만, 일개 밥을 하고, 국을 끓이는 일조차도, 파를 썰고, 김치를 써는 일 마저도 그러하니, 아직은 나에게 긴장해야 하는 과정이니, 세상 쉬운 건 정말 하나 없는 것이다.

아무려나, 이 멋지구리한 상처들은 어찌 한단 말인가. 친정 엄마에게 손 보이면 혼날 생각하니, 그것도 무섭기까지 하니, 이 어찌 하나.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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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틔운감자 2005-04-1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걸레 빨 때는 의식적으로 끼려고 해요. 그런데, 정말 설거지는 못하겠어요. 어떻게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건지!! 그런데, 아무리 빨래하고 설거지 하고서 비누로 씻고 핸드크림이든 영양크림이든 듬뿍 발라주어도, 맨손으로 일 하는 손이 표가 나더라고요. 손도 정말 아껴야 하는데, 습관이 무서워요. 흠.. 저도 더 노력해야 한다지요. 님도 저도, 올 해는 장갑과 조금 친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참, 뜬금없지만, Henri Cartier-Bresson에게 정신이 팔려, 저녁 내내 그의 사진을 찾는 웹서핑으로 두어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 몇 장의 사진을 보는데, 연상이 되는 그림이 있다. 그걸 찾기 위해서, 서재를 뒤지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그림만 기억할 뿐, 작가와 작품명을 몰랐고, 그걸 알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웹페이지를 꾸미는데, 브레송의 사진과 내가 찾는 그림이 적절하게 매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그만 못 할 일을 해버렸다.

뭐, 따지면 많지도 않지만, 그래도 쉰 권이 넘는 미술관련 책들을 일일이 다 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다. 분명히 내가 가진 책 안에서 그 그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같은데- 혼잣말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없는 그림이 나와줄리도 만무하고. 아무튼.

그림책을 뒤지다가, 오랜만에 이 책을 뒤적이게 된다. <지독한 아름다움>이 제목이고, 부제는 '김영숙 아줌마의 도발적인 그림 읽기'다. 그런데, 이 책, 아줌마의 시선이 그리 크게 전제되지 않은, 그저 그림읽기,에 관한 책이다. 알라딘에서는 '미술이야기'라는 장르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그림에 관한 이야기,일뿐 아줌마여서 그림을 더 특별히 본다거나, 아줌마여서 그림을 더 쉽고 간편하게 보게 안내할 것이라는, 뭐 그런 종류의 선입관은 보기좋게 허물어트리는 책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굳이 '아줌마'라는 단어를 꼭, 사용해야 했었을까. 

아줌마, 대신 소녀나 아가씨, 엄마나 아빠, 혹은 아저씨로, 언니나 오빠, 로 치환했을 때, 저 부제와 얼만큼의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아줌마'라는 단어와 '도발적인'이라는 수식어구의 만남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앞문단에서도 범한 오류인 '아줌마=쉽고 단순' 이라는 도식에 따라 더 특별한 기대를 하게 한다는 것. 그림읽기,라는 일반인에게 거리가 있을 이야기를 아줌마,라는 생활의 최접선의 존재감의 명칭과 부여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아무튼.

아무튼, 이 책은 아줌마 스러움은 별로 없다. 다만, 여성의 시선,은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안타깝게 생각하는 듯 싶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되어 판매부수에 득이 될 요건이 되었을지언정, 그 단어가 참 공허하게 느껴지기 때문. 아무튼, 이 참에, 알라딘을 조금 뒤적여보니,

 ㅡ 키워드 : "아줌마"(으)로 검색한 결과 총 87 건의 상품이 검색되었습니다.

라고 결과가 나온다. 그 책들을 주욱, 뒤적여보니, 이래저래 많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니, 아줌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도 아닌 나 같은 얼뜨기 아줌마는 어디 낄 자리도 없다는 것이다.

뭐, 각설하고. 위의 책. <지독한 아름다움>의 미덕은 큼지막한 도판. 시원하게 표지 전면을 르동의 그림으로 디자인 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림읽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권하기에 충분한 책. 부제를 뺀다면 별 다섯 개도 무난.

(그런데, 정말 내가 찾는 그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내 책에 없는 그림이었단 말인가. 이거, 혹시, 아줌마들의 가장 공통적 특성, 건망증의 시작인가? 시덥지 않은 생각들이, 두서없이 막 튀쳐나온다. 큼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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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친구 R이 이 곳까지 내처 왕림해주셨다.
왕림,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녀는 전업주부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하루를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지방에 사는 친구네 놀러오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녀는 부지런을 떨어 아침 10시 즈음에 도착을 했고, 신랑은 자고 있던지라, 우리는 마치, 자는 부모님 몰래 속닥이는 초등학생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의 소재란, 뭐, 뻔하지 않겠는가. 나는 주로 요리 젬병에 대해서, 생각보다 살림에 그리 큰 재미를 못 느끼는 얼뜨기 주부라는 고백을. 그리고 그녀의 몇 년 전 신혼 생활 이야기와, 그녀의 살림이야기(그녀는 정말 살림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현실적인 충고들과 염려, 그리고 몇 가지 살림 노하우와 팁들에 관한 이야기. 
그러다보니, 후딱 점심 때가 다 되어 간다. 

그녀를 본 게 얼마만인지. 내 결혼식 날, 그리고 한 달 즘 뒤가 그녀 둘째 아가의 돌이어서 그 때 잠깐. (그러니까, 5개월 만인 것이다!)워낙에 친해 매일같이 전화 통화를 하는지라 그렇게 오랜만에 봐도 바로 어제 본 것 같아 신나기만 했다.
아무튼, 그래, 점심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친구 왈, 나가서 먹자는 것이다.

"아줌마는 나가서 먹는 거 좋아해."

나는 내 집에 처음 온 친구여서, 내가 해 준 밥 한 공기 해 멕이고 싶었던 터라, 조금은 서운 했던 것 같다. 음식 못해도, 맛 없어도, 그래도 내가 처음 대접하는 음식, 뭐 그런 의미 말이다.
하지만, 그래, 친구말처럼 맨날 먹는 밥, 그런 날을 나가 먹는 것도 좋겠어,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친구가 번거로울 내 생각에 그렇게 하자고 했을지언정, 적어도 그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나도 마음이 편할테니까 말이지. 아무튼, 자는 남편을 두고(지난 밤, 나와 남편은 새벽 6시까지 서재에서 놀았던 것이다. 토요일이니까 그렇게 밤을 새며 놀 수 있고, 일요일에 그렇게 늦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이 우리의 패턴이라면 패턴인지라- ) 우리는 동네 고기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정말, 정말, 오랜만에 그녀와 단 둘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첫 아이를 낳기 전, 그러니까, 4년 전 가을(그녀는 그 때 임신중이었다)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녀 곁에는 남편이, 아가가, 아가 둘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나도 결혼을 해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전화를 붙잡고 있는 때 외에는, 단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그녀의 얼굴에서 나이가 보인다. 그녀도, 마주한 내 얼굴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는 내친 김에 맥주도 두 병 마셨다. 고기를 구우며, 맥주를 마시며, 그녀와 나는 살이의 고단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고단함은 있고-없고의 문제가 아닌, 우리 나이의 기혼 여성들이 가질법한 보편한 고뇌들이었을 것이다. 남편이야기, 육아이야기, 시댁이야기, 친정이야기,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서로서로 맞물려 이어지고 끊어지고를 반복하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하니, 하루가 금세 지난다. (그 사이, 남편이 식당에 들러 인사를 하고, 계산도 마치고 나선다. 우리들을 위해 집 비워 준다고 외출까지 감행한 남편에게 작지만 참 큰 고마운 느낌 가지고.)

집에 와, 딸기랑 커피 한 잔 마시니, 그녀가 나설 차비를 한다. 왜 벌써 가냐고, 막차까지는 세 시간이나 남았다고 나는 그녀의 소매를 잡는다. 다음날 신랑 손님들이 있댄다. 그 길로 서울에 가서 장을 봐야 하고, 저녁에는 음식도 해 놔야 한다고. 하긴, 아가들 걱정에 그녀 마음이 하루종일 나만큼 편하고 즐겁지는 못했겠구나 싶으니, 마음이 그렇다.

그 차비에 나도 같이 분주해진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들. 시어머님이 손수 캐고 말리시고, 정성껏 마련해 주신 것들. (어머님 며느리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아주 조금 나눠 주는 것이었으니, 어머님도 뭐라 하시지는 않으셨음 하는 마음,으로- 아무튼, ) 생도라지 가루, 매실 원액, 오미자 원액, 오가피 껍질에 은행,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다 담아도 쇼핑백 반도 안 찬다. 그래도 그런 거 쥐어주니, 내 마음이 훨씬 편하다.

터미널에서, 나는 마치, 입대하는 애인 보내듯이 괜히 글썽해진다. 서울행 버스표를 사주고, 버스에 올라탄 걸 보는데, 마실 것도 안 줘 보낸 거 같아 또 부랴 콜라 하나 뽑아 버스에 올라 쥐어주고. 버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친구가 핸폰으로 나를 찍는다. 바보같이 그 때 눈물이 비죽 솟는 건 또 뭔지.

아무튼, 그렇게 친구가 왔다갔다.
이제 한동안 마음이 더 횡할 것이다.  더 보고 싶기도 하고.
남편이 알면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결혼 전의 세상과 뚝 떨어져서 지내는게 조금 속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사실, 친구는 최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큰 충격이 있어 마음이 많이 횡하고 스산한 최근이다. 그래, 더 부랴 나에게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우리에게 힘겨운 하루이고,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못한 일요일 풍경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가능하게 된 일이 말이다. 서울에서 내 집까지, 가고오고 두어시간씩, 바깥 풍경을 보면서 그녀가 더워진 속을 조금이나마 식혔길,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나 아가들에서 벗어난 온전한 '나'를 만난 여유의 시간이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어서, 나의 이 향수병도 사라지기를. 나의 이 그리움증이 사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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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저렇게 달았지만, 나는 보는 드라마가 없다. 아줌마 되기 전에도, 아줌마가 되어도 그건 별 다를 바 없는 패턴이 되었다. 일일연속극은 물론이고,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낸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고현정이 나오는 <봄날>도, 도, 김희선이 나오는 드라마(제목조차 모르겠다)도, <쾌걸춘향> 등, 최근 유행이다 싶은 드라마를 보지 않고 사는 아줌마 인 것이다. (최근에 광분하면서 봤던 드라마는 <아일랜드>. 그것이 내가 좋아해서 부러 찾아봤던 유일한 드라마였다) 뭐,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보다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는 일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생각보다 내가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런데 가끔, 보게 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것이 김수현 원작의 <부모님 전상서>이다. 나도 왕년에는 김수현 드라마 지긋지긋하게 싫어했었다. 빤한 구도(대가족제도, 노인이 결정권을 가지며 가장 善의 답을 가지고 있으며, 자식들 중에 하나는 망나니같은 신세대를 상징한다거나 하는), 다다다닥, 상대방의 가슴에 칼을 꽂는 말로 처리되는 대사들, 너무 많은 대사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거나, 혹은 너무 진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마치 유행지나 촌스런 고무줄치마라도 입고 외출하는 것처럼, 나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뭐라 했던 것 같다. 이런 걸 뭐 하러 봐-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내가, 가끔가다 그 드라마를 본다. 찾아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우연찮게 재방송을 할 때, 유선에서 보여줄 때 등 그렇게 해서 매 회 분을 그럭저럭 다 보아온 듯 싶다. 보면서, 김수현도 늙었나 싶은 생각을 했다. 그 전에 내가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니, 내가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엄마와 전화로 김수현 드라마 이야기를 한 시간이고 할 때도 있다;;) 아무튼.

이번 <부모님 전상서>에서 작가는 조금 늙은 것 같다. 늙어서 고집스럽고, 늙어서 가부장적으로 변해가고, 늙어서 여전히 진부한 부분들은 있으나, 대사가 조금 순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나의 변화지만,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입장의 변화 때문이랄까. 그 집의 맏며느리와 둘째며느리를 보면서, 저 둘을 섞어놓으면 딱 나와 같겠다 싶은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 역을 보면서 내 어머님을 떠올리고, 며느리들의 부모들의 딸 걱정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부모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나는 홈빡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극 중에서 김희애역인 맏딸과, 아직 연애중인 막내딸의 역이 나에게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극 중의 중년들에게서 나는 내 부모와 내 시댁식구들을 떠올리고, 극 중 결혼 과정과 신혼 생활의 젊은 부부들을 보면서는 나와 내 남편을 떠올린다. 그들이 얼키고 설켜 뒤뚱거리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들, 그런 일상의 모습을 지닌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척이나 한국적이고(그건 진부하다,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 모습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포함된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아서,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내가 들어왔던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옛날 김수현 드라마에서 가졌던 부담감과 알 수 없는 짜증들은 어느새 내 안에 자연스럽게 잠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 드라마를 끝까지, 중간에 채널을 돌리지 않으며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공감,이
그 드라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하고, 
주관적 경험과 공감 만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를 무지한, 혹은 깡통이 된 아줌마가 된 기분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시청자가 드라마까지 보면서 골치아프고 싶지 않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뉴스, 신문, 인터넷 을 통해 접하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 끔찍한 사건들, 고질적인 병폐들, 그래서 고쳐야 하고, 시범을 보이고, 모범을 보이고, 지향점을 보여줘야 할 장르가 굳이 드라마여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익히 알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에서 보이는 고질적인 문제점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율,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고리타분함의 승리, 진부함에 대한 익숙함, (그것이 문제적인 현실이더라도) 보편 타당한 현실의 촘촘한 극적 구성에 대한 완결성 등. 그런 것들이 김수현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수현 드라마를 칭찬하거나, <부모님 전상서>가 아주 뛰어난, 성공적인 드라마라 말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도 않거니와) 다만, 시청자의 하나인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통해 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며, 그것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의 변화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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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3-0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라면 사죽을 못 썼는데..한일년 텔레비젼을 안보다보니..요즘은 그냥 시들합니다. 부모님 전상서도 케이블에서 한번씩 보는데..김수현씨가 전에 쓴 드라마들이 자꾸 떠 올라요^^ 대사가 순해진것은 역시 나이탓일까요?

싹틔운감자 2005-03-0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세요, 나이 탓일까요? 그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가 나이 때문에 대사에 독소가 흐려졌다-라. 그저 나이,만을 이유로 들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지만요- ^^

책읽는나무 2005-03-0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를 잘 보긴 하는데..애써 챙겨보질 않는 편이라 내용이 뒤죽박죽!
드라마를 좋아하면서도 보고 있는 나를 보면 나도 나이 먹었구나~~ 란 생각 저도 가끔 합니다..ㅋㅋ
그리고 얼마전에 <부모님 전상서>도 후반부부터 챙겨보기 시작했는데..님의 말씀처러 저도 둘째 며느리를 얻으면서 시작되는 부분부터 공감대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같아요!...큰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를 잘 버무려 놓은 모습이 딱 내모습!...전 거기다 아마도 둘째 며느리 성격에 더 가깝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어요!
뚱~~ 한 성격이 나랑 좀 맞더군요!..ㅋㅋㅋ
음식 잘하는 것은 아니구요!...^^
여튼.....며느리들의 내용이 나오고..시부모님들이 나오고..친정부모님들이 나오고..부부 이야기가 나오고..육아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정말 나이 먹었나 보다~~~ 싶어요!
예전엔 청춘남녀 이야기가 재미있고 가슴 절절하더니만....요즘 그런 청춘물 보면 '에구~~ 니네들도 한번 살아봐라~~'핀잔을 주게 된다니깐요..ㅡ.ㅡ;;

요즘엔 전 "굳세어라 금순아!"를 좀 눈여겨 보았더랬는데...벌써 초반부인데도 식상해지더군요!..금순이가 애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자를 알게 되고...청춘물이 될 것같아 보이더라구요..ㅠ.ㅠ

싹틔운감자 2005-03-0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어제 못 봤군요. 그럼 뭐 했더라. 아, 그 시간에 남편과 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군요. 페릿을 살까 어쩔까, 애완동물 싸이트를 마구 뒤적이고 있었거든요. 페릿, 그러니까, 족제비요. ^>^ 그이가 그걸 그렇게 키우고 싶어 하네요. 저는 아가 운운 하면서 좀 말릴려고 했는데, 아직 없으니까- 뭐 이런 논조로 상관없다고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네요. 그래요, 어제, 그걸 좀 알아보느라고 드라마 보는 걸 깜빡, 했어요. ^^
뭐, 그럼 할 수 없죠. 오늘도 안 보고, 주중에 하는 재방송이나, 다음주 오후에 재방으로 봐야죠. ^^
맞아요, 님. 저도 청춘물을 볼 때마다 시큰둥한게 조금 밍밍하더군요. ^^
<부모님 전상서>의 며느리와 비교해본다면, 저는 아무것도 못하는 큰며느리와 조금 비슷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발랄모드로 일관하는 모습 말이지요. ^^ 어머님도 처음부터 하나도 못하는 며느리,로 생각하셔서 그런지 아주 작은 것에도 칭찬하시고(파를 가지런히 잘랐다느니, 걸레질을 잘 한다느니, 하는 것들 말이죠. 얼마나 칭찬할 게 없으면 이런 걸 다 칭찬하시겠어요. 그래도, 며느리 이뻐한다는 모습 보이고 싶으시니, 그런 거라도 이뻐 보이시는구나, 그렇게라도 용기 주시는구나, 싶어 저도 더 열심히 걸레질하고, 파 썰고 그럽니다. ㅋ) 그러죠. 시어머니 앞에서는 쫑알거리기도 많이 합니다. 이것저것 묻기도 많이 묻고. 아들만 둘이었던 어머님과 아버님은 그런 며느리인 제가 신기하시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러신가봐요. 늘, 어쩌지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신다지요. ^^
둘째 며느리와 닮은 구석은, 웬만한 모든 것은 남편 뜻을 따라준다고 해야 할까요- ^^; 가부장적인 친정의 분위기(뭐, 그 시대 어른들의 아주 일반적인 모습이지만요)를 그대로 답습했던지라, 엄마 모습 그대로의 모습이 제게 고스란히 남겨졌더라고요. 어느 회분이었는지, 둘째 며느리가 친정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그 친정 엄마가 맏동서에게 잘 하라고 하면서, 그러더군요. 시댁이 그래서 어려운거라고. 네가 참아야 한다고. 저희 친정 부모님도 그런 분위기인지라요- 뭐ㅡ, 그 장면 보면서 혼자 또 찔끔거렸다지요(엄마, 아빠 보고싶어서요- ^^; )
맞아요, 드라마도, 자기 상황에 따라 몰입되는 경향이 큰 것이죠. 나와 같은, 나와 비슷한, 내 주변 사람과 비슷한, 그런 일반론적인 시선이 맞닿아 있어야 공감대를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청춘물이 그래서 싱거워지는 건, 나이도 나이이지만, 그만큼 그 열렬한 남녀감정의 갈등을 이제는 한 걸음 뒤에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연륜과 마음이 생겨서겠죠. 그 연륜과마음은 결혼,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기도 하고요. ^^

눈이 많이 왔다고요. 하- 저 있는 여기는 햇빛이 너무 좋습니다. 오늘은 이불 빨래를 했습니다. 그리고 손빨래 할 것들은 조금 했더니, 허리가 다 시큰하네요. 너무 쳐져 있는 것 같아서 부러 일을 찾아 했더니, 이러나 더 앓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온 집안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곳곳에 향긋한 세제 냄새가 가득한 집이어서 마음은 상쾌-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