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친구 R이 이 곳까지 내처 왕림해주셨다.
왕림,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녀는 전업주부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일요일 하루를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지방에 사는 친구네 놀러오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녀는 부지런을 떨어 아침 10시 즈음에 도착을 했고, 신랑은 자고 있던지라, 우리는 마치, 자는 부모님 몰래 속닥이는 초등학생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의 소재란, 뭐, 뻔하지 않겠는가. 나는 주로 요리 젬병에 대해서, 생각보다 살림에 그리 큰 재미를 못 느끼는 얼뜨기 주부라는 고백을. 그리고 그녀의 몇 년 전 신혼 생활 이야기와, 그녀의 살림이야기(그녀는 정말 살림을 사랑하는 여자였다), 현실적인 충고들과 염려, 그리고 몇 가지 살림 노하우와 팁들에 관한 이야기.
그러다보니, 후딱 점심 때가 다 되어 간다.
그녀를 본 게 얼마만인지. 내 결혼식 날, 그리고 한 달 즘 뒤가 그녀 둘째 아가의 돌이어서 그 때 잠깐. (그러니까, 5개월 만인 것이다!)워낙에 친해 매일같이 전화 통화를 하는지라 그렇게 오랜만에 봐도 바로 어제 본 것 같아 신나기만 했다.
아무튼, 그래, 점심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친구 왈, 나가서 먹자는 것이다.
"아줌마는 나가서 먹는 거 좋아해."
나는 내 집에 처음 온 친구여서, 내가 해 준 밥 한 공기 해 멕이고 싶었던 터라, 조금은 서운 했던 것 같다. 음식 못해도, 맛 없어도, 그래도 내가 처음 대접하는 음식, 뭐 그런 의미 말이다.
하지만, 그래, 친구말처럼 맨날 먹는 밥, 그런 날을 나가 먹는 것도 좋겠어,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친구가 번거로울 내 생각에 그렇게 하자고 했을지언정, 적어도 그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나도 마음이 편할테니까 말이지. 아무튼, 자는 남편을 두고(지난 밤, 나와 남편은 새벽 6시까지 서재에서 놀았던 것이다. 토요일이니까 그렇게 밤을 새며 놀 수 있고, 일요일에 그렇게 늦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이 우리의 패턴이라면 패턴인지라- ) 우리는 동네 고기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식사를 한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정말, 정말, 오랜만에 그녀와 단 둘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녀가 첫 아이를 낳기 전, 그러니까, 4년 전 가을(그녀는 그 때 임신중이었다)이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녀 곁에는 남편이, 아가가, 아가 둘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나도 결혼을 해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전화를 붙잡고 있는 때 외에는, 단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그녀의 얼굴에서 나이가 보인다. 그녀도, 마주한 내 얼굴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는 내친 김에 맥주도 두 병 마셨다. 고기를 구우며, 맥주를 마시며, 그녀와 나는 살이의 고단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고단함은 있고-없고의 문제가 아닌, 우리 나이의 기혼 여성들이 가질법한 보편한 고뇌들이었을 것이다. 남편이야기, 육아이야기, 시댁이야기, 친정이야기,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서로서로 맞물려 이어지고 끊어지고를 반복하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하니, 하루가 금세 지난다. (그 사이, 남편이 식당에 들러 인사를 하고, 계산도 마치고 나선다. 우리들을 위해 집 비워 준다고 외출까지 감행한 남편에게 작지만 참 큰 고마운 느낌 가지고.)
집에 와, 딸기랑 커피 한 잔 마시니, 그녀가 나설 차비를 한다. 왜 벌써 가냐고, 막차까지는 세 시간이나 남았다고 나는 그녀의 소매를 잡는다. 다음날 신랑 손님들이 있댄다. 그 길로 서울에 가서 장을 봐야 하고, 저녁에는 음식도 해 놔야 한다고. 하긴, 아가들 걱정에 그녀 마음이 하루종일 나만큼 편하고 즐겁지는 못했겠구나 싶으니, 마음이 그렇다.
그 차비에 나도 같이 분주해진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것들. 시어머님이 손수 캐고 말리시고, 정성껏 마련해 주신 것들. (어머님 며느리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아주 조금 나눠 주는 것이었으니, 어머님도 뭐라 하시지는 않으셨음 하는 마음,으로- 아무튼, ) 생도라지 가루, 매실 원액, 오미자 원액, 오가피 껍질에 은행, 뭐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다 담아도 쇼핑백 반도 안 찬다. 그래도 그런 거 쥐어주니, 내 마음이 훨씬 편하다.
터미널에서, 나는 마치, 입대하는 애인 보내듯이 괜히 글썽해진다. 서울행 버스표를 사주고, 버스에 올라탄 걸 보는데, 마실 것도 안 줘 보낸 거 같아 또 부랴 콜라 하나 뽑아 버스에 올라 쥐어주고. 버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친구가 핸폰으로 나를 찍는다. 바보같이 그 때 눈물이 비죽 솟는 건 또 뭔지.
아무튼, 그렇게 친구가 왔다갔다.
이제 한동안 마음이 더 횡할 것이다. 더 보고 싶기도 하고.
남편이 알면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결혼 전의 세상과 뚝 떨어져서 지내는게 조금 속상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사실, 친구는 최근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큰 충격이 있어 마음이 많이 횡하고 스산한 최근이다. 그래, 더 부랴 나에게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우리에게 힘겨운 하루이고,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못한 일요일 풍경을 만드는 일이었지만 가능하게 된 일이 말이다. 서울에서 내 집까지, 가고오고 두어시간씩, 바깥 풍경을 보면서 그녀가 더워진 속을 조금이나마 식혔길,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나 아가들에서 벗어난 온전한 '나'를 만난 여유의 시간이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어서, 나의 이 향수병도 사라지기를. 나의 이 그리움증이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