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격이 유별난 건 아니지만, 성장과 유년의 각인에 따라 손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좀 예민한 편이다. 뭐 그렇다고 핸드크림을 발라주지도 않고, 하다못해 고무장갑도 못 끼는 주제에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할 수는 없다. 설거지고, 걸레질이고간에. 그래서 나는 늘 맨손이다.) 엄마는 늘 나에게 손은 그 사람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 게다 여자의 손,에 대해서는 누누히 강조하고, 또한 그렇게 기르신 편이었다. 나도 그에 따라 손만큼은 곱상해야 한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그래서 그런지, 결혼하고서 내 외양에 가장 큰 변화는 손에 상처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 유독 나에게는 큰 의미처럼 느껴진다. 뭐, 별 거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살림이라는 것이, 뭐, 그악스럽고 철두철미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결혼 전과는 확실히 물을 대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주방용 세제, 빨래비누, 기타 세정 용액들이 손에 그대로 묻는 일이 다반사. 그러니 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거야, 샘플용 에센스를 발라주거나 하면 조금 차도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손톱이 부러지는 현상과, 더불어 손에 생기는 상처들이다.
부엌일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나는 잘 몰랐다. 예전, 엄마가 기름에 팔이 데여 물집이 잡히고, 칼에 베어 반창고를 붙이고 있을때마다, 아니 살림을 몇 십년을 했는데도 왜 그러냐며, 괜히 안스러운 마음을 그렇게 퉁명하게 반응하곤 했는데, 내가 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겠다.
몇십 년을 살림한 여자도 그렇게 다치고, 데이는데, 이제 갓 살림을 시작한 나는 어쩌겠는가. 말 안 해도 DVD다.
지금 내 손을 펴서 보니, 왼손에만 네 군데의 상처가 있다. 손바닥에서 손가락으로 뻗어가는 그 부분, 그러니, 손등을 보니 반지 네 개를 끼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부부동반 외출에는 결혼반지를 끼는데, 아주 모양새가 안 좋다. 보통때는 결혼 전부터 끼던 반지 두 개를 엄지와 검지에 끼고 있는데, 남은 세 군데의 손가락이 그지경이니, 완전 다섯 개의 반지를 낀 모양.
오른손은 좀 더 가관인데, 엄지 손가락 부분에 긁힌 상처(마치, 손톱으로 할큄을 당한 것 같은 모양으로;;), 새끼손가락도 반지를 끼고 있는 것 같은 상처 하나. 희한하게도 모두 비슷한 자리의 상처들. 그리고 손등에 하나.
게다, 상처는 잘 아물지를 않는다. 그거야 계속 물기가 닿아 있고, 세제들을 만지기 때문이겠지. 갈라지는 손가락끝은 그렇다해도, 아물지 않는 상처들이 검게 곪았다가, 딱지도 생기지 않고 다시 곪고 하는 과정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다. 왼손은 흉터까지 생겼고, 오른쪽은 진행중인 상처들. 기름에 데인 팔은, 아직은 긴팔을 입으니 눈에 보이지 않아 그저그런데, 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별로다.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손톱이 깨져서 기르지 못하는 것은 뭐 이제 별 문제 같지도 않다. (사실, 처음에는 결혼 전처럼 손톱을 길렀지만, 칼질을 하다가 손톱을 잘라먹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왼손 손톱이 뭉떵, 잘려나갈때마다 얼마나 섬뜩하던지;;)
친정엄마는 손에 유난한 정성을 들이는 여자에 든다. 살림을 하는 여자인데도, 언제나 엄마의 손톱은 적당한 길이의 동그스름한 모양이었고, 그 손톱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하게 메니큐어를 발라져 있었다. 그리고 쉰 중반인 지금도 엄마는 그러하다. 그런데, 이제 서른하나, 결혼 6개월차인 내 손은, 손만 보면 6개월이 아니라 6년을 살림한 여자 손같다. (6년을 살림한 여자의 손이라면 연륜이라도 보이지, 내 손은 사실, 뭐 그런 푸근한 맛도 없이 말이다)
관리,의 문제라는 것도 안다. 관리를 위해서라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상처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더 주의해야 하고, 조금 더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아차, 하는 순간 벌써 빨간 피가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하니, 어쩌겠는가.
집안일, 특히 부엌일이라는 것이 불과 칼을 만지는 과정이어서, 사실 따지면 참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단 하나도 없지만, 일개 밥을 하고, 국을 끓이는 일조차도, 파를 썰고, 김치를 써는 일 마저도 그러하니, 아직은 나에게 긴장해야 하는 과정이니, 세상 쉬운 건 정말 하나 없는 것이다.
아무려나, 이 멋지구리한 상처들은 어찌 한단 말인가. 친정 엄마에게 손 보이면 혼날 생각하니, 그것도 무섭기까지 하니, 이 어찌 하나. 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