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사실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제목 그대로, 저렴한 가격으로, 휘황찬란 레시피가 아닌, 삐까번쩍 상차림이 아닌,
말 그대로 밥상,을 위한 요리책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발휘한다.
음식을 잘 하거나, 혹은 살림을 오래 한 사람, 처음부터 입맛에 예민하거나, 정상적인 미(味)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위에 열거한, 음식을 못하고, 살림을 오래 하지도 않았으며, 입맛이 둔하고, 정상적인 미(味)감이 떨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이 아주 훌륭하게 쓰이는 것이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식을 잘 한다. 나는, 결혼 전이나, 그리고 지금도, 맛 보다는 끼니를 위한 식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배가 고프기 때문에 먹는 스타일. 맛있거나, 맛없거나의 개념도 별로 없는 사람.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다. 그래서 맛집이라든지, 특식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는대로 먹는 스타일,이었다는 것이 그 반증이 되겠지. 아무튼. 하지만 결혼, 그리고 살림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이게 큰 문제로 작용된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출신지역의 문제. 시댁은 경상도, 친정은 충청도. 일단 그 지역차가 많은 것의 갈등을 초래한다. 충청도 음식이 밍밍한데다가 딱히 맛깔스러움이 없는 특징, 경상도 음식은 쎄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렇게 서른 평생을 각자의 어머니 입맛에 길들여진 나와 신랑은, 밥 상 앞에서 곧잘 우울해지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해 주던 식으로 음식을 하면, 신랑은 그게 이상한 거다. 그래서 어줍잖게 어머님 흉내를 내면, 그건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맛이 나오고 나니, 큰일이어도 이런 큰일이 없는 셈.
게다, 앞서 말했듯이, 워낙에 미감이 둔하다는 사실을 나는 결혼을 하고서, 내가 음식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간을 맞추는 일조차도 못한다는 것. 그것은 다소간의 충격이었는데, 그러니까, 내 나름의 입맛, 내가 좋아하는 맛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발견이었다. 이렇게 문제적 와이프를 두었다는 걸 알아차린 남편도 기겁을 하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일단은 새로운 음식보다는, 간을 맞추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자,로 방향이 잡혔다.
하긴, 따져보면 내가 하는 음식이란 별로 없다. 신랑 말처럼, 소꼽놀이 수준,이라고. 그저 해 주신 음식들을 차리는 일 외에는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국이나 찌개는 내가 해야하는데, 내가 겨우 할 줄 아는 건 된장찌개 외에는 없다. 그건 요리책을 보지 않고, 어머님에게 전수받은 방법으로. 하지만 그것도 제 멋대로, 어떤 날은 맛있고, 어떤 날은 싱겁고, 또 어떤 날은 짜기 마련이니, 고생하는 건 신랑 밖에 없다. 물론, 나 역시 죄인처럼 식탁 앞에서 고개 숙이는 날은 비일비재.
식사가 즐겁지 못하다는 건, 신랑이나 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아무리 털털하고 소박한 입맛을 가진 신랑이지만, 매 끼니가 그렇게 좌절스럽다는 건 신랑에게도 우울한 일이다. 게다 나는 그런 신랑을 보는 일이 미안해서 어쩌지를 못한다. 그런 나에게 신랑이 말한다.
살림이나 요리라는 것이, 처음부터 잘 할 수 없고, 게다 여자들도 남자처럼 똑같이 학교 나오고, 회사생활하고서 결혼해서 처음 하는 건데, 그걸 처음부터 잘 하지 못한다고 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랑이 했던 저 말에 큰 힘을 얻는다. 그렇다. 나 역시, 신랑과 마찬가지로,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결혼을 했다. 내가 살림이나 부엌일을 해 본 경험이 없기는 신랑이나 나나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니, 지금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좌절할 이유는 없다. 다만, 우려는, 내가 절대미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돈을 벌어오는 것을 남편의 몫으로 했다면, 살림은 분명 여자의 몫이어야 한다. 나도 그만큼의 몫을 해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남자 친구네 놀러온 여자친구마냥, 그런 어설픈 상차림만 할 뿐이다. 그것이 우울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 책이 없어도, 거뜬히 한 끼 후딱 잘 차릴 수 있을 때가 오겠지. 언제까지 친정과 시댁에서 반찬을 공수해 올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여하튼, 갈 길이 험난하다.
아무튼, 그래도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배추속대국이라는 걸 시도했고, 순두부찌개도 따라해봤다. 계란국도 해먹어보고. 그저, 참으로 평범한 식단을 위한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찌개류, 국류, 나물과 밑반찬류, 몇 가지의 특식들. 평범한 기초 재료들을 구비해놓았다는 전제 하에, 한두가지의 재료만으로 할 수 있는 음식들. 그러니, 나같은 요리 초년생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다. 줄 수 있다면 열 개도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