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저렇게 달았지만, 나는 보는 드라마가 없다. 아줌마 되기 전에도, 아줌마가 되어도 그건 별 다를 바 없는 패턴이 되었다. 일일연속극은 물론이고,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낸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고현정이 나오는 <봄날>도, 도, 김희선이 나오는 드라마(제목조차 모르겠다)도, <쾌걸춘향> 등, 최근 유행이다 싶은 드라마를 보지 않고 사는 아줌마 인 것이다. (최근에 광분하면서 봤던 드라마는 <아일랜드>. 그것이 내가 좋아해서 부러 찾아봤던 유일한 드라마였다) 뭐,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보다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는 일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생각보다 내가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런데 가끔, 보게 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그것이 김수현 원작의 <부모님 전상서>이다. 나도 왕년에는 김수현 드라마 지긋지긋하게 싫어했었다. 빤한 구도(대가족제도, 노인이 결정권을 가지며 가장 善의 답을 가지고 있으며, 자식들 중에 하나는 망나니같은 신세대를 상징한다거나 하는), 다다다닥, 상대방의 가슴에 칼을 꽂는 말로 처리되는 대사들, 너무 많은 대사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거나, 혹은 너무 진부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마치 유행지나 촌스런 고무줄치마라도 입고 외출하는 것처럼, 나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뭐라 했던 것 같다. 이런 걸 뭐 하러 봐-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내가, 가끔가다 그 드라마를 본다. 찾아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우연찮게 재방송을 할 때, 유선에서 보여줄 때 등 그렇게 해서 매 회 분을 그럭저럭 다 보아온 듯 싶다. 보면서, 김수현도 늙었나 싶은 생각을 했다. 그 전에 내가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니, 내가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엄마와 전화로 김수현 드라마 이야기를 한 시간이고 할 때도 있다;;) 아무튼.
이번 <부모님 전상서>에서 작가는 조금 늙은 것 같다. 늙어서 고집스럽고, 늙어서 가부장적으로 변해가고, 늙어서 여전히 진부한 부분들은 있으나, 대사가 조금 순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나의 변화지만,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입장의 변화 때문이랄까. 그 집의 맏며느리와 둘째며느리를 보면서, 저 둘을 섞어놓으면 딱 나와 같겠다 싶은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 역을 보면서 내 어머님을 떠올리고, 며느리들의 부모들의 딸 걱정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부모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나는 홈빡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극 중에서 김희애역인 맏딸과, 아직 연애중인 막내딸의 역이 나에게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극 중의 중년들에게서 나는 내 부모와 내 시댁식구들을 떠올리고, 극 중 결혼 과정과 신혼 생활의 젊은 부부들을 보면서는 나와 내 남편을 떠올린다. 그들이 얼키고 설켜 뒤뚱거리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들, 그런 일상의 모습을 지닌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척이나 한국적이고(그건 진부하다,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 모습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포함된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아서,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내가 들어왔던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옛날 김수현 드라마에서 가졌던 부담감과 알 수 없는 짜증들은 어느새 내 안에 자연스럽게 잠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 드라마를 끝까지, 중간에 채널을 돌리지 않으며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공감,이
그 드라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하고,
주관적 경험과 공감 만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를 무지한, 혹은 깡통이 된 아줌마가 된 기분에 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시청자가 드라마까지 보면서 골치아프고 싶지 않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뉴스, 신문, 인터넷 을 통해 접하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 끔찍한 사건들, 고질적인 병폐들, 그래서 고쳐야 하고, 시범을 보이고, 모범을 보이고, 지향점을 보여줘야 할 장르가 굳이 드라마여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익히 알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에서 보이는 고질적인 문제점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율,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고리타분함의 승리, 진부함에 대한 익숙함, (그것이 문제적인 현실이더라도) 보편 타당한 현실의 촘촘한 극적 구성에 대한 완결성 등. 그런 것들이 김수현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수현 드라마를 칭찬하거나, <부모님 전상서>가 아주 뛰어난, 성공적인 드라마라 말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도 않거니와) 다만, 시청자의 하나인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통해 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며, 그것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의 변화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