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고. 행복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누구나,에서 나 역시 제외될 수 없듯이 나도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일 것이고.

오늘은 일이 좀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일 있어?' 의 그 '일' . 조금 울기도 했는데, 따지면 나쁜 일도 아니다. 마땅히 겪어야 할 일이었고, 게다 이미 예상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이미 예상한 일이어도 왜 닥치면 놀라는 것,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 사실, 그것도 이미 예상한 일이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은 일이기도 한 일인데도, 감정의 흔들림은 자발적인 무엇으로 통제할 수 없으므로, 그랬던 것이다. 

저녁에 수제비를 했다. (요즘은 감자가 땡긴다) 그런데, 식탁 앞에 앉은 그가, 수저를 들지 못한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그이가 차린 밥상을 물렀다.  입맛이 없다고. 하긴, 나도 아가가 아니었으면 똑같이 식욕이 일지 않았겠지만서도, 몸이란 때론 무서워서, 감정과 달리 먹어야 했다. 아무튼, 식사를 미룬 그이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거 처음이지? 라고 먼저 묻기도 하고.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밥이 먹히는 내가 미안하다.

살다보면 이런 날고 있겠고, 저런 날도 있다. 사실, 더 어렵고 끔찍한 일도 겪으면서 살게 될텐데. 따지면 오늘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 뿐이다. 그이와 내가 괜한 엄살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곱게 자라, 지레 겁먹는 겁보들.

그런 하루였다. 장마는 소강상태, 비는 그쳤고, 해가 반짝거려 부지런히 이불빨래를 했던 날.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아픈 것보다는 조금 울어서 손해보지 않은 날, 그런 날.

 

그리고, 방금 전에 그이가 수제비를 먹었다. 데워준다는 걸 그냥 찬 걸 먹어보겠다고 한 술 뜨더니 그냥 먹겠단다. 자정이 넘어도 한참 넘은 시간.
간간한 무말랭이 한 접시를 반찬으로 식은 수제비를 먹는다. 한 그릇을 비운 그이가 웃는다.
'맛있다. 한 그릇만 더 먹자'
고 말한다. 아까 함께 먹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는 듯이, 이제 지금은 나아졌다는 듯이, 이제 괜찮다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그러니 나는 그이에게 고맙다.
밥 먹어서. 잘 먹어서. 그리고 다시 웃어서.

그이가 먹는 걸 보면서, 살다보면 더 한 날도 오는 것인데, 너무 작은 일에 벌벌거리지 말아야겠다, 너무 겁보처럼 지레 놀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도 더울까. 내일도 해가 난다면, 온 집안의 방문을 활짝활짝 열고서 하루종일 환기를 시켜야겠다. 곰팡내 나지 않게, 더불어 내 가슴도 조금 열어두어야겠다. 마음의 곰팡내 피어오르지 않게. 그래서 나의 보송보송한 기운을 그이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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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5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싹틔운감자 2005-07-05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 아, 님! 괜한 걱정을 드렸는가 봅니다. 나쁜 일은 아니에요^^ 흔한 말로 집안일,인데. 아, 괜한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이었네요. 이런, 제 실수네요. 님의 염려를 읽다보니, 제 가슴이 다 철렁입니다. 염려 고마워요, 님. 죄송한 마음까지 드니, 이를 어쩔까요. 아무튼, 저는, 그리고 아가는, 건강한걸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가를 가지면, 좋은 생각만 하고, 예쁜 말만 해야 한다고. 그 흔한 말이 왜 그런지,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이렇게 경험하지 못한 일은 감히 실천하지 못하니, 이 무지함을, 이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아무튼, 님의 염려 덕분에 많은 것을 얻습니다. 고맙습니다, 님. )

딸기엄마 2005-07-05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그런 집안 일이라니까 시간이 약이겠군요~ 그러면 좋은 줄은 아는데 참 힘든게 태교인 듯 싶어요. 그저 엄마가 매일매일 행복하면 아가도 그걸 알아주겠죠? *^^*

싹틔운감자 2005-07-05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늦은 밤에 뵙네요(사실, 저는 예전부터 님의 서재를 마실다녔던지라;; ). 그렇지요. 소소한 일상, 그리고 그런 잔잔한 하루. 흔들림없어 보이는 수면도 나뭇잎 떨어지고, 물방울 떨어지고, 소금쟁이 팔딱 뛰어오르면 자잘한 동심원 만들면서 파장이 생기듯이, 일상도 그런 것이겠죠. 사람냄새,를 맡아주시니 고마운걸요! ^^ 자주 뵈어요, 님.

지우개,님- ^^ 시간이 약! 맞아요, 그렇겠지요? ^^ 태교- 음,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식욕이 땡기고, 그래서 마다하지 않고 밥 한 공기 뚝딱 비워내는 건강함. 저의 태교는 그런 씩씩함 같아요^^ 아무튼, 염려 고마워요, 님. ^^ 따지면, 오늘은 더 행복한 날이 아니었나 싶어요. 내일은 더 행복해져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