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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다녀갔다. 친정 엄마는
갈치조림이며, 꽈리고추볶음, 멸치볶음, 수정과와 식혜를,
서너가지의 과일과 오이 두 개, 심지어 과자 두 봉지까지 보내셨다.
갑자기 냉장고가 가득찬다.
그이는 갈치조림 하나만으로 두끼를 거뜬히 해치우고, 나는 엄마가 보낸 과자를 지난밤에 모두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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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오면서 반바지를 하나 선물했다. 내려오기 전, 여자친구와 쇼핑을 간 김에 내 생각이 난 것이고, 필요한 게 없느냐는데, 뭐 있을 게 있나. 무심히,
반바지 하나 사보라고. 남자 사각 빤스 같은 거 좋다고. 고무줄이 너무 땡땡한 거 말고, 짧아도 좋고, 집에서 입어도 좋고, 외출용으로도 좋은, 싼 걸로(말하고나니 무지 복잡한 주문이었다).
했더니만 사왔다. 베이지색에 보들거리는 면이 내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다. 길이도 적당하고. 배를 조이지도 않는다. 집에서도, 시장에 갈 때도 편히 입겠다.
새 옷을 입으면서 라벨을 떼는데, 사이즈가 30이다.
size 30.
내가 가지고 있는 여름 반바지가 원래 세 개가 있었다. 남색과 흰색, 그리고 숏팬츠 스타일의 베이지색. 남색과 흰색은 그냥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앞주름이 있는, 그런 반바지. 그 반바지가 허리를 조여왔던 건 여름이 시작하면서였다. 물론, 지금도 억지로 입을 수는 있지만, 숨쉬기를 포기하면 가능한 일인 것이다.
진만군이 건넨 반바지가 고무줄 바지이지만, 사이즈는 30.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반바지들의 사이즈들은 그럼 27, 28 정도였을 것이다. 아주 약간 헐렁하게 입던 반바지들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내 배가, 확실히 불렀다는 것이지.
사실, 반바지 뿐만이 아니다. 내가 박스형 여름 원피스가 많아서 여름용 임부복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요즘 절감한다. 홀몸이었을 때 헐렁하던 원피스가 이제는
배 뿐만 아니라, 소매 진동 부분과 가슴부분이 꽉 조여서 이건 마치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 속에 낑겨 있는 나처럼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만 나오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그렇게 투덕하게 살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임신 전 46~47kg이던 몸무게가 7월 중순(19주) 49.6kg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치수로만 따진다면 겨우 3.5kg이 찐 것 뿐인데 어찌 몸은 그냥 3.5kg이 찐것과 다르게 변하는가. 홀몸일때와 다른 신체 변화를 나는 옷을 통해 느끼고 있는 것이다.
(홀몸일때 살이 찌는 경우는, 그저 바지 허리가 작아지거나, 속옷이 약간 낑기는 느낌 정도로 감지되던 일일 뿐이었다 / 게다 3kg 정도는 살 쪘다고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오늘, 잠시 외출할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흰색 원피스를 입었다. 55사이즈 박스형 흰원피스(드라이까지 예쁘게 해 놨던). 검정 볼레로와 입을 계획이었는데 오늘 거울 앞에서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배는 배대로, 앞섶은 앞섶대로. 바느질선이 터질려고 하는 것이다. 게다 걸음 걷기는 왜 그리 불편한 게야. 아니, 홀몸일때는 시원해 보일만큼 풍성했던 원피스가, 도대체 3.5kg이 증가한 임산부가 입으니 완전 완전 꽝,이 되다니.
임산부 체중 증가가 만삭일때까지 10kg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아가 무게와 양수 무게 등을 빼면, 4,5kg은 고스란히 임산모의 무게인 것이다. (그 무게를 출산 후 3개월 이내에 빼지 못하면 영원히 뺄 수 없다는 전설같은 과학적 통계가 버젓이 있다)
임산부의 신체 변화상 단 음식을 땡기게 하고, 찬 것들을 먹게 하고, 또한 칼로리 자체가 높은 식사를 자주 하게 되는 것이 문제, 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체중변화에 민감해지는 건, 출산 이후의 몸매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소아비만이나 소아당뇨, 혹은 임신중독의 위험에서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부에 와 닿는 건, 임신중비만,과 출산후유증비만, 돌아오지못하는망가진몸매,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벌써무터 무섭다. 30size의 반바지가, 박스형 원피스마저도 작아지고 있는 작금의 형태가, 슬슬 벌어지는 팔자 스타일의 걸음걸이가, 정신을 차려보면 무언가 먹고 있는 내 자신이, 말이다.
내년 이맘때.
동생이 선물한 저 30size의 반바지가 커서 못 입게 될 상황,이 과연 도래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장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ㅡ 쓰다보니, 참 한심한 게,
이제 겨우 20주. 앞으로 20주는 더 변할 내 몸에 대한 두려움을 어찌 이길려고. 아니, 그런게 과연 그것이 '두려움'이라는 표현에 합당한 것인지. 당연한 몸무게의 증가와 체형의 변화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호들갑을 떨게 될는지. 그런 것은 생각 못하고, 그저 현실의 표상적인 것에 이리 벌벌 떠는 게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머리와 이성은 그런 것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