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하게 입덧이 끝났다고 요란하게 떠들고 다녀서 그런가,
잠잠했던 증상이 어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일찍 시작한 입덧이어서 일찍 끝난다고, 엄마가 대신 몸앓이를 하셨다고, 아가가 순해서 엄마 고생 안 시킨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그랬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증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건 없고.
속이 계속 울렁거려 기분이 나쁘고, 기분이 그러니 계속 짜증이 나고, 마땅한 대상이 없으니 그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짜증이 나고, 그러다보면 배는 고파오고, 고픈데 먹을 수 있는 게 없고, 차라리 이럴 바에는 속시원히 토하면 나을 것 같은데 그런 종류의 미슥거림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혼자 끙끙 거리는 중이다.

그래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매운탕도, 향긋한 나물도, 야채도 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끓인 밥을 두 번에 나눠 간신히 먹었을 뿐이다. 그러니 배가 고플 수밖에.
방금 전에, 끓인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서(다른 반찬은 꺼낼 생각도 못한다) 갑자기 먹고 싶은 게 떠올랐다.
걱정스럽게 물끄러미 먹는 걸 바라보던 그에게 내가 먹고 싶다고 말 한 건

콩나물국밥

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난해한 음식이라고, 도리어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먹고 싶다고 해서, 이거 못 먹으면 죽을 지경, 뭐 이런 것도 아니니, 조금만 참다보면 또 말끔히 사라지게 될 터이니, 나는 그리 심각하지 않게 말했을 뿐이다. 이 야밤에 남편에게 사오라 하기도, 그렇다고 둘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시내나 대학가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번거로운 일이니. (번거롭다기 보다는, 참을 만 했던 것이다)

아무튼, 내일까지 저 콩나물국밥이 땡기면, 어쩔 수 없겠다. 내일은 먹으러 가야지.

입덧이 이렇게 계속 죽 이어지는 게 아니라, 가라앉았다 다시 생겼다, 하는 건지 몰랐다(설마 나만 그런 경우,란 아니겠지. 다양한 경험들과 다양한 증상들, 그것이 임산부들의 특징이기도 하더라만).
아무튼, 입방정이었나보다. 입덧 끝났다고, 아싸- 했더니만.

그건 그거고, 속은 안 좋은데 배는 계속 고프다. 아, 이 난감한 상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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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엄마 2005-05-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이 원하는건 그게 필요하기 때문이래요. 귀챦다 싶어도 먹고 싶은거 사달라 그러세요. 콩나물국밥이 그새 다른 걸로 바뀌진 않았나요?

싹틔운감자 2005-05-2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개님 : 그새 바뀌었지요. 그런데요, 희한하게도 야밤이 되면 그게 먹고 싶은 겁니다. 해가 뜨면 그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말이죠. 마치 신랑 약이라도 올리듯이 말이죠;; 다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야 한다고, 이 때 아님 언제 그래보겠냐고, 신랑 괴롭혀도(?) 괜찮다고들, 하지만 저는 그게 마음이 안 편해요. 차라리 내가 힘든게 낫지, 신랑을 귀찮게 하는 일이 더 싫으니 말이죠. (신랑이 귀찮을지 기꺼이 해줄지도 모르면서요;;) ^^

올리브님 : 오! 올리브님이 해주시는 콩나물국밥, 맛있겠지요? 크- ^^ 안그래도 요리책을 뒤적여봤는데, 콩나물국밥이 있기는 한데, 제가 원한 그런 맛이 콩나물국밥이 아닐 것 같아서 시도는 안 했어요. 음, 지금같은 이 타이밍에 시도했다가, 결국 콩나물비린내에 질려 먹지도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네, 저도 안타깝습니다- ^^
 

한 달만에 정기검진. 검진 일자가 다가올수록 나는 극도의 예민함을 보였는데,
아마, 아가를 가진 엄마들이라면 모두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아가가 혹시라도, 라는 불안감 말이다.
(너무 불순한 생각이어서 차마 입밖으로 낼 수도 없다, 상상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과 별개로 고민과 걱정은 수반된다)

게다 나는 갑자기 입덧이 가라앉아, 정말, 혹시-? 라는 불안감으로 덜덜 떨다시피 했던 것이다.
물론, 그건 나의 과민한 반응이었고.

아가는 현재 4.5cm, 목길이로 봐서 다운증후군은 아니며(그 얘기를 듣는데 왜 가슴이 철렁하던지), 심장박동수도 지극히 정상, 양수도 정상,

이라고 담당의가 말했다.
그제야 나는 얼굴을 펼 수 있었다.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아가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 속 아가에게 인사했다.
안녕, 네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
아직 나를 지칭하는 단어로 '나'도, '엄마'도 쓰지 못하면서, 그렇게 어설프게 인사를 나누니 마음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극도의 예민함에서 벗어나, 다시 평온한 심리상태로 회복되었다.

(아, 다음달 진료 받으러 갈 때도, 그 즈음에도 이렇게 예민해져 있겠구나, 싶어 벌써부터 걱정과 심난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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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엄마 2005-05-28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축하해요..... 마음을 조금만 더 편안하게 가지시길...... 그러나 그게 뜻대로 잘 안되지요?

싹틔운감자 2005-05-29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지우개님! ^^ 마음을 조금만 더 편하게 가지는 일, 그게 아시다시피 잘 안 되던데요^^;; 그래도 노력해야죠^^ 축하 인사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시어머님에게서 고속버스택배로 한보따리를 받았다.
직접 키우신 상추, 쑥갓, 숙주나물에, 직접 캐신 산더덕에 대여섯 가지 산나물, 돌미나리까지.
저녁에 데워 먹으라고 요리 다 된 매운탕도 들어있고, 두서너가지 밑반찬도 들어 있다.
아, 덩어리 소고기도 한웅큼.
음식들이 상하거나 시들까봐 군데군데 얼려놨던 떡 두어가지를 촘촘히 박아놓으시기까지. 떡 찍어 먹으라고 콩고물까지 따로 챙겨 보내시고.

보자기를 풀으면서 시큰해졌다. 당신 자식, 당신 자식과 부대끼며 사는 며느리 먹으라고 그걸 손수 꼼꼼히 싸 보내셨을 어머님 생각에. 그러면서도 어머님은 '내가 가까이 있으면 다 해줄낀데, 괜히 니만 고생시키는갑다-' 라고 오히려 미안해하시기까지.

이 맛난 걸 열심히 먹는 일, 그것이 어머님에게 감사한 마음의 보답(이것밖에는 못하다니!)이겠지.
한동안 풍성한 식탁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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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엄마 2005-05-2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시어머님이 참 자상한 분이신데 감자님의 마음을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싹틔운감자 2005-05-2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저희 어머님 참 자상하세요. 언제나 자식 위주로 생각을 해주시니, 사실 그것이 가장 큰 감사함이죠. 며느리도 귀하다고 늘 애지중지, 어쩔 줄 몰라하시니 죄송스럽기도 하고요. 아무튼 제가 복이 좀 많은 거 같아요. 적어도 시댁어른들 때문에 늘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나와 내 동생은 태몽이 없다. 친정 엄마나 아버지, 어떤 분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다고 했다. 아쉽지만, 나와 내 동생은 그랬다.

오전에 시약테스트를 하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는 날 오전, 절친한 친구 R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 대뜸 수화기 너머로 좋은 소식 없느냐 물었다. 꿈에 커다란 밤 두 알을 품에 안았다고, 자기 주변에 나 외에는 없다 한다. 아이쿠, 어찌나 놀라웠던지. 나는 그래서 결국, 남편도 아닌, 친정식구나, 시댁식구가 아닌 친구 R에게 처음으로 아가 얘기를 꺼냈다. 안그래도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그러니, 아가 소식은 나 외에에 그녀가 세상에서 두번째로 들은 주인공이 된 셈이다.

그 무렵 내 생일이 있었는데, 예전 가르치던,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된 녀석에게서 문자가 왔다. 생일 축하 문자와 함께 좋은 소식 없느냐 묻는다. 왜? 답문을 보내니, 얼마전에 아주 크고 반짝이는 고래를 품에 안았다고, 선생님 아가 소식 아니냐고 묻는다. 이런, 이제 겨우 스물하나 아가씨에게도 태몽선물을 받게 되다니. 누구보다도 태몽을 꾸어줬다면서 녀석이 좋아한다. 돌고래,라- 나도 많이 웃었다.

며칠 뒤 아주버님에게서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미혼이신 아주버님이 신랑에게 아가 소식없느냐고 먼저 물으셨단다. 들어섰다고 얘기를 하니, 그제서야 며칠 꿈에 커다란 나무에서 커다란 과일을 따는 꿈을 꾸었다고 하신다. 비슷한 꿈을 여러번이나 꾸셨다고. 그렇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 무렵 시댁 제사가 있어 시댁에 갔다가 태몽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님은 아가 소식 있을 즈음에 아주 빨간 사과를 손에 쥐셨다고 한다. 무척 크고, 그 어떤 색깔도 포함되지 않은 커다랗고 아주아주 빨간 사과였다고.

그러자, 곁에서 얘기를 들으시던 아버님이 아가를 가질 무렵에 꾸는 것이 태몽이라며 어머니 꿈을 슬쩍 무시하신다^^ 대신 할머님께서 그 즈음(아가를 가질 즈음) 꿈에서 물고기를 몇 번 봤다면서 아가 소식을 물으셨다는 얘기를 꺼내신다. 그러면서 아버님은 할머님의 꿈이 태몽이라고 일축에 확정.

집안에 첫번째 며느리이고, 첫번째 아가를 맞이하는 일. 시댁 식구들, 내 친구와 나와 돈독한 지인에게서 듣는 태몽이야기. 어떤 것이 진짜 태몽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아가 소식에 맞춰 덕담을 나눠준 모든 분들의 애정이 아닐까, 그런 사랑의 표현이 그런 꿈의 형상으로 나에게 되돌아온 것은 아닌가 싶어 기쁘다.

친구 R은, 도대체 어떤 아이이길래 이런 요란뻑적한 태몽을 꾸게 하느냐 하는데, 무엇 하나 나의 아가의 태몽이라는 마음이 없어도, 그저 그들의 마음씀씀이, 기꺼이 당신들의 길몽을 나에게 선물해주는 마음에 나는 그저 고맙고 기쁠 뿐이다.

 물고기, 반짝이는 돌고래, 탐스럽고 반짝이는 밤 두알, 커다란 나무에서 딴 아주 빛깔 좋은 과일, 새빨갛고 윤기나는 사과 하나, 모든 사물들이 나에게는 그저 감격스럽다. 이 연관성 없는 사물들과 꿈의 조짐들로 아들이냐 딸이냐를 점찍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그렇게 예쁘고 좋은 모양의 사물들, 그것을 닮은 총명하고 예쁜 아가가 되기를 바라는 기원, 나의 마음도, 내가 받은 태몽의 의미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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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그를 외출시키고 나는 서재에 틀어박혔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아 반복적으로 나오는 에릭사티와 이사오 사사키의 멜랑꼴리한 음악, 약간 우중충한 하늘, 이런 오후,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나 먹자고 친구가 전화해주면 좋겠는 오후. 그런데,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있으니, 혼자 상상하면서 칼국수와 함께 먹는 김치 생각에 혼자 입맛만 다신다.

그러다 오래 참았던 커피 한 잔 그 몰래 마시는 이 즐거운 비밀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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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5-21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고이네요 읽다보니^^;

싹틔운감자 2005-05-2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안녕하세요, 피라님! 주말에는 왜 그런 면이 먹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요. ^>^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시지요?
(저는 피라,님을 예전부터 알아와서 더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