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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러시아 스탈린 시대의 소음
실존했던 작곡가의 삶을 소설로 옮겨내면서,
그 시대의 소음을 완벽하게 담아낸 책이다.
이 소설을 읽고, 과연 누가 그를 욕할 수 있을 것인가.
온통 광기뿐인 세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는 그따위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남들이 그런 것을 놓고 떠들든 말든,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루하루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는 생존의 기술자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기술자들."(12p) 한 인간의 이러한 생각과 함께 소설은 시작된다.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놀랍게도 그는 유명한 작곡가 '드미트리예비치'다. 스탈린 정권 시대에 살아갔던 아니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이던 평범한 사람이던, 모두들 "생존의 기술자들"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도 예외는 아니었고, 당에게 끌려갈걸 대비해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매일 밤마다 승강기로 나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운명. 그것은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 뿐이었다"(22p)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하루하루를 두려움으로 보내면서, 그는 점점 피폐해진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일을 하며, 자신을 가족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그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일까? "미래가 무엇을 결정할지는 미래가 결정할 것이다."(73p) 비관적이며 어찌보면 삶에 온전히 몸을 맡긴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니 소심하긴해도 자신의 생각과 주관이 뚜렸했던 그가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천재로 각광 받으며 유명해진 그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후로 음악이 금지당하는 모욕을 겪고, 총살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어쩌다 보니깐.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삶의 아이러니에 푹 빠지게 된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내가 어제 본 물체가 실존하는 물체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스탈린 정권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무엇도 진실이 될 수 있으며 무엇도 거짓이 될 수 있는 시대. 그런 아이러니함을 드미트리예비치는 "그는 담배 한 대에 더 불을 붙히고 운전사의 귀를 쳐다보았다. 적어도 저것은 확고하고 참된 것이다."(169p) 자신의 차를 운전해주는 운전사의 귀를 보면서 '진실'에 대해서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지금'보고있는 것은 실존하며 참된 것이라고. 어느새 늙어버린 드미트리예비치는, 자신은 굉장히 소심하다고 표현한다. "어쩌면 용기는 아름다움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171p) 평생동안 당에게 한 번의 반박도 하지 못한채 모욕적인 꼭두각시 역할을 하던 그는 용기를 아름다운 것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고결함은 처녀성과 같아서, 한 번 잃으면 절대 되찾을 수가 없다"(235p)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이미 고결함따위 없다고 생각하게된다. 두려움에 서서히 죽어가며 점점 비관적으로 변해가는 이 작곡가는. 자신이 차마 내지 못한 용기나 이미 예전에 잃어버리고만 고결함에 대해서, 사실과 거짓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책감에 계속해서 빠져든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하지는 못한다. 죽음을 선택하는 편이 훨씬 쉬워보이지만, 자신의 음악들이 거짓으로 인해서 더렵혀지는 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죽고난 후 가족들의 운명이 걱정되어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기술자가 되어서 그저 생존하고 있다.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정권 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작곡가의 일생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의 일생을 보면서 그 시대가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시대였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일생에 그 시대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작곡가'의 인생이자 '스탈린 정권'시대의 한 사람의 인생.
그 시대에 그 누가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으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다.
누가 그를 비겁하고 겁쟁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음악에 자신의 생각을 은근하게 담으면서 '언젠가 누군가 알아주길'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그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스탈린 정권 시대를 느껴보기에 아주 좋은 소설이다.
조금은 읽기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 옮긴이를 의심했었다.) 3장까지 포기하지 말고 읽을 것을 권한다. 다 읽고나면 (아니 3장을 읽는 순간부터) 분명히 감탄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