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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그림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9
히사오 주란.마키 이쓰마.하시 몬도 지음, 이선윤 옮김 / 이상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밀리의서재에서 장르문학을 둘러보다가 단편소설이 있길래 고민없이 바로 읽기 시작한 <나비 그림> 안그래도 종이책과 이북 모두 비문학을 읽으니 문학이 읽고 싶어서 근질근질 했는데 일본, 고전, 단편, 추리 라는 4박자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요소라 신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묘사하는 내용들이라 진지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기쁘게도 시리즈 전 권이 밀리에 있어서 앞으로 1권부터 전 권을 탐독하려고 한다.
-<호반> “네 엄마를 죽였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단편을 첫 번째 이야기로 실은 것은 우연일까, 편집자의 노림수일까. 충격적인 스타트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다음에 주인공의 생애를 통해 사건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심리적인 작용을 읽으면 혐오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소한 반전에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가 마지막에는 끝내 뒤틀린 주인공의 정신상태에 경악을 하게 된다. 자신이 죽는 모습을 “예술” 이라고 이야기 한 걸까, 자신이 벌인 모든 상황에 넋을 놓고 “예술”이라고 느낀 것일까.
<햄릿>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제목의 이 단편은 엽기적인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아름답고 미스테리한 노인으로 시선을 붙잡은 다음 그 노인의 이야기를 풀어주는데 햄릿을 연극하다 벌어진 사건으로 머리를 다치고 본인이 진짜 ‘햄릿’ 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야기. 정신분석적인 내용에 감탄하다가 그 상황을 만들어낸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의 묘사와 결말에 전체적인 구조를 다시 복기하며 두 번 생각하게 만든다.
<나비그림> 너무나 심약해서 많은 일들을 엄마와 누나들이 대신 해주던 사람이기에 당연히 전쟁터에서 살아오지 못할거라 여겼는데, 새하얀 피부색 하나 변하지 않고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전쟁에 다녀온 직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의혹을 안겨준다. 그에게 숨겨진 사연들과 그가 느끼는 괴로움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에게 가한 압박, 괴로움과 죄책감에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잔혹한 행위를 해야했던 상황. 과연 누가 누구에게 삿대질을 할 수 있을까? 아름다우면서도 충격적인 결말은 우리의 영원한 과제인 피해자와 가해자, 괴물과 괴물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사라진남자> 다섯 편의 작품 중에 가장 스릴 넘치는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모호함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경계하게 만든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는 이기적인 심리와 사회의 악습에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작품이다.
<춤추는 말> 사랑? 관심? 질투심? 어떤 것 때문이었을까, 얄팍한 감정으로 시작한 장난에 과몰입하게 되어 어떤 것이 진실인지 결국 모호하게 되어버렸다. 본인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상처가 되어버린 장난은 결국 최악의 결과를 내놓는데, 그 결과는 사건일까 사고일까. 마지막까지 장난을 내려놓지 못하고, 무엇이 진심인지 본인도 잊어버린, 어리석은 여성의 이야기. 혐오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난다.
<감옥방> 가장 심플하게 많은 것을 건네는 작품이다. 해석학 것도 생각할 것도 없는 뚜렷한 작품. <동물농장>이 생각난다. 타인에게 휘둘리고마는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공포에 대한 복종이라고 해야할까 포기라고 해야할까. 완벽한 한 편의 희극.
-솔직히 스릴감이나 추리 요소는 별로. 처음에는 읭? 이게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미 펼쳤기 때문에 억지로 페이지를 넘겼는데, 매 작품이 마지막에는 확실한 충격을 안겨줬다. 가벼움과 산뜻함은 전혀 없고 묵직한 여운이 남는 책이다. 미스터리의 심연에 집중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인간상을 꿰뚫어보는 작품들이라는 느낌이다. 특히 고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 시대’의. 시리즈마다 비슷한 결의 작품들을 모아놓았는지 아니면 모든 시리즈가 이와 비슷한 느낌일지 궁금해서 더욱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만약 매 작품마다 다른 분위기라면 정말 너무 행복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