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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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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 그다음의 순서는 사랑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헤어지는 것뿐이었다. 세상에 영원한건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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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 갑자기 미친듯이 끌려서 손에 집어든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두 눈 가득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채 펼친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 버렸다. 오랜만에 읽는 한국소설이라 그런지 확실히 정서가 잘 맞으니 읽기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격한 공감을 하며 페이지 넘기는 손을 멈추지 못하고 읽어야했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던 동생을 데리고 본집으로 데려온 주인공. 동생에게는 두 아이가 있는데 주인공은 ‘새 삶을 살아’라며 자신이 두 아이를 키운다고 이야기 한다. 갑자기 세 입이 늘어나 가족들은 모두 일자리로 나가서 치열하게 일하고 주인공은 자진해서 아이들과 집안일을 맡는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던 주인공은 읽고 쓰지 못하는 밤이 많아질 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입에서는 한숨만 흘러 나오고, 아무래도 쓰지 못하는 밤이 계속 될 것 같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와중에 읽은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 만난 현실과 꿈 사이에서 길을 잃은, 함께하고 싶은 현실과 그럼에도 놓고싶지 않은 꿈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지독한 현실감에 온 몸으로 느껴지는 그 답답함과 불안. 그때문에 주인공과 함께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게 되고, 현실의 소중함과 꿈의 소중함을 관계의 소중함과 자신의 소중함으로 바꿔 생각하며 어느 쪽이 ‘옳은가’ 판단하다가 다시 주인공의 선택에 잣대없이 응원하고 존중하게 된다. 사실 무엇이 더 중요한 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고 나눌 수 있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도록 많지만 동시에 넘쳐 흐르는 현실감에 그저 주인공을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뿐이다.
-읽고 싶은 밤과 쓰고 싶은 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지만, 매일 읽고 쓰는 삶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치열한 삶 속에는 그것과 같이, 혹은 더 중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그럼에도 놓지 않고 꾸준히 읽고 쓴다는 것.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작은 자부심을 얻고 그런 희망과 고통을 안고 있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건네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