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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다정한 유전>을 읽은 후 참지 못하고 바로 손에 집어든 <안락> 이 책도 선물받아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이 풍기는 편안하면서도 두려운 느낌을 가장 먼저 받았다. ‘안락’ 이라는 단어는 편안하다 라는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 한 글자만 붙이면 죽음을 뜻하는 ‘안락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감정을 전달해 줄지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역시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내용 이었다.
-말 했다 하면 하고야 마는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럽 여행을 다녀오신 후 가족들을 모아놓고 안락사를 하겠다고 선언하신다. 가족들은 저마다 다양한 반응으로 할머니의 의견을 존중 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면서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결국 그날이 다가오게 된다.
-어려서부터 60세가 되면 스위스로 날아가 안락사로 죽겠다고 결심했다.(사실 원래는 50었는데 최근에 조금 늘어났다.) 그러니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면서 살자고. 주변 사람들이 이러한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길 바랐고, 언젠가 이야기할 때가 되었을 때 아무도 충격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수시로 사방에 말하고 다녔다. ‘나는 안락사 할거야!’ 아주 어려서부터 죽음을 생각했고, 때문에 올바르고 아름다운 죽음을 바라게 되었다. 덕분에 죽음 자체는 두려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음에도 동시에 아이러니하게 질병이나 사고로 내가 원치 않는, 어딘가 망가져버린 후에 찾아오는 죽음은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편안한 표정으로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완벽한 이별의 인삿말을 한 후 맞이하는 죽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스스로 선택해서 경건히 받아들이는 죽음. <안락>은 그런 죽음을 선택한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나는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주변 사람들은 그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전제가 ‘죽음’이라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락>을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선택하는 평온하고 완벽한 죽음. 그 속에는 살아가는 동안 만나온 많은 사람들과의 이별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삶의 흔적을 정리하며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먼저 자리한다. 더욱이 앞으로 살 날이 아직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강제로 이별을 고하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빈자리를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완벽하고 편안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죽음에는 타인들의 슬픔이 자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완벽한 죽음’은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니 ‘완벽한 죽음’은 있을지라도 ‘완벽한 이별’은 없다는 것을.
-<안락>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죽음에 관해 이토록 담담하면서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책이 한국 작가의 손에서 탄생 했다는 것이 마냥 기쁘게 느껴진다면, 아무래도 나는 이상한 사람인걸까. 은모든 작가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