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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아르테 출판사 ‘작은책 시리즈’ 신작이 출간 되었다. 심지어 무려 강화길 작가님의 작품.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시리즈라 제대로 감을 잡지 못했음에도 읽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감사하게도 협찬을 받아 빠르게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다른 책들은 다 제쳐두고 가장 먼저 손에 집어 들었다. 넓고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면, 바다를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잔잔할 수 있을까, 저 깊은 곳에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괜시리 울컥하게 된다. 아름다움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정한 유전>은 그런 호수와 닮은 이야기였다.
-자신이 갇힌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글 속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시 글을 쓰는 사람들. 첫 번째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가 있지만 끝끝내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 끊임없이 쓰여지고 그려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쓰고 그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나는 동질감과 혐오. 그들은 왜 쓰는 것인가 그들은 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 쓰는 것인가 쓰고난 후 고통을 알게 된 것인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야기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현실과 닮아있다. 그리고 어쩌면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끝없는 평행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쓰고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혐오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쓰여진 것과 쓰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속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럼, 이야기와 현실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다르다는 것이,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일까. 어찌 되었든 쓰이고 위로 받고 쓰고 혐오하고 읽고 질투하고 쓰고 사랑하는 것은 모두 하나일 것이다.
여기 암수술을 마친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 고통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 하지만, 어느새 배를 부여잡고 끙끙 작은 신음을 내뱉고, 나는 어느새 수술침대에 누워있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은 남자친구에게 맞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건 나의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덮으면서 발바닥에 느껴지는 한기에 뒷덜미가 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결국 현실과 같은 것이다. 다르다고 부정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인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감을 잡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감은 잘 안잡힌다. 얼마전에 <인터내셔널의 밤> 서평을 쓸 적과 지금의 느낌이 똑같다.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짓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든 흡수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쉬이 흡수되지 않는 이야기에 답답함이 느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려 놓으니 이해가 되었다. 모두 같은 이야기(하나의 소설) 혹은 소설 속의 소설로 정의를 내리며 읽어 나가다 “아무렴 상관 없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니까 보이게 된 것이다. 모두가 꼭 하나의 이야기일 필요도, 모두가 꼭 다른 이야기라고 정의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어디선가 이 이야기는 또 다시 생겨나고 있을테니까. 그럼 나는 이 소설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히 나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내 삶의 일부가 이 속에 쓰여져 있으니까.
-나는 파편들을 만나면 모아서 이어붙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었다. 그것들은 각자로 존재해도 그 자체로 특별하다는 것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요즘 오디오북을 접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도 오디오북이 있다고 하니 아르테 작은책 시리즈 재독으로 접해볼까 한다. 누군가 읽어주는 글은 또 어떻게 다가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