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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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그녀의 살의가 미래로 생명을 이어 간다. -21p
세상은 늘 잔혹해요. 잔혹함의 형태가 변했을 뿐이에요. 내게는 다정한 세상이 됐어요. 누군가에게는 잔혹한 세상이 됐겠죠. 그뿐이에요. -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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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취향이 아주 잘 맞는 유우언니가 선물해주셔서 읽게 된 <살인출산> 다소 기괴한 그림과 심플함이 어우러진 표지 디자인과 ‘19세 미만 구독 불가’ 라는 글자. 그리고 <편의점 인간>의 작가라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무엇보다 ‘살인’과 ‘출산’이 어우러진 아이러니한 제목. 놀라운 점은 전혀 상반 되는 두 단어가 합쳐서 ‘살인출산’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단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괴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묘한 인상을 풍겼다. 유우언니가 고른 책이니까! 당연히! 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고, 다 읽고 덮은 후에는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너무, 하드했다.

-열 명의 아이를 낳으면 합법적으로 한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출산> 두 명이 아닌 세 명이서 사랑을 하며 기존과는 다른 섹스를 행하는 것이 유행인 <트리플> 성관계를 나누지 않고 남매같은 가족을 이루는 <청결한 결혼> 의학의 발달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죽을 수 없는 <여명>
이렇게 총 4가지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하나같이 현재의 세계관, 우리가 알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래도 <살인출산>이 넷 중 가장 대표작이라 그런지 페이지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가장 깊은 내용을 담고있다. “특정한 정의에 세뇌당하는 건 광기예요. -49p” 라는 말을 하며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그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을지 불변하는 것이 있기는 한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그도 그럴것이 소재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이다. 10개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면 1개의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물론 남성도 인공자궁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있으며 이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루어 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출산자가 되어 병원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소설 속의 시대에도 살인자는 존재한다. 그들은 사형 대신 생명체를 죽인 죄값으로 죽을 때 까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야 하는 벌을 받게 된다. <살인출산>은 사실 굉장히 평범한 시대이지만 단 하나의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으로 인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상식의 반전이 그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식의 부정확함에 혼란스러움이 발생하는 듯 하다. ‘당연한’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것이라는 발견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공포심을 가지게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3편도 역시나 기본적인 상식을 뒤엎긴 하지만 <살인출산>에 비하면 엄청 가벼운 무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을 뿐이지만 첫 작품의 충격 때문에 그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또 사실 잔인한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살인출산>이 19세 미만 구독 불가의 이유는 아닌듯 하다. <트리플>과 <청결한 결혼>에 성관계 장면이 상세히 묘사 되는데 아무래도 이 두 작품 때문에 19금 딱지가 붙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성행위 장면은 내 취향을 훨씬 더 확신할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피나는 장면은 굉장히 좋지만, SM성향은 절대 아니라는 것. 차라리 누군가를 때려 죽이면 흥미롭게 바라보며 그 과정을 추격하고 싶을텐데 이 두 장면은.... 굉장히 혐오스럽고 역겨웠다. 솔직히 말해서 상식의 반전이고 뭐고 생각의, 표현의 자유로움이고 뭐고 이해하는데 굉장히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생각의 반전을 통해 모든 상황을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게 독자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바램이 있었다면.. 음.. 아주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인출산>만 중단편으로 펴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순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와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명>은 굉장히 짧은 단편이라 큰 여운은 딱히 남지 않고, <트리플>과 <청결한 결혼>은 사실 장르문학 매니아들도 소화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펼쳐 든 장르문학이 굉장히 하드해서 조금 기진맥진한 기분이다. 이제 어서 오츠이치로 치유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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