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박산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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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되자마자 읽고 싶었던 <사브리나> 둥글둥글 귀여운 그림체로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유독하다’라는 표현이 붙은 건지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잔인하고, 파괴적인 그림이 그려진 것이 아닐까 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도 잔인하지 않고, 조금도 파괴적이지 않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담은 내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얇은 만화책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준 J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바친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사브리나’ 그리고 남겨진 이들. 그들은 사브리나의 실종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업계에 사브리나의 살인 장면이 녹화 된 비디오들이 배달되는 것이다. 처음 비디오를 받은 기자는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데, 그 이후에 비디오가 유출이 되고 만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잔인한 살인 사건에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이 사브리나의 실종 후 남겨진 이들에게 가해지게 된다.

-동글동글하고 귀엽기까지한 그림체에 우리가 흔히 보는 웹툰보다 생동감이 떨어지는, 전칸과 다음칸이 자연스럽게 연결 되지 않는 정지된 프레임에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들의 연속인 이 그림이 어떻게 독자들을 충격적으로 만들었을까? 심지어 앞서 말했듯이 이 만화는 잔인하거나 파괴적인 장면 조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일상적인 생활을 지속할 뿐이고, 우리는 그들의 일상을 조금 훔쳐볼 뿐이다. 반전도 없고 충격적인 결말도 없다. 우리가 보는 장면들의 특별한 점은 누군가의 존재와 부재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충격을 목도하는 이유는 이 부재가 ‘살인’으로 인한 부재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 남은 사람들이 살인자가 아닌 평범한 자들에 의해 2차 간접 살인을 당한다는 점이다.

-이 만화책은 조용하다. 책이 조용할게 뭐 있어?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조용하다 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내용이다. 조용하고, 잔인하다. 이 얇은 만화책을 일주일이나 읽어야 했는데, 정지 된 그림 속에 담겨져 있는 감정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건 지독할 정도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의 삶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행한 폭력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폭력일 수도 있다. 는 생각이 만화를 읽는 내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존재 ‘했던’ 세상의 일상과 그녀가 ‘사라진’후의 일상의 차이점 만으로도 독자들은 충분히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모르는 자들의 ‘악의 없는’ 간접 살인 행위에 소름끼치는 역겨움까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고통들을 이겨내고 일상과 도전으로 나아가는 결말로 다다르면 경이로운 감정이 느껴지게 된다. 동시에 그것마저 어딘가 씁쓸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 없는 온도를 유지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 이토록 담담하고 서늘하게 묘사할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사실 그 또한 누군가의 공포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포와 조바심으로 아무 생각 없이 행한 행위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되고 간접 살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여러 방식으로 실제로 존재 했던 일들이고, 현재도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행위의 본질, 그러니가 악의가 있고 없음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행위의 결과와 잔인함에 있다. 독자가 역겨움을 느끼는 이유도, 그 행위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성과 여파에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굳이 추천하고 싶은 도서는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어떤 사건의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이나, 우리가 가볍게 휘두르는 키보드 따위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절실히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사브리나>를 한 번씩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난 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행동들을 끝없이 의식하게 될 것이다. (뉴스를 보며 무심히 던지는 한 마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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