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
나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세상 역시 나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87p
지금 이 생각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내일, 모레, 아니 몇 년 후에도 계속. 모두들 꿈이었다고 말한다고 해도. -130p
인간은 현재보다 환경이 악화 될 경우 공포감을 느끼듯 좋아질 경우에도 역시 겁을 집어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5p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런 구원도 얻을 수 없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185p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해 -187p
-
-기묘한 독서모임 단톡방이 생겼다. 새해가 되자마자 랜덤으로 책 한 권씩 선물하기로. 해서! 내가 받게 된 책이 바로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전혀 알지 못하던 책이었기에 2장 까지 읽었을 때 이거 설마 이렇게 계속 마무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단편들인가? 싶어서 불안함이 샘솟았다. 이 불안함에는 다소 난잡한 표지 디자인이 한 몫 단단히 했는데 다행히 단편이 아니라 한 편의 장편 이었고, 예상보다 재미 있었다. 의외로 다 읽고보니 창작 소설이 아니라 자전 소설 이었는데, 자전 소설 특유의 지루함이나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괜찮게 읽었다.
-40살의 평범한 샐러리맨인 주인공은 지하철에서 sns를 보다 오래전 사랑했던 연인 가오리의 페이스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혼잡한 지하철에서 실수로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걸게 되고, 당황스러움과 함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했던 펜팔, 돈이 없었던 시절의 저렴한 러브모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회사 생활, 아슬아슬한 회사 상황으로 불안에 떨던 마음, 회사 동기와의 만남 등 평범하지만 찬란했던 과거의 기억이 물밀듯이 머리에 떠오르게 되는데..
-일단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옮긴이도 꽤 익숙한 이름 이었고, 작가의 첫 소설에다 작가가 되고자 쓴 글이 아닌, 그저 자신의 기억을 담아두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문체가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심지어 에쿠니 가오리 작가와 비슷한 감성이어서, 그녀의 팬이라면 모에가라의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별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아도 가슴을 따듯하게 채워주는 문체다.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의 기억을 천천히 읽어 나가다 보면, 소중하지만 아련한 추억과 어찌 되었든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에 자연히 나의 소중했던 추억이 떠오르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럼에도 일단 걸어 보는 거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지나치는 것들과 스치게 될 것들
-70억을 넘긴 세계 인구는 오늘도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고 해도 모든 인류를 다 만나볼 시간은 주어지지않는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만난 건 기적이다. -238p 그러므로 모든 기억, 누군가와의 만남과 지나쳐온 길들은 필연적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인데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이미 지나쳐 슬픈 기억도 결국엔 아름다운 회상이 된다. 앞으로 스치게 될 것들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소중했던 시간을,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소중한 것을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를 읽으면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믿을 수 없이 청아한 문체와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매끈한 스토리 진행에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마음이 차분해져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아련한 행복감에 빠져있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실화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몇몇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데 모든 여성과 갑작스레 연락이 끊겨 두 번 다시 닿지 못했다거나 모든 여성에게 무언가 도움을 얻었다는 부분이 너무 부자연스럽게 읽혔다. 전체적으로 ‘뻔’하다고 표현 하는 게 더 낫겠다. 그리고 주인공이 부정적이고 수동적이라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표지가...... 예쁘면서 예쁘지 않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 디자인 자체는 예쁘다. 예쁘게 만들어 졌지만 책 띠 까지 포함하면 너무 난잡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트위터에 140자를 써서 올린 글’이라는 문구가 책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게 만든다. 트위터. 140자. 난잡한 표지 디자인이 책 내용이 가벼울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내용이었기에 표지가 주는 이미지가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