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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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견했다. 사람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되면 그 존재를 통해서만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고. -177p
인생이란 레고와 같은 거니까. 견고하게 완성했다 싶어도 까짓것 금세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 -217p
몇 번을 놓치고 몇 번을 놓아버려야 끝나는 걸까. 나는 대체 얼마만큼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온 걸까.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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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도서로 나는 고민없이 아껴왔던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도서를 오래도록 읽지 않았는데도 첫 페이지를 펼치자 마자 가슴에 퍼지는 두근거림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이 문체를 또 마주치다니. 숨이 막힐 정도의 행복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소설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느끼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책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일본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카엘라와 사와코. 의지할 곳이 없는 그곳에서 그녀들은 서로가 최고의 친구이자 버팀목 이었다. 항상 붙어다니던 그녀들은 서로의 남자친구를 ‘공유’ 하기로 약속한다. 남자들은 모두 바람둥이라고 생각하며 남자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정말 좋은 남자인지’ 확인해 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던 중 일본으로 유학가서 사와코가 다쓰야를 만나게 되고, ‘공유’하기를 처음으로 거부하게 된다. 미카는 사와코가 있는 자리에서 다쓰야에게 자신이 사와코보다 다쓰야를 더 사랑한다며 청혼을 하고, 다쓰야는 그를 거절하고 사와코와 결혼을 하기로 한다. 그러다 미카는 불쑥 누구의 아이인지 모를 임신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후 20년. 자매는 일본과 아르헨티나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사와코가 다부치라는 연하남을 만나 다쓰야에게 이혼 서류만 남겨둔 채 다부치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돌아간다. 그 소식을 접하게 된 미카는 복잡미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그들(다쓰야,다부치,사와코,미카엘라)은 아르헨티나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데..

“별사탕을 묻으면 그게 일본 밤하늘에 흩어져서 별이 된다고 상상했어.(236p)”

-그녀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게 <별사탕 내리는 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이다. 남들과의 다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고독함 속에서 자라왔던 환경과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녀들의 삶을 어느 한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글쎄, 이번 소설은 저자의 다른 소설의 등장인물들 보다 더 어렵다. 특히 사와코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 다부치와 만나는 이유가 어떤 것인지 의아함이 든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게 에쿠니 가오리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서는 청아하고 수려한 문체로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르르 녹이는 힘이 있다. 반면에 그녀의 도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들이 많은데, 그녀의 문체로 풀어지는 이야기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녀의 도서는 시크하고 쿨하다. 그러나 차갑지 않고 따듯하다. 이것이 에쿠니 가오리 도서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 많은 마니아 팬이 있으면서 동시에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특이점이 모이고 모인 소설이다. 독특한 애정관, 불륜, 평범하지 않은 행동과 생각 등등이 소설 곳곳에서 보여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등장인물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지독히 평범한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인간적인, 각자의 사랑과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은 각자의 사연과 삶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기에 마음이가는 게 아닐까? 저자가 소설을 풀어내는 방식도 그렇다. 한 인물이 있으면 그 주위의 인물들까지 여러 사람 각자의 이야기가 풀어지기 때문에 개개인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면서도 더욱 지독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와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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