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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려면 수단을 가릴 여유가 없다. 이것저것 가리면 토담 아래서, 길바닥 위에서 주려 죽을 뿐이다. -20p <나생문>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 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을 자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불행을 어떻게든 해서 타개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이쪽에서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든다. -46p <코>

돌아보니, 소인 발치에 그 원숭이 요시히데가 사람처럼 두 손을 짚고 황금방울을 울리며 몇 번이나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던 겁니다. -104p <지옥변>

아무리 한 가지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인간으로서 오륜을 알지 아니하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125p <지옥변>

당신네 들은 칼은 쓰지 않고 권력으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아니면 무슨 그럴싸한 말만으로도 죽이잖아? -186p <덤불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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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아 읽어보게 된 책이다. 총 세 권을 보내 주셨는데 그중에서 이 책이 선물의 메인이라고 하시기에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집어들었다. 우선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둬야 할 점은,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으로 일본 서적처럼 오른쪽에서 왼쪽, 그리고 세로읽기라는 것이다. 정말로 그 당시의 서적을 읽는 것 같은 기분과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익숙하지 않아서 자꾸만 선을 잘 못 읽는다는 단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진도가 꽤 더디게 나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고전작품을 읽었더니 문체를 결국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세로읽기라 더 그런점이 두드러지기도 했지만 고전 문학은 주기적으로 읽어줘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은 처음 읽어본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고요하고, 어둡고, 우울감이 짙다. 이 단편집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끼어들지 않는다. 작품의 음울함을 받아들이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기 때문이다.

<나생문> 나라가 힘든 시절, 나생문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심지어 사람들은 거기에 처지곤란인 시체를 던져둔다는 장면에서는 삶이 힘겨워지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지 먼저 볼 수 있다. 그 이후의 장면에서는 인과응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네가 그러했으니 이러해도 된다. 네가 이러했으니 그러해도 된다. 가 되풀이 된다. 역겨울 정도의 이기적인 모습이 멈추지 않고 보여진다. 마지막의 ‘하인의 행방’은 그가 이제 어느길로 갈 것인지에 대해 독자 개개인의 상상에 맡겨둔다. 그는 결국 도적의 길을 택했을 까? 아니면 빼앗은 옷을 팔고 그 돈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갔을까? 독자의 인품에 따라 달리 생각 될 수도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이야기 흐름상 자연스럽게 ‘당연히’ 도적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 것 자체가 작가의 계략이 아니었을까.
<코> 승려를 이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 자체가 재미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외모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그것을 계속해서 신경쓰면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 따른 내적갈등이 굉장히 잘 묘사되어 있으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타인에게 어떤 형식으로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어떻게든 바꾸고자 노력하고, 바뀐 후의 외모도 계속해서 신경쓰이게 된다는 아이러니함과 불만족의 연속이 흥미롭게 보인다. 결국 자존감이 낮으면 그 어떤 형태도 만족스러울 수 없다.
<여체> 벼룩이 되어 바라본 여성의 신체에 대한 찬사가 그려진 작품. 그 외에 다른 의미는 담겨져있지 않은 것 같다.
<지옥변> 솔직히 이 작품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는 것 외에는.. 스토리 자체도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가마에 태운 것이 도대체 왜 요시히데의 여식인지가 가장 큰 의문 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림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화가에게 응당한 벌을 주고, 그럼에도 완벽한 그림은 그린 화가에게 씁쓸함을 느끼고, 오륜을 저버리고 완벽한 그림을 완성한 화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라고만 이해하면 너무 뻔한 내용 아닌가.. 작가는 좀 더 다른 걸 의도했을 거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거미줄> 이 작품은 단테 <신곡> 지옥편에 자극을 받아 쓴 느낌이 든다. 이기적인 자는 결국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꽤나 흥미롭게 읽혔다.
<귤> 이 단편집 중에서 유일하게 밝고 맑고 아름다운 이야기. 작가의 의도파악이나 작품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은 작품. 인간은 단순한 아름다움 속에서 음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싶다.
<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와닿았고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두려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끼며(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에는 두 가지 감정을 함께 느낄 것이다.) 떨리는 첫 데이트를 나가는데. 환상에서 순식간에 현실로 불러들인 것은 다름아닌 저렴한 파. 현실 은 근검절약 해야한다는 압박감. 이 이야기는 별거 아닌 것 처럼 느껴지지만 정말. 너무. 잔인한 이야기다. 파를 손에 들고 “오래 기다리셨죠”라고 하는 말의 울림은 얼만큼의 슬픔이 담겨져 있는지..
<덤불 속> 한 사건 속에 여러명의 사람이 있을 경우. 자신의 상황에 따라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고, 기억하고, 변경한다는 인간의 본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굉장히 섬세한 작품이지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본다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구 말이 맞다는 건데!?’ 답이 없는 작품에 답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개인적으로 내가 그러했기 때문에..)
<흰둥이> 이 단편집에서 <귤>이 유일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라고 했는데, 사실 흰둥이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다만 귤처럼 밝지는 않다. 어딘가 서글프고 우울한 느낌이 감도는데, 아마도 외적 차이에 대한 차별과 다른 생명의 죽음을 방관했던 자가 다른 생명을 구한 후 자신의 외모를 되찾는 이야기라 그런게 아닐까 싶다.
<톱니바퀴> 이 단편집을 읽는 내내 음울함이 조금씩 커지는데..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저자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런 저자의 심정이 굉장히 깊게 묘사 된 작품이라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불편한 느낌이 든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까지 뚜렷하게 표현한 작품이 이 외에 또 있을까?

​나생문, 혹은 라쇼몽이라 불리우며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 이다. 특히 <덤불 속>은 ‘라쇼몽 효과’라는 학술용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인간의 심리를 잘 꿰뚫어본 작품이다. 저자의 의도파악과 작품을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톱니바퀴>로 작품이 끝나기 때문에 책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이 굉장히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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