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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뻔한 세상
엘란 마스타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는 SF소설이 탄생 되었다.
엘란 마스타이의 우리가 살 뻔한 세상.
올 여름 최고의 sf소설을 넘어 sf장르 소설 중 최고의 소설 자리에 올라갈 책 우리가 살 뻔한 세상.
필자가 기피하는 책은 과학 관련 도서다. 당연히 어려운 과학적 용어가 나오는 sf소설도 읽고싶은 책 목록 에서 자주 배제된다. 이해하기 어려워 읽는 속도가 더디고 이해를 잘 못하다보니 재미까지 반감되 결국 두루뭉실한 줄거리만 기억에 남게된다. 거기에 반해 엘란 마스타이의 소설은 어려운 과학적 용어를 최소화 시켜 쉽게 소화시키며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 동시에 넘쳐나는 재치로 독서하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준다. 때문에 나처럼 SF를 기피하던 분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유토피아적인 말 그대로 '완벽한' 세상에서 살고있는 주인공 톰은 천재적이고 완벽한 아버지 밑에서 외롭고 쓸모없게 자라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인생을 허무하게 흘려보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적 고통 앞에서 갈피를 못잡는 아들을 아버지는 자신의 연구소에 취직 시키게 된다. 그 후 톰은 아버지의 '시간 여행자' 연구소에서 일생일대의 연인 베넬로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천재적인 아버지를 둔 아들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최초의 시간여행 하루 전에 피임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뜨거운 밤을 보낸다. 시간여행 당일날.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평생의 꿈이었던 시간여행은 무기한 연장이 되었고 자신의 커리어가 망가졌다는 것을 깨달은 페넬로페는 톰이 바라보는 앞에서 자살을 하게된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톰은 강제로 시간여행을 감행하게 되는데, 시간여행을 하다가 실수로 자신이 있던 원래 시간의 공간이 180도 바뀐 것을 알아차리고 실수를 되돌리려 하는데, 그런 그의 앞에 사랑하는 연인 페넬로페와 똑 닮음 페니와 어머니가 살아서 나타난다. 그는 현재의 행복과 사랑, 원래 있던 세상의 외롭지만 완벽한 세상 사이에 서 갈등을 하게 된다.
과거의 일부분이 바뀌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현재는 바뀌게 된다.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태어나거나 태어났어야 하는 내가 태어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톰은 과거로 여행을 갔다가 현재로 돌아와 존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미세하게 다른 자신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저자는 '시간의 닻' 이라며 시간을 바꾼 사람은 매개체가 되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하며 '시간 여행'에 대해서 기존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단순히 과거로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비물질화' 과정을 통해서 '과거에 조금의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바라본다. 저자가 말하는 시간여행의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은 새로우면서도 기존의 개념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시간여행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인 생각을 대입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시간 여행에 대한 철학적 생각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 뻔한 세상에서는 시간여행에 관한 패러다임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철학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바로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려는 노력 사이의 갈등이다. 여기에서 좀 더 심화해 유토피아 즉 전쟁이 없고 모든 기술이 완벽하게 발전된 세상과 문명에 뒤처져 자연과 세계를 파괴하고 전쟁의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는 같은 시간 선상 사이에서 톰은 자신의 감정을 대입해 문제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외롭고 완벽한 세상과 조금 딸리더라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톰은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다고 존재했어야 하는 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갈 자격이 있을까?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는걸까? 하는 많은 갈등에 사로잡히게 된다.
결론적으로 톰은 세상을 바꾸려하면 할 수 록 세상은 더 나빠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톰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세상이 변하기 마지마 20초를 남겨두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재미있다. 놀랍도록 유쾌하며 놀랍도록 쉽게 읽히고 놀랍도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현실적인 시간 여행에 대한 개념은 설레임을 가지게 만들고 두 가지의 시간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쨌든 자신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탄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고뇌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덧붙여 점점 발전해가는 톰의 사상과 자신의 또다른 자아들과 화합을 이루는 과정은 시간 여행을 대하는 저자의 진지함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매끄러운 문체로 잘 읽히는 것도 좋지만, 글을 서술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이용하는 모습에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글씨를 거꾸로 쓰거나 섞어서 쓰거나 스스로 중간에 줄거리를 첨부함으로써 신선함을 더했고, 톰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만들어준다.
더운 여름 내 심정을 대변하는 한 페이지, 이 페이지만으로 얼마나 재치있는 책인지 알아볼 수 있다.
올 여름 에어컨, 그리고 우리가 살뻔한 세상과 함께 한다면 완벽한 시간이 될 것이다.
"동정심은 물건을 매매하는 것과도 같아요. 슬픔을 그렇게 팔고 다니면, 결국 가치가 없어질 거에요." -64p
결국 넘지 않은 거라면 뭐하러 선이라는 게 존재한단 말인가? -93p
운명은 그녀의 앞길을 망쳐버렸다. 그러니 자신도 운명을 망칠 작정이었다. -96p
선택지라는 것은 순간적인 감정의 기복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냥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으면 그만이다. -12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