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읽을 때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AI 시대.. 작가는 먼 미래 저와 같은 상황이 올거라

예상했던 걸까... 편리한 도움을 받을수록 뭔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지금이라

다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고 싶었던 걸까 싶다^^


모든 사고가 오로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각인되어 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근사했을 것이다. 그 시절엔 책을 압축하는 대신 인간의 머리를 짜냐야 했겠지.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건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기 때문이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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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인상깊게 읽었지만 고야의 표지도 강렬했더랬다. 처음 본 그림이기도 했지만,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다.<명화의 완성 그때 그사람>에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언뜻 자화상은 아닐까 생각하면서,작품을 너무 이성적으로 보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책을 통해 알았다.오로지 화가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게 된 작품이란 사실을.


"이 그림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팔기 위해 그린 게 아니라는 겁니다.주문도 없었고 전시 계획도 없었고 존재 자체를 알리지도 않았습니다.평생 왕실과 귀족과 점령 정부의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려온 사람이 마침내 오직 자신만을 위한 그림을 그린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고야 이전 시대에 이런 개념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278쪽


"전통적인 회화문법으로 보면 이건 미완성작품입니다.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이 그림은 압도적입니다.설명할 수 있는 것을 전부 걷어낸 자리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정의 밀도가 남았습니다.이런 접근은 20세기 추상표현주의보다 130년 이상 앞선 것입니다"/279쪽


'지금도 나는 배운다'










고야전시를 기다리면서, 고야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를 내심 바랬더랬다. '가라앉은 개' 이야기가 있어 반가웠지만, 처음 보는 고야의 판화를 보면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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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구입할 때 소설집일거라 생각하지 하지 못했다.'은하철도의 밤'과 함께 수록된 '고양이 사무소'를 읽었다. 그런데 부제가 있다.'어느 작은 관공서에 관한 환상' 고양이 모습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감히 예상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무 통렬해서 순간,이런 방법 말고는 정말 없는 것일까 묻고 싶어진다.


우선 지금 우리나라에서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축구 이야기를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소통하지 않는 리더,협회사람들,그리고 개혁을 바란다는 열망을 담은 인터뷰를 봤다. 다시 '고양이 사무소' 이야기로 와서, 사무장과 네 마리의 서기가 일하고 있다. 그런데 부뚜막 고양이는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받고, 왕따를 당한다. 그 이유가 어이없음은 말할필요도 없다. 그러는 사이 남극바다에서 돌아오던 판 폴라리스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부뚜막 고양이 말고 다른 이들은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느닷없이 등장한 사자는 사무소를 해산시킨다는 명령을 내린다. 그들만의 리그 속에 머문 기관은,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사라지게 되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가 문제 있음을 인지하고 변화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전혀 상관(?)없는 제3자의 힘이 닿아야 변화될 수 있다면,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긴 할까...뭔가 통렬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개운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개의 심장>이 나도 모르게 생각났다.읽지도 않았으면서,읽고 싶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아.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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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젤리아'










칼 라르손그림을 이렇게 반가워하며 읽게 될 줄이야.. 얼마전 방문한 카페에서 본 그림인데, 순간 화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어플에 물어보면 될텐데..그냥 내 기억속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는 고집이 끝내 허락하지 않은 거다. <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화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어도, 그림은 기억하고 있었다는 기쁨.. 수없이(?)는 아니고 종종 보았을 그림인데, 화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칼 라르손 화가를 오롯이 마주한 기억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아내를 모델로 그린 '아젤리아' 역시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이 아니라..기억하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짧고 강렬한 화가의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특히 저주를 퍼부은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한 화가의 마음이 존경스러웠다.


"경제적인 성공을 거머쥔 라르손은 부모님에게 집을 사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품었던 그 저주와 증오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부정적인 감정들은 불쑥불쑥 나타나 라르손을 괴롭히곤 했지요.하지만 아버지가 여든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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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픈 것이다 ㅣ 위픽
J. 김보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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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프다' 의 사전적 정의는 물건이나 돈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쓴다는 뜻이다. 소설에서도 초반부 이런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온갖 미신과 기괴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상주를 위로하는 말 처럼 보이지만, 뭔가 알맹이는 빠져 있는 느낌 ..헤픈행동과,말들이 남무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만약 끝까지 헤픔에 대한 부정이 소설을 이끌어갔다면 싱거웠을 텐데, 이 짧은 이야기에 뭉클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봄날처럼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같이 여행할 수 있으니'

그러자 심장이 두근 하고 뛰었다. 상처가 다 봉합되며 마음이 뭉근하니 따뜻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회의가 밀려들었다.

이것은 한낱 꿈이다.내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망상에 불과하다.

어쩌다 엄마가 내 환몽의 여행지를 입에 담았을지 궁금해하다 떠올린 하나의 해석본에 불과하다"/66~67쪽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미신에 가까운 말과 행동들은 헤픈 것들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주은은 자각몽을 꾼다. 생전에 가보지 못했던 엄마와의 여행을 하면서,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위로 받을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헤프게 보이는 것들이 상실감을 채워주는 역활을 해 줄 수도 있다는 경험(아니 체험)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어서 잠깐 소설이란 생각을 잊었더랬다.

막 읽기 시작했을 때는 '헤픈 것'들이라 읽으면서 혐오스러운 말들을 생각했더랬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들은,모두 헤픈 말이라고 단정해버린거다. 그런데 진실이 담긴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면 헤퍼보일수..있어도, 결코 헤픈말이 아닐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전제가 붙어야 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참말'은 아닐수 있다는 사실^^



"아 의미 부여하지 마라.거짓말이란 뜻은 아니고 참말이다.그런데 나한테만 참말이다.너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다.무슨 말인지 알겠냐,됐다.몰라도 된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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