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헤르만의 신간을 보는 순간 내 시선은 다시 <<여름 별장,그후>>로 향했다. 작가 강연을 열심히 찾아다니던 시절, 어느(사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작가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으로 기억한다.그러나 당시에는 잘 넘어가지 않았다.제목 때문에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읽어 보리라 생각했는데, 그러는 사이 개정판도 나왔고 작가의 다른 책들이 간간히 출간되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여름 별장,그 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신간은 이상하게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여름 별장. 그 후>를 이제는 읽어야 할 때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신간 제목이....^^









소설집이란 건 책을 펼쳐 보고 알았다. 마음은 '여름 별장, 그후' 부터 읽고 싶었지만 '붉은 산호'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예전에는 잘 읽혀지지 않던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잘 읽혀진다는 게 놀랍다. 물론 아직 한 편 밖에 읽지 않았지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리 치료 상담을 받았고 그 때문에 붉은 산호 팔찌와 내 애인을 잃었다"/11쪽


이야기는 붉은 산호 팔찌를 처음 소유했던 증조할머니에 관한 시간으로 돌아간다. 증조할머니에게 '산호 팔찌'는 증조할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끈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애인과 이별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헤어지고 싶지는 않다.(아니 어쩌면 헤어질 이유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도저히 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모양이다. 증조할머니와 자신을 동일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쏟아내는 그녀의 원망을 마주했다. 증조할머니가 러시아로 가지 않았다면..팔찌를 받지 않았다면..곱사등 이삭 바루브가 증조할머니를 따라 나서지 않았다면...내가 심리 치료사의 방까지 오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들. 자연스럽게 얼마전 읽은 빅터 플랭클의<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떠올랐다. 그녀가 고통스러웠던 건 자신의 문제를 외부탓으로만 돌리려한 것이 본질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 이유는 아니였을까. 붉은 산호 팔찌가 끊어지는 순간,그녀는 자신의 문제는 의사도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거라 이해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팔찌와 애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과 결별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찾게 된 건 아닐까.


"나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 놀라웠다.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21쪽










<집으로의 긴 여행>을 읽고 싶어서,아니 구입하고 싶어서 <여름 별장,그 후>를 읽고 있다.  집으로..까지 읽게 된 다면 한 권 더 읽어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은 <<여름 별장,그 후>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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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한국어판 발매 20주년 기념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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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로 부터 종종 추천 받았지만, 아우슈비츠라는 역사적 비극을 다룬 주제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외면 했더랬다.그런데 찾아간  책방마다 이 책이 내 시야로 들어왔다.이제는 읽어야 할 때가 온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챙겨왔다.(그것도 백년가게를 유지하려는 양양 책방에서^^) 그렇게 마주한 책은 내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아우슈비츠를 고발하는 기록물이 아니었다.인간의 내면과 존재를 통찰한 심리학서였다.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역사적 배경을 잠시 지워두기로 했다. 그 대신 삶이 던지는 '고통'이라는 본질적인 화두로 바꿔 읽어 나갔다.


고통(감옥)은 인간이길 포기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 나아갈..수 있게 되는 듯 하다.아니 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점점 무감각해지게 자신을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할 존재의 이유를 불들고 물어야 하는거다.,더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자포자기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내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질문하기. 뜬구름잡는 희망이라도 좋다.지금을 이겨내면, 앞으로는 지금과 다른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희망.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나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미래를 생각할수 있다는 걸까.하고 누군가는 딴지를 걸어올수도 있을텐데,최근에 읽은 <불필요한 여자>속 그녀와 영화 '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속 슐레이만이 빅터 프랭크박사의 말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앞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절망 속에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번역하며 버티는 시간, 엄마를 위해 살아내야 겠다는 의지...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강조한 부분이었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지게 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세상이 나를 불필요한 존재로 취급한다고 해도 스스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지인에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선물하고 싶어졌다.그러나 오지랖이 될 것 같은 마음도 있어 아직은 조심스럽다.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사람과,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바라보는 온도차는 분명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읽어 보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흘리듯 책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마냥 착하기만 한 심리학을 담지 않았다는 느낌도 좋았지만,정신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그런데 살아가는 동안 이 책은 늘 친구처럼 곁에 두어야 할 책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사실 그것이 가장 기뻤다. 삶이 버거워지는 순간마다, 마음을 붙잡고 싶은 날들이 올때 꺼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시간들이 가급적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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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이 제일 맛있단다
모니카 김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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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빠의 무책임.그로 인해 무너져 내린 엄마의 외로움과 슬픔.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던 지원과 지현. 아빠가 떠나고 난 후 엄마는 두 딸 앞에서 생선 눈알을 먹으면 복이 들어온다며, 꾸역꾸역 생선눈알을 먹으면서,당신의 딸들에게도 강요한다. 큰 딸 지원은 엄마를 위해 생선눈알을 기꺼이 먹는다. 아마도 이 행위가 이뤄지는 순간부터가, 엄마의 고통을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원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원하는 대학도 가지 못했다. 학점에 대한 강박, 엄마가 새로 만나게 된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폭력성은 두 딸이 감당하기에 벅차다. 그리고 그런 딸들의 감정을 들여다 보지 않은 듯한 엄마가 사실 조지보다 더 원망스러웠다.


서양사회에서 동양인 이민자를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대한 묘사 보다 더 답답했던 건,아니 읽는 내내 개운하지 않았던 지점은, 지원이 선택한 방식이 '살인'에 있었다는 점이다. 엄마의 새남자를 죽일 이유야,수천가지가 되겠지만,그럴때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쏟아낸 감정을 여과없이 지원이 받아버린 탓이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질문이 따라온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괴물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고통을 잊기 위해 생선 눈알을 먹었지만, 지원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용서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자신에게 상처준 근원에 대해 파괴하려는 뒤틀린 욕망으로 가득찼을 뿐이다.


"아빠가 우리를 떠나기 보름 전쯤 나는 아빠와 말다툼을 했다.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내가 거의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빠는 내게 작은 주머니칼을 하나 가지고 다니라고 말했다. 아빠가 그 칼을 꺼내 보여줬을 때 나는 겁이 났다.크기는 작아도 엄연한 칼이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차가운 광택이 흘렀고 치명적으로 위험한 도구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그런 끔삑한 물건이 내게 필요할 거라곤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다"/200쪽


이 소설을 장녀의 무게감이나 이민자의 소외라는 프레임으로 읽고 싶지는 않았다.그보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만적인 방법으로 '정서적 학대'를 했을 때 파멸적인 결과로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다.그녀가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다면..(그러니까 엄마가 눈알을 먹는 걸로 연민에 빠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보려고 노력했다면,그녀의 앤딩은 아빠를 향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옳다.그녀는 치유되지 않았고 극복하지 못한거다. 읽는 내내 답답했다.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서..그래서 더 잘 읽혀진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제일..같은 말들은 위험하다.당신을 돌이킬 수 없는 이상한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으니까 



ps 지원의 심리학 기말시험  첫 번째 질문이 심오하게 다가온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감정과 지각을 형성하는가"/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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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은 '밤길' 이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건 별똥별이라 믿고 싶은 장면이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채 정신없이 앞으로 가는 모습...그러다 왜 파란색으로 그려진 기분이 좋아 한참을 바라보았는데...<은하철도의 밤>을 읽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소설을 미리 읽고 갔더라면 밤길 그림을 보면서 하늘 들판에 와 있다는 표현을 지인에게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눈부시게 빛나는 예쁜 삼각표들이 제각각 숨을 쉬듯 반짝반짝 반짝거리며 흔들렸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늘 들판에 왔어> 조반니는 말했습니다"/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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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카페이름과 같아 읽어야 할 리스트에 올려 놓은 사이(연월일) 지인으로 부터 추천받게 된(월요일수요일토요일) 문득, 요일을 제목으로 한 소설은 어떤게 있을까 검색해보고 놀랐다. 생각보다 많아서, 제목을 '요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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