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운다 ㅣ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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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제법 들고 나서야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늦게나마 그녀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정신없이 작품들을 찾아 읽어 가다 '메리 웨스트매콧' 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봄에 나는 없었다'와 '딸은 딸이다'를 인상 깊게 읽었다 -두 권은 특별판으로 만났더랬다- 해서 나머지 책들도 새롭게 옷을 입고 나오길 바랐다. 거짓말처럼 컬렉션이 만들어졌다. 책방투어 할때마다 이 시리즈를 구입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지난 4월 묵호에 있는 책방에서 <<사랑을 배운다>>를 가져왔다.


마음 같아서는 출간 순서( 인생의 양식,두 번째 봄,봄에 나는 없었다,장미와 주목,딸은 딸이다,사랑을 배운다) 대로 읽어 보고 싶었지만,스토리가 이어지는 건 아닐테니까 구입하게 되는 순서대로 읽어볼 생각이다. 솔직히 <사랑을 배운다>를 예전에 읽었지만,처음 읽는 기분이었다. 앞서 읽었던 줄거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재미라면, '사랑을 배운다'...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다음으로 읽어 보고 싶은 책이 '인생의 양식'이라는 생각을 했는데,마지막에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지난번에 읽어 보겠다 생각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아직도 읽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당신은 셜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다른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을 똑같이 볼까요? 당신은 셜리에게서 언제나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를 본 겁니다.(...) 하지만 전 그녀를 완전히 다르게 봤습니다.물론 당신이 틀린 것처럼 저도 틀릴 수 있습니다(....)"/331쪽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넘치는 사랑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면서, 사랑이란 이름에 감춰진 많은 것들을 보게 된 것 같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구속하고,고생하는 걸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들.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상대방에게까지 강요가 된다.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상대방이 정말 행복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읽을 때는 사랑에 목말랐던 로라가, 동생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더랬다. 다시 읽으면서 로라가 동생에게 했던 방식과, 와일딩이 아내에게 했던 방식은 닮아 있다는 점이 보였다. 내가 아낌없이 사랑을 준다면 상대는 행복할 거란 믿음. 우리는 그 환상부터 깨야 하지 않을까. 셜리는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로라의 사랑이, 와일딩의 사랑이,깊은 교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일방적인 사랑이 상대에게는 짐이 될 수 있다는 걸 셜리가 보여준 샘이다) 희생이 바탕이 된 사랑은,상대방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짐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로라는 알지 못했던 건 모양이다.소설의 마지막즈음 로라가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는(?)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가 뜬금없어 보이긴 했지만.


일방적인 사랑은 양날의 검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온전히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배워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내 기준에서 쏟아붓는 사랑이 아니라,상대가 숨 쉴 공간을 열어주는 균형 잡힌 사랑말이다.


"인생은 인간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맹신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죠. 가치관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거니까"/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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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하지감자'다...^^

언제부터 '하지감자'라는 말을 좋아했는지 알 수 없지만..이번에 하지감자를 삶아 보면서 좋아하는 이유는 확실히 알았다. 무심하게 삶아지는 감자에서 달큰한 향기가 났다. 놀랍고 신기해서.. 삶는 동안에도, 열기를 식히는 순간에도 좋았다. 포슬포슬 내려 앉은 하지감자~










(중략) 하지감자는 아무때나 캐먹어도 갈 데 없는 하지감자라며 하지 되기 전부터 동갑내기랑 함께 도둑감자 캐먹던 비탈밭,이제는 하지감자 대신 망초꽃 뒤덮인 묵정밭머리에 한세상 함부로 거덜내고 돌아온 저녁놀이 수십 년 묵은 하룻볕을 한꺼번에 헤아린다/ '하지'



어릴적 부터 감자를 좋아했지만.. 시인의 '하지'를 읽고 난 후 하지감자를 더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정작 하지감자에 대해 특별한 추억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사시사철 먹을수 있는 감자가 아닌가..이유없이 좋아..특별히 감자만의 고유맛이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것 같다. 그런데 하지감자..는 '하지'라는 수식어가 붙을 이유가 충분했다. 장마 전 땅에서 캐낸 하지감자가 유독 포슬포슬한 이유는..달큰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싶어서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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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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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그곳에 오래 남아>가 남긴 여운을 좇다 <가라앉는 프랜시스>까지 읽게 되었다. '프랜시스' 의 뜻을 알았다면 ~가라앉는 의미를 눈치챌 수 있었을까? 그 덕분에 골라 읽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 되었다.


도쿄 생활에 염증을 느낀 게이코는 홋카이도로 이주를 결정한다. 조금은 즉흥적인 선택 같지만 그곳에서 우편배달부라는 직업을 시작한다. 내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일까 나는 그녀의 선택이 조금은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얼마전 방송에서 본 섬마을 우편배달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편물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편 내용을 읽어주기도 하고,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펴주는 역활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여기 '음'에 대한 심오한 안목을 가진 남자 '가즈히코'가 등장한다.처음 그려지는 그의 세계는 멋있어 보였다. 느닷없는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말이 아닌 것으로 서로를 느끼고 두 사람이 아니면 생기지 않을 감각을 만들어내고 귀를 기울이듯이 그것을 맛보고 흔들린다(...)"/88쪽



그런데.어느 순간' 소리'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사랑이 느닷없다고 생각한 건 내가 느낄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그들의 사랑을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 같아..오감이 아닌, 이성이 작동해버린 탓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오감'에 집중하며 읽어야 하는 소설이었던 거다.해서 가장 크게 귀로 들려온 소리는 프랜시스..가 가라앉을 때 였던 것 같다. 태풍이 오고 나서 서서히 무너지게 되는.. 프랜시스가 무너지는 그 순간도 실은 요란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태풍이,강물 소리가,프랜시스가 무너지는 소리를 상상하게 만들었던 거다. 말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문..도 소리는 없는데 누구에게나 전달이 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미노리카와의 말을 듣는 순간 더 분명해졌다.


"절대로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지 말아요.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아무리 누가 흔들어대도 속으면 안 돼요. 정신 차리고 진짜 소리를 들으세요"/156~157쪽



겉으로 그려진 게이코의 삶은 사랑에도 실패하고 도쿄생활에 염증을 느껴서였을지 모르겠으나, 소설을 읽은 동안, 온갖 소음 속에 살아가게 되면서 점점 잃어가는 오감을 찾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홋카이도 곰은 무섭지만, 홋카이도의 별을 사랑하지 않을수 없어 게이코는 그곳에 계속 머물기로 한다.물론 그녀옆에 사랑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오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바로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뻔해 보이는 결말이라 아쉽지 않았다. 밤하늘 쏟아지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그곳에 계속 머물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서다. 홋카이도 곰을 하늘의 별이 이긴 셈이다.


"별에는 음이 있다.게이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들리지 않는 음이 하나하나의 별에서 이쪽을 향해 내려온다.그 음은 빛이었다. 광원조차 되지 않는 덧없는 빛의 음.

이 빛이 있는 동안은 절대로 절망할 필요가 없아. 빛에서 오는 음을 듣는 귀를 잃지만 않으면 가즈히코와 나는 살아갈 수 있어. 게이코는 그렇게 믿었다"/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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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지지 않고 ㅣ 인생그림책 49
미야자와 겐지 지음, 고정순 그림, 권정생 옮김 / 길벗어린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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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책방도 내게 도서관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마치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듯 그림책 표지를 감상하는 것 같다. 호기심 가는 제목은 메모해 온다.그리고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희망도서로 신청할때고 있고^^) 이번에는 연천 책방 냥이가 마치 안내한 듯한 기분이 들어 한 권 골랐다.


비에 지지 않고..는

정말 정말 그림책이다. 글보다 그림이 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오로지 독자의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그러나 고맙(?)게도 이 책은, 미야자와 겐시의 시 한편을 상상하며 그려낸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감정을 한 번 더 통과한 이후에 내가 마주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런 설명없이 그림을 슬라이드처럼 넘겨 본다.

그런데 제목 때문일수도 있겠지만,뭔가 소년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무심한 듯 시가 그림속으로 스며들어왔다. 뭔가 결연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림의 마지막은 자유로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였다. 시인이 노래한 마음이 우리나라를 상상한 건 아니었을 텐데..다른 어떤 것보다 결연한 마음으로 지켜내야 할 것이 '평화'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다. 다행(?)이라면 여전히 동그런 철망이 휘감긴 곳도 있지만, 점점 그 동그란 철책이 사라지고 있는 풍경을 최근 보게 되면서 놀랐다. 서서히 그렇게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려낸 초록으로 가득한 그림책일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일본작가의 시에 우리나라 작가님의 그림이 더해진 그림책이었다. 당연히 예전부터 읽으려고 구입만 해 놓고 여전히 읽지 않은 <은하철도의 밤> 작가님이란 사실도 몰랐다. 한때 소와다리..책을 열심히 구입하던 그 시절...세로줄로 편집된 책을 소장했다는 뿌듯함(만)... 7월에는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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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랑데부 미술관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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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볼란텐>>을 흥미롭게 읽었다. 해서 작가의 다른 이야기를 찾아 읽게 되었다. '부암동..미술관'은 많이 아쉬웠다.


한 사람의 사연을 위해 하나의 작품만 전시한다는 설정은 매력적이라 생각했다.그러나 딱 거기까지 였다. 풀어내는 서사 방식이 너무 정형화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힐링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 취향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독자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강박이 느껴지는 것처럼 읽혀졌다. 분명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을 텐데,자연스럽게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답이 정해져 있는 곳으로 향하는 느낌이..아쉬웠다. 기발한 소재였던 만큼, 조금더 다양한 색깔로 그렸냈다면 좋지 않았을까...그런데 조금 건강한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우리는 모두 나만 힘든것처럼 살아간다.어딘가 하소연 할 때도 마땅히 없는 것 같다.그런데 내 마음이 뭔가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 위로가 되고,다른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어낼..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위로가 있을까 싶다.그러니까

저마다의 사연과,사연이 그림으로 발현되는 순간까지는 정말 좋았다는 말이다. 어떻게 그려낼지 상상하는 재미...



뻔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케이크가  먹고 싶어 찾아간 카페에서 '위로의 맛'에 관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 순간의 기쁨은 소설이 내게 준 선물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투정해 보았지만 우리 삶도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가 싶다. 소설 속에서라도 누군가의 고민이 해결되었으니 그것으로 잠깐이나마 위로를 받고 또 누군가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기를 작가님은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법에 주문을 걸듯이 말이다.



소설 속 이야기보다 '작가의 말'을 통해,<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이 담고 싶은 진심을 깊이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티안...'을 읽다가 부암동..미술관을 만나게 된 순간처럼. 매번 멋진 순간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조차 멋지게 바꿀 수 있는 그 에너지의 기운을 믿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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