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ㅣ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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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을 흥미롭게 읽지 못했다. 해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무작정 한 권을 골랐다. 빨간 표지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앞뒤가 맞는다고 꼭 정답이란 법은 없지"/ 290쪽



형의 죽음을 직접 추리해 가는 다케시의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그가 우문현답처럼 내놓은 말은, 마치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느낀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 것 같아 놀랐다.중학교 교사이자 마을에서 존경 받던 마요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경찰이 기동력 있게 추리해 나가야 겠으나.갑자기 나타난 동생이 완벽에 가까운 추리를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완벽함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연 설명이 많은 것처럼 느껴질때마다 피로감이 느껴졌다.그럼에도 범인이 누군인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고  싶어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언급된 단어가,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속단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던 걸까.라고 생각한 순간, 표절이란 문제가 언급되서 놀랐다. 조금은 뜬금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로 세상에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 수없이 목격하고 있으니,뜬금없는 상황이 아닐수도 있겠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살해이유도,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너무 간단하게 정리된 것도 아쉬웠다.  자신의 성공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승을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심리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다보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에 섭섭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왜 죽였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보다, 이 소설의 에필로그를 더 인상적으로 읽은 기분이다. 겐타의 민낯은 미처 거기까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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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파버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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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 이 한 문장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입(만) 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더랬다. 호기심과는 별개로 잘 읽혀지지 않았던 것 같은 기억..(오류일수도 있겠으나...) 무튼 8월 연극 오이디푸스왕을 예매해 두고 보니,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기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운명도 숙명도 믿지 않는 발터 파버는 모든 것을 수학과 확률 그리고 과학적으로만 상대를 바라본다.그런데 그가 부정(?)하고 픈 '운명' 과 '숙명'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온다. 비행기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남자의 동생이었다. 그를 통해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를 찾아 가지만, 그는 이미 목숨을 끊은 상태다.20년 전 사랑했던 여인의 딸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을 맞는다) 당연히 한나의 딸 자베트가 자신의 딸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한나의 딸이란 사실도, 자신이 그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다시 그는 왜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모든걸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남자. 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한 건 역설적으로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계획한대로 흘러가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소설은 파버의 처절한 파멸을 통해 인간의 원죄를 묻는다.이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비겁한 무지는 결국 소중한 자식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오이디푸스 왕' 보다 더 '숙명'이란 올가미가 크게 느껴져서..그런데 '원죄'라는 단어를 곱씹어 볼수록 단순히 신화를 새롭게 오마주한 것이 아니라,세상을 방정식으로만 정리하려는 남자에게 그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숙명이나, 운명이나 믿지 않는 다는 말 속에는, 그 속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가면 속에 숨어 살고 싶었던 열망이 결국 그를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이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파버는 세상을 방정식으로 통제하려다 비극을 맞았다.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건,무언가를 체념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오만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어느 때 보다 더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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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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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관심을 두었던 소설은 아니었다.'스콧 터로' 의 소설을 마침 재미나게 읽고 난 후라, 반가운 마음에 골랐다. 당연히 소설집인 줄 알았다. 방대한 분량이라, 스콧 터로의 이야기부터 골라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맙소사!! 여러 명의 작가들이 마치 하나의 목소리를 내듯 써내려간 이야기였다. 편집자의 능력도 있었을게다.그러나,한명의 작가가 썼다고 해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도저히 서로 다른 작가들이 써내려간 소설이란 느낌을 받을수 없었다. 간혹 흥미가 덜한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했지만,테피스트리가 떠올랐다.서로 다른 색깔이 모여,하나의 멋진 작품이 완성된 모습.


코로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소설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독자를 불러왔다. 소설의 제목이 '14일' 인 이유가 바로 생각났다.거리두기 라는 사회적 제약이 단지 서로를 위한 최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낡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답답한 감금에서 숨을 쉬고자 옥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각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순간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그 시절 나도 읽어보려 시도했고,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나서..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가짜 같은 가짜..가짜 같은 진짜..이야기가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인종차별, 빈부격차, 젠더 갈등,이민자문제 등등..타인의 입을 통해 나의 슬픔을 보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받는다. 


옥상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나누며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바이러스가 우리를 단절 시켰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스콧 터로 소설 매력에 빠져 한 편 더 읽어 보려고 골랐다가,수많은 이웃의 목소리를 들었다.무엇보다 서로 다른 색깔의 작가들이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이를 표하고 싶어졌다. 코로나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조금은 작위적인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테지만,그 시절을 함께 겪어온 입장에서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 경청과 공감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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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U. R. - 로줌 유니버설 로봇 ㅣ 이음스코프
카렐 차페크 지음, 유선비 옮김 / 이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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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를 애정하지만,딱 한가지, 책 읽으면서 여유롭게 커피 마실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점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찾았다. 도서관.숲가까이 자리한 도서관이라 좋았다.크지 않은 도서관이라, 한 눈에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좋았지만,서가를 둘러보다,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 R.U.R >이 보여서 반가웠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희곡(연극대본)이다. 읽는 내내 100년 전 체코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래를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예견할 수 있었을까 경외감이 들었다.(미래형 소설도 아니었을텐데..)

엄밀히 말하면 작픔 속 로봇은 지금 우리가 쓰느 기계공학적 '로봇' 개념과는 결이 다르다. 체코어로 강제노동을 뜻하는 '로보타'에서 유래했듯,작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기계처럼 소모되는 자본주의 부속품으로 인간을 상상했던 건 아니였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날 로봇과 AI가 인간의 자리를 점점 대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로봇 기술이 가져올 장및빛 그림만 상상한다.그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가난이 없어지는 겁니다.그래요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지겠죠.하지만 앞으로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겁니다.모든 일을 살아 있는 기계들이 할 테니까요.사람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살게 되겠죠?"/57쪽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가난이 사라질까? 작품 속 로봇은 인간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지금 현실에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대신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미 소리 없느 '로봇 혁명'으로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덫에 걸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로봇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로봇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인간이 자리는 더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로봇이 점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된다면...책 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저주받은 낙원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니까.인간은 로봇의 편리함을 지혜롭게 다스려야 한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로봇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빼앗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같은 존재로..나아가게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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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1
스콧 터로 지음, 신예경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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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에서 숨막히는 법정 공방끝에 러스티사비치는 '무죄'판결을 받았다.제목에서 암시 된 것처럼 러스티검사는 피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났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러스티는 예순의 판사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제목이 심상치 않다<이노센트>


"드문드문 그런 경우도 있다고 토미가 대답했다.재판이란 유죄냐 무죄냐 하는 몇 가지 안 되는 엄격한 범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사를 묶어 두려 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기보다는 작은 정의라도 수행하려는 겁니다>> /535쪽


나는 그동안 누군가 잘못을 하면 그에게 죄를 묻는 것에만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유죄로 판결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정의로운가에 대해 묻는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러니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명백한 살인으로 의심되지만 무죄 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 걸 감안하면, 정의가 실현된 건 아니니까 말이다.반대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정황상 증거가 만들어지면 유죄가 될 수 있다. <무죄추정>를 끝내면서 개운하지 않았던 건 러스티의 침묵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노센트>에서 만난 바바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만약 그때 러스티가 정의로웠다면, 적어도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그랬다면 바바라의 삶은 자살로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토미가 생각하는 정의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하게 가려내는 것에 있었다. 바바라가 생각한 정의는, 내 삶을 파괴한 이를 스스로 응징하는 것에 있다고 본 건 아니였을까.. 피의자에게 유죄를 내린 것이 정의라 믿는 짐의 사고방식은 그래서 무서웠다.(우리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인것 같아서..) 러스티는 법으로 정의까지 심판할 수 없다는 회의론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라라 사건 이후 그렇게 된 것인지,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바라 사건에 침묵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죄추정>에서 러스티의 침묵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노센트>를 읽으면서 '유죄'에 대한 침묵보다 그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침묵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뉴스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기사를 볼때마다 화가 난 건, 단순히 무죄를 내리거나, 형량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내릴수 있는 곳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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