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파버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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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 이 한 문장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입(만) 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더랬다. 호기심과는 별개로 잘 읽혀지지 않았던 것 같은 기억..(오류일수도 있겠으나...) 무튼 8월 연극 오이디푸스왕을 예매해 두고 보니,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기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운명도 숙명도 믿지 않는 발터 파버는 모든 것을 수학과 확률 그리고 과학적으로만 상대를 바라본다.그런데 그가 부정(?)하고 픈 '운명' 과 '숙명'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온다. 비행기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남자의 동생이었다. 그를 통해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를 찾아 가지만, 그는 이미 목숨을 끊은 상태다.20년 전 사랑했던 여인의 딸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을 맞는다) 당연히 한나의 딸 자베트가 자신의 딸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한나의 딸이란 사실도, 자신이 그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다시 그는 왜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모든걸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남자. 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한 건 역설적으로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계획한대로 흘러가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소설은 파버의 처절한 파멸을 통해 인간의 원죄를 묻는다.이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비겁한 무지는 결국 소중한 자식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오이디푸스 왕' 보다 더 '숙명'이란 올가미가 크게 느껴져서..그런데 '원죄'라는 단어를 곱씹어 볼수록 단순히 신화를 새롭게 오마주한 것이 아니라,세상을 방정식으로만 정리하려는 남자에게 그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숙명이나, 운명이나 믿지 않는 다는 말 속에는, 그 속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가면 속에 숨어 살고 싶었던 열망이 결국 그를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이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파버는 세상을 방정식으로 통제하려다 비극을 맞았다.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건,무언가를 체념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오만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어느 때 보다 더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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