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 있는 동료들의 행동을 좌우한 똑같은 수법으로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에 있는 성전 기사단원과 구호 기사단원들도 존 왕자의 파벌에 가입해 있었으므로 리처드 왕의 잉글랜드 귀환이나 왕의 합법적 계승자인 아서의 왕위 계승을 바랄 이유가 거의 없었다.그와 정반대 이유로 존 왕자는 잉글랜드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영향력 있는 색슨 가문을 증오하고 경멸하여 그들을 욕하거나 치욕을 안겨 줄 기회를 놓히는 법이 없었다(...)"/115쪽









<아이반호>에서 언급한 '아서 왕' 과 마크트웨인 제목 속 인물이 동물인물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예전 독후기를 찾아 보았으나..방대한 이야기에 감히 독후기는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그런데 종교에 관한 인상(?)적인 내용을 메모해 두었다는 사실(다시 읽어낼 자신이 없을 것 같았는데..다시 읽고 싶어졌다)


"누가 교회에 이래라 저래라 법을 강요할 수 있겠소?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을 정해주는 곳인데.그래서 교회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 한테도 해를 입힐  수가 있어요. "










존 왕..이 언급되는 순간.. 지난해 방송으로 만났던 벌거벗은 세계사편이 떠올랐다. 로빈후드와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델이 되었던 왕이,존왕 이었다는 사실... <아이반호>를 읽고 나면 <로빈후드의 모험>을 이어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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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가던 카페를 오랜만에 찾았다.그 사이 카페는 사라졌고, 아이스크림가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문을 열게 되었는지 보다,사라진 카페에 대한 질문에 사장님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냥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과일아이스크림이라..주문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이유 없이 별점 테러를 가하는 이들이었다. 차라리 맛이 없다거나 위생이 불만이라거나 배달이 늦었다거나 하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냥 씹던 껌 뱉듯 별 하나를 퉤 뱉어놓고 가는 것이다.별 하나는 치욕의 낙인이었다.스스로 지울 수도 벗을 수도 없는(...)"/28쪽


아이스크림 사진을 찍고..사장님이 좀 불친(?)절 하다는 별점을 남길까 하다가..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 하게 된 생각이란 생각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아이스크림은 맛있엇다^^) 소설 '별개의 문제'에서 저런 문장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사실 책을 읽고, 별점을 남길 때마다 불편할 때가 있다. 최상과 최하만 구분되는 듯한 별점이 그렇고...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 같은 별점을 찾아내는 과정은 피곤하다. 별점에 일희일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 조차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런데 별점 보다 더 무서웠던 건, 진심으로 무언가를 대할때,결과가 언제나 해피앤딩이 아닐수도 있다는 섬뜩함..이었다. 병주가 피자에 대한 진심을 드러낼때 그녀는 두려워했다. 


"진심이 된다는 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니까.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딱 그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진심이니까.그건 스스로를 매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자 밤잠을 설피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30쪽



단순히 '별점'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일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진심을 다하면 그걸로 된거 아닌가..라고 보통의 사람들은 말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는 진심이 진심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잔인한 고통으로 몰아갈..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열린 결말로 맺음을 해서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지만.그래서 더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작가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더더욱 개운하지 않았던 마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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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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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나니,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공교롭게도 처음 읽었을 때도 2월이었다는 사실이 반갑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는, 읽을 때마다 달리 보이는 새로움인데, <폭풍의 언덕>은 처음 보다 덜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새로운(?)것이 보이긴 했다. 복수로 이글거렸던 히스클리프가 보였다면, 그가 왜 그렇게 복수에 이글거렸을까에 대한 이유가 보였다. 단지 사랑에 대한 결핍이 부족해서만이 아니었던 거다.


"나는 먼 저 강기슭에 이른 다음 쉬겠어.(..)그리고 나더러 잘못을 뉘우치라는데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뉘우칠 것도 없어. 나는 너무 행복하지만 충분히 행복하려면 아직 멀었지. 내 영혼의 지복은 내 육신을 죽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르거든"/561쪽



그리고 나는...

호퍼의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히스클리프 씨가 사는 집의 이름은 '워더링 하이츠' 다. '워더링'은 이 지역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는 방언으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위치상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이 집이 겪는 대기의 소란을 나타낸다.(...)"/11쪽


'폭풍의 언덕'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출판사는 '워더링 하이츠'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이 궁금했는데, 소설을 읽어 가던 어느 순간 '폭풍의 언덕' 이란 제목 보다 '워더링 하이츠'란 제목이 더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히스클리프에 관한 모든 걸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와 달리 지루했던 이유는, 이야기의 전반부가..결국. 히스클리프가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하녀(딘 부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라서 그랬을까, 인물들에 대한 심리를 오로지 하녀의 목소리로 듣다 보니 지루했다. 그들의 마음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기분... 그렇게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 히스클리프는,오늘날 제왕적으로 군림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니, 딘 부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오만하고, 포악하고,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도..결코 '행복감'을 오롯이 느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남자. 처음 읽을 때는 분명 사랑이 고팠던 히스클리프가 보인 까닭에, 그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살짝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남자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보다 살짝 지루하게 읽었지만, 그래서.. 또 영화가 궁금해졌다. 히스클리프를 어떤 시선으로 그려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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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너무 닮아 있어서..

순간 한 작가의 책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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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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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읽고 나서 후회했다. 너무 빨리 읽어 버린 것 같아서.좀 천천히 읽을 걸.. 그런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가진 '힘'에 그렇게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내가 말하는 건 밥,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정말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거예요

(...)

내 요점은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아주 복잡하다는거예요. 밥, 우리는 모두 아주 복잡하고 우리가 누군가와 한 순간이라도-어쩌면 평생- 같이한다는 건 우리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죠. 왜냐하면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는-그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요(...)"/306쪽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한 거 아닐까? 소설을 통해 알게 되는 간접 경험들.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알게 해 주니까 말이다.'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타인의 삶에 대해 훨씬 조금 밖에 알지 못할 게다.누군가를 이해하는 시선도 그럴테고. 이것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다. 내가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수 도 있고,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도 이야기는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냥 내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고..그 순간 타인의 마음은 들어오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걸 보면. 그냥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놓친다.이야기 덕분에 힘을 얻는 사람들, 버티는 사람들,그러다 스스로 무너져 내린 사람들..그 모두에 대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느냐고 따져 묻는 다는 것도 오만일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지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줄 수만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지 못했던 인물들과 마주할 때는 힘들었지만, <이야기를 들려줘요>에서의 요점(따라해보기^^)은 고통 속에 함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핵심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기록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란 말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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