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 나니,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공교롭게도 처음 읽었을 때도 2월이었다는 사실이 반갑다.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는, 읽을 때마다 달리 보이는 새로움인데, <폭풍의 언덕>은 처음 보다 덜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나 새로운(?)것이 보이긴 했다. 복수로 이글거렸던 히스클리프가 보였다면, 그가 왜 그렇게 복수에 이글거렸을까에 대한 이유가 보였다. 단지 사랑에 대한 결핍이 부족해서만이 아니었던 거다.


"나는 먼 저 강기슭에 이른 다음 쉬겠어.(..)그리고 나더러 잘못을 뉘우치라는데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뉘우칠 것도 없어. 나는 너무 행복하지만 충분히 행복하려면 아직 멀었지. 내 영혼의 지복은 내 육신을 죽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르거든"/561쪽



그리고 나는...

호퍼의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히스클리프 씨가 사는 집의 이름은 '워더링 하이츠' 다. '워더링'은 이 지역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는 방언으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위치상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이 집이 겪는 대기의 소란을 나타낸다.(...)"/11쪽


'폭풍의 언덕'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출판사는 '워더링 하이츠'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이 궁금했는데, 소설을 읽어 가던 어느 순간 '폭풍의 언덕' 이란 제목 보다 '워더링 하이츠'란 제목이 더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히스클리프에 관한 모든 걸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와 달리 지루했던 이유는, 이야기의 전반부가..결국. 히스클리프가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하녀(딘 부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라서 그랬을까, 인물들에 대한 심리를 오로지 하녀의 목소리로 듣다 보니 지루했다. 그들의 마음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기분... 그렇게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 히스클리프는,오늘날 제왕적으로 군림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니, 딘 부인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오만하고, 포악하고,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도..결코 '행복감'을 오롯이 느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남자. 처음 읽을 때는 분명 사랑이 고팠던 히스클리프가 보인 까닭에, 그가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살짝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남자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보다 살짝 지루하게 읽었지만, 그래서.. 또 영화가 궁금해졌다. 히스클리프를 어떤 시선으로 그려냈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