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필책방에서 <경애의 마음>과 <그 많던 싱아...>를 고민하다 '경애의 마음'을 챙겨 온 것이 못내 미안(?)해서 아니 그 많던 싱아...도 궁금했던 까닭에 냉큼 도서관 찬스를 이용했다. 소설을 온전하게 읽었다면 '싱아'를 분명 기억할 테지만, 읽지 않은 까닭에 나는 자꾸만 '상아'라고 말하곤 했던 것 같다. '싱아'라는 말은 왠지 철자법이 틀린 듯한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89쪽
내 기억이 맞다면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싱아가 언급되는 장면은 거의 저 장면이 유일하다. 심지어 누가 다 먹었는가..라는 말도 없다. 해서, 도입부에 등장했다면,프루스트의 '마들렌' 효과와 닮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싱아가...유년시절 부터의 기억을 따라가게 만든... 그런데 살짝 비슷한 느낌도 있다. 조금은 독특한 소설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 소설의 정체성을 '허구'라고 규정한다면,<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하게 소설로 읽혀진다. 작가님의 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게 첫 번째 이유였고, 분명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교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 할아버지와 애틋한 추억은 없지만, 애증하고 싶은 추억이 있어 웃음이 났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였나 싶다. 엄마에 대한 수만가지 모습들.... 해서 소설은 추억에 관한 이야기처럼 읽혀지기도 하고, 한 시대를 관통한 기록물처럼 읽혀지기도 했으나, '엄마'에 관한 기록으로 읽혀지기도 했다. 식민시대와 해방 전후 그리고 6.25전쟁까지 경험한 시대의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면 책 몇 권은 쓸 수 있을 거란 말은 허언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한 듯 써내려간(아니 기억을 찾아낸) 이야기 속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장되 있지 않아 더 절절히 와 닿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