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크 필드>보르헤스가 극찬할 만한 작품이였다.이런 작품을 읽을면서 어떻게 단편을 사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웨이크필드부인의 시선으로 읽는다면 기막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겠지만...이런 상상은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그녀가 20년만에 다시 돌아온 남편을 과연 받아들일수 있었을까? 라는 상상은 해 보고 싶지 않았다.그보다 무모해 보일수 있는 행동을 왜 했느냐고 웨이크필드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따라왔다.유쾌한 소설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수시로 꺼내 읽어 보고 싶은 소설이였다. '바벨시리즈'를 애정해서 읽게 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2018년에 읽었으니까..오래 전이라 언제나 그렇듯 기억은 가뭇하고 단편의 맛..반전이 숨어 있을 거라 줄거리도 정확하게 기록해 놓지 않았으니... 짧은 단편이니까, 다시 읽어봐야 겠다.



일단 보르헤스가 언급되서 반가웠다."보르헤스는 웨이크필드가 카프카 소설의 비극적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심오할 만큼 보잘것없는 됨됨이를 가졌으면서 그와 대조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천벌을 받고 그 됨됨이 때문에 더 하릴없이 복수의 여신들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특출하다고 했다.철석같은 인생행로에 살짝이라도 균열을 내려 했던 웨이크필들의 시도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332쪽 지금은, 망겔 선생의 설명이 뭔가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웨이크필드라는 남자의 그 행동이 특별(?)해 보이는 것 같지만..어떻게 보면 특별하지 않을수도 있는..우리 마음 속에 저마다 광기가 숨어 있어서는 아닐까...그러나 그녀의 시선으로 읽게 된다면... 이번에 그녀의 시선으로 읽어봐야 겠다.아주 짧은 단편이니까... " 살아본 적 없는 삶,가본 적 없는 길이 유혹적인 까닭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이런저런 선택들을 돌이킬 수 있다면 무언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333쪽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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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나의 미카엘'에서 다시 '해저 2만리'가 언급 되는 것을 보면서,호기심이 발동해서 읽었다는 기록이 반가웠다.(어떻게 읽게 되었는지 이유를 아는 것도 내게는 흥미로운 지점이라^^) 그리고 정신(?)없이 1권을 읽었다는 기록 (그러 2013년에 읽었다는 기록이..내가 세세히 이 소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이유다^^) 너무도 낯선 세계의 이야기 같아서,혹은 알아들을수 없는 배들의 이름과 기압,밀도와 같은 과학적 이론의 등장으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흥미로움 덕분에 정신을 쏙 빼놓고 읽고 말았다. 그런데 '네모선장'을 언급해 주고 있어서 반가웠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가장 눈에 크게 들어 온 것은,괴물이라 생각했던 고래가,실은 네모선장이 이끄는 네모 선장의 '노틸러스 호'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기란 힘들었다는 책망. 그럼에도 바다 속을 유영하는 모습을 기분좋게 상상했다는 일기가 반갑다.^^



"네모는 투사이자 이단자요,이상주의자다.마지막 단어는 오늘날에는 심하게 폄하되지만 19세기 당시에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또한 네모는 독서가이기도 하다. 네모는 자시 배에 억류된 손님에게 기이한 해양 동물들을 교묘하게 조리한, 원재료를 알아볼 수 없는 신기한 요리들로 대접한 뒤, 자신의 해저 처소로 그를 안내한다"/233쪽


"(....) 아로낙스 교수는 잠들려 애쓰지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미 읽은 책을 처음부터 훑어나가듯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회상한다.최근 겪은 일들을 돌이켜보는 그의 상상 속에서 네모 선장은 어느덧 동류 인간이 아닌 "심해의 동물, 바다의 넋"으로 변신한다.이때 베른의 소설 속 인물인 아로낙스 교수는 그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 독다들의 눈앞에서 자기 자신이 겪은 모험의 독자가 된다"/238쪽


선장이 인간들에게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몰라도 이런 식으로 징벌할 권리는 없었다. 네모 선장은 자신의 보복 행위에 나를 공범자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지만 나를 그 행위의 목격자로 만들었다.그것만으로도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371 <해저 2만리>2  밑줄 그었던 부분을 찾아 보면서,선장의 복수심에 전적으로 동의할..수 없었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니까 네모는.... 아로낙스와 같은 인간은 아니었던 것... "네모는 이제 아로낙스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무언가 더 어마어마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공포스럽고 베른의 상상에 얽매이지 않는 우주적 서재에 속하는 무언가가 된다"/ 230쪽 라고 이해를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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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2013년에 읽은 <모비딕>에는 매플목사의 언급도,퀴퀘그에 관한 언급도,요나에 관한 언급도 없었다...이슈메일이 바로 고래잡이 배를 탔을거란 예상과 달리,그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퀴퀘그를 만나게 되고..그와 고래잡이 배를 함께 타는 내용이 소설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래잡이배를 타고 나서 부터의 이야기가 워낙 흥미진진했던 탓일수도 있겠지만,해서 다시 읽는 것이지만,실은 처음 읽는 것과 같다. <끝내주는 괴물들> 제목은 소설 제목이 아닌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읽어 본 책들 중심으로 찾아 읽고 있는데..퀴퀘그..는 도저히 앗..그런데 <모비딕>이었다. 2020년 두 번째 읽을 때 언급을 해 줘서 반가웠다. 물론 퀴퀘그에 관한 언급은 여기서 멈춘다. ^^


<끝내주는 괴물들> 의 매력은, 조연처럼 보인 주연의 존재를 건드려 주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읽기에서 퀴궤그의 존재를 알았지만..또 거기서 멈춘 나에게 이스마엘과 그의 존재과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었다. 이스마엘 모험기인줄 알았더니..퀴퀘그란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수도..^^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불안정한 인생을 살며 자살하는 심정으로 항해에 나서는 남자와 글을 못 읽지만 스스로와 함께하는 삶에 만족하며 철학적으로 살거나 노력하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철학자다운 남자, 이 둘은 "수줍고 다정한 한 쌍" 을 이룬다"/161쪽


"이스마엘은 이렇게 말한다.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 천상의 어떤 것들에 대한 직감,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신자도 불신자도 아닌, 양쪽 모두를 대등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퀴퀘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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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읽었는데 리뷰가 없다.그러니 처음(2018년) 읽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설속 주인공 홀든의 모습을 얼핏 보면 십대 청소년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반항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이중적인 어른들의 모습,재미없는 학교 생활 등등..그런 이유로 홀든은 가는 학교마다 퇴학을 당하게 된다.아니 그렇게 보일 뿐이다.사실 그는 외롭다.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도 분명 있다.그러나 누구도 그의 말을 진심으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그저 엉뚱한 아이,이상한 아이로 보일 뿐이다.홀든 자신도 순간순간 자신이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말이다.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홀든에게 그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였을까?  사랑했던 동생이 죽었고,우상과 같았던 형은 (홀든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을 하고 헐리우드로 가버렸다.(적어도 홀든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믿었던 앤톨리니선생마저 자신을 성적으로 희롱했다고 생각할 정도다.외로움과 불안으로 가득찬 소년이 갈 곳은,편안하게 쉴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있는 곳이 정신병원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충격적이라기 보다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여기까지다.



'홀든' 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앞서도 그랬지만 '피비'에 관한 이야기다. 피비라는 존재가 내 기억 속에는 없다. 2018년 일기를 봐도, 오로지 홀든..에 집중했을 뿐..피비의 시선으로 바라본 홀든의 모습이 궁금해졌다.홀든이 바라본 피비와 피비가 바라본 홀든에 관한 이야기가 그래서 흥미로웠다. 누구도 홀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아니면 여동생은 그 마음을 알았을 수도..있다고 생각했지만 읽을 당시 내게 존재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홀든에 따르면 "아이치고는 아주 감정적"이지만 당신도 그 애를 좋아하게 될 것" 이라고 한다. "피비 녀석한테 무슨 말이든 해봐라. 걔는 그게 무슨 뜻인지 척척 알아듣는다.아니면 어딘가로 데려가봐도 좋다.만약 영화관에 데랴가 후진 영화를 보여주면 걔는 그게 후진 영화라는 걸 알 거다(...)"/113쪽


"무엇보다 피비는 홀든의 존재론적 고뇌의 근본을 정확히 짚어낼 줄 안다.(..)그래서 홀든이 서부로 떠나겠다고 하자 피비는 자기도 따라가겠다며 선뜻 짐을 꾸린다. 혼든 자신은 미처 인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피비는 그의 앞길에 도사린 위험을 살피는 눈과 같은 역활을 한다."/ 114쪽


<호밀밭의 파수꾼>을 두 번이나 읽었으나, 여전히 홀든과 셀린저의 은둔에만 시선을 고정한 탓에..피비의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홀든 보다 더 비참했을 피비라니..망겔선생의 시선일 수..도 있겠으나.. 다시 읽어봐야 겠다. "(...)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잡아주고 싶다는 홀든의 몽상을 바로잡아주기까지 하지만, 정작 피비 자신은 <그대 눈에 연기가 스미네>의 선율에 맞추어 "푸른 코트를 입고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다"/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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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 고독 속 절규마저 빛나는 순간
이미경 지음 / 더블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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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절규'에서 벗어난 책을 마주한 것 같아 기뻤다. 물론 절규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궁금했던 그림에 고팠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와 화가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팔뼈가 있는 자화상>에서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보는 뭉크의 표정에서 밝지만은 않은 현실을 읽을 수 있다.실질적 가장이 되어야 하는 책임감은 무거웠고 여동생 라우라의 상태는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의 얼굴에서 삶의 활기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48쪽 분명 제목을 봤을 텐데..나는 그냥저냥 자화상..인 줄 알고 그냥 넘겼더랬다. 눈빛이 강렬해서..라고 핑계를... 그런데 저런 결연한 의지가 있었을 줄이야...



"카렌 이모는 뭉크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뭉크는 어렸을 때 도화지 살 돈이 없어 아버지의 병원에서 쓰는 처방전 뒷면에 그림을 그리며 놀곤 했다.그녀는 일곱 살인 뭉크가 바닥에 누워 예전에 보았던 그림을 기억만으로 그려내는 것을 보고 그의 재능을 격려해 주었다"/58쪽  뭉크 그림일거라 눈치채지 못했다. 뭉크가 그렸다고 해도 카렌 이모에 대해 잘 몰랐다면 평범해 보이는 초상화라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카렌 이모가 있어서..그럼에도 불구하고 뭉크가 견뎌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보이는 것 그대로가 아니라, 보인 것만 그리겠다는 뭉크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카펜 이모의 마음이 그림에서 전해지는 것 같아..기분이 이상해졌다. 뭉크의 그림 가운데 유일하게 밝은 그림이라 소개된 '다리 위의 소녀들' 보다 '카렌 이모'가 내게는 더 밝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애잔한 마음도 느껴졌지만...



'담배를 든 자화상'에 대해 알고는 있었는데,'다그니율의 초상화'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처음 알게 되었다는 사실 보다, 두 그림이 한쌍을 이루도록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크다.

"<다그니 율의 초상>과 <담배를 든 자화상>이 하나의 쌍을 이루도록 그렸다. 이것은 뭉크가 다그니를 사랑했다는 결정적 증거다"/ 144쪽 문제는 다그니 아버지가 나란히 걸려 있는 걸 원하지 않아..전시장에선 내려졌고.. 화가의 침실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 오랫동안 뭉크의 절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았더랬다. 물론 개인적으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절규 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으니까... 화가의 개인적 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지만.. 그런 시련과 고통을 예술로 이겨낸 것 같아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고흐의 그림은 그래서 특별할 수 밖에 없었을 게다. 그림을 볼 때마다 모델이 누구일까.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을까. 조금 더 아름답게 그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등등..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수 있어 좋았다.^^


 












영화 개봉소식을 들었다. 책을 읽고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달려갔는데. 영화는 아주...아니 많이 실망스러웠다. 뭉크의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원없이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덕분에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을 읽을 기회가 찾아 왔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겠다. 그림마다 자신의 여인들이 등장해서..당연히 벰파이어 속 여인도 ..그에게 상실감을 준 여인 가운데 한 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그림은 딱이 누구라고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그림의 원제목은 '사랑과 고통' 이었는데 '벰파이어'로 바뀌게 되었고, 당시 남성 예술가들은 이 그림에서 섬뜩함을 느꼈다고 한다. 남성들이 훨씬 더 많은 고통을 여성들에게 준 것 같은데..모든건 자신들의 기준일 뿐이니까.. "뭉크는 여성을 열망하면서도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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