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지 않던 시절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을 주제이지만, 이제는 다르다. 목차에 <미들마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궁금했다.


"지적인 아내에게 기대려던 남자 죽어서도 통제하다"/32쪽


<미들마치>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정리 받은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무려 4권에 달하는 책에서 저 부분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고 볼 수 없지만, 강렬한 무엇이었던 건 분명하다.도로시아는 커소번의 바람대로(만) 행동하지 않았다.


<미들마치>를 2023년에 읽었으니, 기억나는 부분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훨씬 많을게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조지 엘리엇의 이름을 들었다. 촌스러운 제목과 표지가 호기심을 반감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조지 엘리엇이란 이름과 <미들마치>를 이제는 읽어야겠다고 진짜..생각한 순간 펼쳤을때 소설은 정말이지 재미났다. 해서 약속했더랬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미들마치>를 출간한다면 읽겠노라고. 민음사에서 <미들마치>가 나왔다. 다시 읽게 될때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다.^^










그 전에 <내 인생의 미들마치>를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평점이 후하지 않아 일단 보류해야겠다.프루스트의 잃어버린...을 무려 두 번 읽은 자부심이 있었는데, 책의 저자는 <미들마치>를 무려 네 번이나 읽었다고 했다. 나는 줄거리 조차 가뭇해지는 시점이 오면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지살롱 방문했다가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만났다. 소세키 선생이 떠오른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목차에서 '백제인'을 보는 순간 읽고 싶어졌다. 얼마전 부여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일게다.


"부여는 늘 고적하고 쓸쓸한 기운에 감싸여 있지.백제가 멸망한 땅이어서 그런 걸까? 그래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발소리를 죽이며 다니고 당최 말들이 없어. 그래도 난 내 고향 부여를 사랑해.무량사,정림사지,능산리 고분,고란사,낙화암, 백마강.... 이런 것들이 나를 잉태하여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줬으니 말이야"/260쪽




부소산문에서 시작해서  영일루를 지나 사자루로 가는길에 보인 백마강은 아득하다. 부소산성이란 사실을 모르고 걷는 다면,마냥 산책하기 좋은 길이라 생각하며 걷게 되지 않을까..낙화암을 지나 고란사에 도착했을 때의 고요함은 이제 없다. 오히려 낙화암과 마주하기 전까지가 고즈넉함을 느낄수 있었던 것 같다. 고란사에서는 오히려 유람선이 사람을 유혹한다.해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려던 서복사지는 만나지 못했다. 그 덕분에(?) 백마강에서 고란사를 바라 볼 수 있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본 고란사는 조용했고, 나무에 가려진 낙화암은 슬퍼보였다. 황포돛대에서 틀어준 노랫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부소산성을 내려와 주현미가수버전으로 1954년에 발표된 '백마강'을 들었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서 인걸 감안해도..가락보다 단어 하나하나가 와서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구곡간장,삼천궁녀,계백장군, 피 흘린 황산벌..등등 


아주 짧고,쓸쓸한 '백제인'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부여 여행에서 '백마강'이란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은 덕분인 것 같다. 백제인 유물 한점에 미쳐(?) 가족을 등한시 하게 된 인물을 누구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지는 못할게다. 그런데 온 마음으로 백제인이 되어 본다고 하면..그렇게 빙의가 되고 나면,남자는 미치지 않을수가 없지 않았을까.그러니까 멸망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백제인의 마음으로 본다면 한없이 슬픈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혜진의 입장에서 읽는다면 부여란 곳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백제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면 송곡리로 향하지 않았을까...그러나 그녀에게도 행복한 가정이 파탄나게 된 순간이..구곡간장의 마음은 아니였을까...



부소산성을 걷다보면 그날 백제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백마강'이란 노래가 그저 대중가요가 아닌, 백제인의 마음으로 빙의해서 만든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백제인'을 읽으면서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그날의 백제인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봄눈>을 끝내며,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다데시나였지만, 혼다의 앞날이 가장 궁금했더랬다. 독자의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달리는 말>의 시작은 혼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것도 시간이 훌쩍 지나서 그는 이미 어른남자가 되어 있었으며, 결혼도 했고, 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판사에 대한 그의 시선이 아무렇지 않게 읽히건 지금 우리나라가 몹시 시끄러운 탓일수도 있겠다.


"(...) 질주하는 자동차의 모래 먼지 속에 남겨진 젊은 이는 얼굴 생김새도 피부색도 전혀 다르지만 그 존재와 형태는 그야말로 기요아키 그 자체였다"/57쪽


혼다의 직업은 판사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고를 해야 할 사람. 그런데 환생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환생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심지어 기요아키가 환생한 건 아닐까 하는 인물의 아버지는 이누마다. 그러나 <달리는 말>에서 구체적으로 환생과 윤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닐게다. '봄눈'에서는 사랑에 정열을 받친 청춘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달리는 말'에서는 미친듯한 정열에 관한 이야기란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경주마..가 미친듯 달리게 된다면 결과는 승리 아니면 죽음이지 않을까..달리는 말을 누가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누마의 아들은 신의에 대한 충의에 미쳐 있다. 그에게 균형 잡힌 사고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신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우국의 길이며, 애국의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벌거벗은 세계가' 일본편을 시청한 덕분에 신에 대한 일본인들에 충의를 납득할 수 있어 읽어내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힘들었닫. 우익과. 계엄 그리고 12월3일까지.


"그분은 우익 떠돌이한테 추대받기를 아주 좋아해서 점점 불장난이 진지해지더군요" 하고 맞은편 자리의 한 남자 손님이 말했다"/213쪽


"(...) 계엄령이 내려질 정도로 큰일을 벌이려 한다면 군의 협력이 필수야(...)처음에 네가 말했듯이 국회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일 정도는 되어야 해(..)"/351쪽


"(...)12월 3일이라는 날짜는 바꿀 수 없지만 변전소 공격 계획이 무산된 이상 밤보다 새벽 시간을 노려야 한다(...)"/357쪽



이사오의 계획(?)은 물론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달리는 말>에서 하고 싶은 주제도 '계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지금 우리나라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는 바람에 할 말이 없었을 뿐이다.. 정신을 조금이라도 차려 보고 생각한다면, 이사오가 왜 계엄에 대해 목숨을 걸었는가에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상이 문제였다. 그래서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면 교육과 사고의 균형적인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사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일절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궁금한 건 이사오 스스로의 생각이었는지, 이누마가 기요아키에게 하듯,자신의 아들에게 우익사상을 심어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달리는 말에게, 의심과 균형적인 정신은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셈이다. 이누마는 그저 인간세상의 복잡함을 피력할 뿐이다. 궤변인지,그것이 그를 지탱하게 만든 힘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아들에게 그의 마음이..정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기요아키와 다네시나의 관계, 이사오와사와의 관계가 흥미롭게 보였다. <달리는 말>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다네시나... 그러나 사와는 왠지 <새벽의 사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사토코와 닮은 듯  보인 마키코의 미래도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은 듯 했던 인물 호리중위도 궁금하다. <봄눈>에 이어 <달리는 말>의 마지막에도 죽는다. <새벽의 사원>에서도 누군가가 어쩌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서기행'은 맞는 듯 하다. 책을 소개한 책들 (특히 고전이라 불리워지는 책들..) 목차를 보면서, 읽은 책 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은 경우는 실로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나쁜 책' 이라 분류된 책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구나.. 여전히 읽고 있지 못하는 '북회귀선' 과 '포르노그파이아' 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책과 작가도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나쁜 책이어서가 아니라,그냥 읽어 낼 자신이 없어서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다.









분명 책장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는데...없다. 이제는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이란 제목보다, '일본731부대를 추적한 천재 소설가' 라는 표현이 시선을 끌었다. 지금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읽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무튼, '일본 내 출간만 거절 당했던 작품' 이란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본입장에서는 '금서' 그 자체였을 터.그래서 역사에...를 찾아보았는데, 우리나라도 출간이 되지 않았나 궁금하던 순간 <종이 동물원>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란 사실을 알았다. 


"소설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은 켄 리우의 단편 14편이 실린 <<종이 동물원>> 맨 끝에 수록됐는데 일본에서는 이 소설만 빼고 작품집을 펴냈습니다.(...)중국어판에는 공산당을 비판한 대목이 곳곳에서 삭제된 채 출간됐다고 전해집니다.한중일 가운데 이 소설을 온전한 형태로 읽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86쪽




필라하러 가는 길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 잠깐의 휴식 동안 책 한 권 읽어 볼까 하고 들렀다가, 눈에 들어와 챙겨 오게 되었는데... 읽을 운명이었나 보다 '금서'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웠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유로 켄리우의 <종이 동물원>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천에는 '소설'이란 책방이 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책방과 같은 이름의 책 <소설>을 구입해 왔는데, 너무 재미나게 읽어서,다시 책방소설에, 갈 수 있는 날을 고대했다. 그곳에서 구입하게 되는 책들은 뭔가 특별할 것 만 같아서... 그렇게 책방을 둘러 보고 눈에 들어온 책이 <쓰는 여자, 작희>다. 촌스러운 제목이었지만, 현장에서 몇 페이지 읽어 보면서 망설임 없이 챙겨왔다. 


제목 그대로 '쓰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작희'라는 인물을 통해 과거로 여행을 가게 된다. 덕분에 옛날 여성 작가들이 글쓰기에 어떤 고충이 있었을까 상상해 볼 수 있었다.물론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여정이 아주 매끄럽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어쩔수 없이 작위적인 느낌..뻔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 그런데 이야기 사이사이,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이 집요하게 나를 따라왔고.. 나는 표절이란 단어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더 정확하게는 표절작가에 대한 주변인의 반응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얼마전 카페창비에 갔다가 여전히 표절작가의 책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표절작품이 아닌 것 까지 매도당할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생각도 들고,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들었다는 기억이 없는 터라..표절에 대한 출판사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하다


"내가 보니 오영락은 주변에 사람이 많아.그를 돕는 사람들중에 문인도 많고 심지어 일본 제국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공산주의자들도 있어.그들은 오영락의 잘못을 한 번의 실수로 눈감아주자고 주장할 거야.어쩌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너에게 함구하라고 강요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너를 창녀로 만들고 모함할지도 모르겠다.왜냐하면 너는 힘이 없지만 오영락은 이미 하나의 권력이 돼버린 사람이야.(..)"/251쪽



'쓰는 여자, 작희' 는 제목처럼 '쓰기'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한 소설일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표절'이란 화두로 돌아오고 만다. 쓰기에 대한 열망이 표절도 허락(?)한다면, 그건 쓰기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어떠한 권력에 오르고 싶은 건 아닐까...잠시 이성을 잃었다는 영락의 말은 그래서 모르겠다. 자기고백인지, 궤변인지.. 그러니까 쓰기에 대한 진심은 영락 보다 작희가 아니었을까.자신의 작품이 도둑맞았다는 것 조차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벽에 부딪쳤지만,쓰다는 건 어쩌면 끝임없이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신을 증명하다 보면, 나만의 문장도 만들어질테니까... 역사 속 여자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살았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표절이란 암초를 만나게 했고..그럼에도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수 있어 좋았다. 


"제 어머니는 특히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잘 키우라고 가르치셨어요.글쓰기의 욕망은 생물과 같다고"/14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