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피소드에서 윌리엄 팩스턴의 '하녀'를 보다가 소르라치게 놀랐다. 청소는 하지 않고,책 읽기에 빠진 하녀모습에 시선을 온통 빼앗긴 탓이다... 숨어 있는 하녀를 발견(?)하고 눈에 들어온 책은 허수경시인의 <오늘의 착각> 도서관에서 빌려와 첫 페이지를 펼쳤다니 암호(?)같은 숫자는 나의 생일..신기한 일이구나 싶으면서 휘리릭 넘긴 페이지에 시선 고정.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서인가 더 격하게 공감...^^


제사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방문하는 것을 가정 혹은 착각하려는 예의를 갖춘 시간이다. 준비된 착각의 시간,이것이 제사이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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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뉴스(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가 넘쳐나는 것도 어쩌면..모르겠다.


진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막상 진실을 알게 되면 너무 간단하고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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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동네 가서 영화 보고..어슬렁 거리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고 싶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따라 걷다가.이름도 재미나고, 에스프레소를 마실수 있어 냉큼 들어갔다.



카페의 이름은 파란만잔..물론 이때까지는 그냥 재미난 카페이름이라고(만)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고 책방 걷는토끼로 이동했다. 호젓한 곳에 있어 좋고, 나도 이곳에 책방..을?? 내볼까(쉬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생각하며, 읽은책, 읽고 싶은책을 살펴보다가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가 눈에 들어왔다, 막 읽기를 끝낸 이주혜작가님이 번역했다는 사실이 반가워서 펼쳐보았는데, 첫페이지를 읽자 마자 구입결정.함께 나들이해준 친구가 기꺼이 선물로 사주었다는


"그건 소지지가 아니었어. 살라미였지" 얼마 후 그 일은 도시의 저명한 잡지 한 곳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파란만장한 사건으로 기사화되었다(...)"/ 15쪽











'도묵맞은 살라미 이야기' 였는데, 도둑도,살라미..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파란만잔과 파란만장...으로 신나게 웃었다. 현실에서 일어난 에피소드가, 이야기 속에서 묘하게 마주치게 될 때의 그 기쁨은.. 책 읽는 독자만이 누릴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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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걷는 토끼를 가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1분(?)도 안되는 거리에 에피소드책방이 있었다. 서재같은 책방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연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틀어 놓으신 음악을 들으며 지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시선에 꽂힌 그림 한 점..



'하녀' 다' 그러나 하녀라는 제목보다, 책읽는 여인을 떠올리때마다 보게 되는 그림인데... 매번 책읽는 여인에 집중한 나머지. 그림 제목을 '하녀'로 한 이유에 대해서도 종종 궁금증이 있긴 했다. 



또 다른 하녀가 그림 속에 숨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누군가 오마주한 그림은 아닐까 생각했다. 보고 또 보았던 그림인데. 정작 '하녀'를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인과 한참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에피소드 라는 책방 이름에 딱 어울리는 추억을 우리가 만들었다며..그렇게 또 한참을 웃고 나서 지인에게는 김소연 시인의 책을 선물했고, 나는 눈독 들인 책을 메모해왔다. 그림에피소드와 너무 어울리는 제목 같아서,시인의 글은 어렵지만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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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메가를 찾았다. 궁금했던 뮤지컬이었다. 그런데 정작 창작극이란건 공연을 보다가 알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순간순간 지킬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자기애가 너무 넘치는 프랑켄슈타인이란 생각을 했다.원작을 여러 번 읽으면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 프랑켄슈타인..이란 생각을 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아, 예전 리뷰를 찾아보았더니, 나는 박사를 '오만' 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게 맞다. 그러니까,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보며 느낀 내 감정은 과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누군가는 그의 절규가 마냥 안타깝게 느껴질테지만, 원작이 내게는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는 탓에, 그의 절규는 이제 공허하다.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절규를 하기 이전에 괴물을 만들어낸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했다. 그가 오만하다고 느낀 이유를 찾았다. 박사는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거다(어쩌면)  어린시절의 불안과 공포 죽음이 그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하는 건  앞으로도 박사와 같은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면죄부 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스크린으로 보는 공연이라고 해도 문제 되지 않을 만큼 좋았으나, 간혹 배우들의 발음이 새는 듯한 대사와,작위적 코믹요소는 웃기지 않았다.










역 효과인지,독자의 마음 가짐이 오롯이 프랑켄슈타인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무튼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박사의 절규와 고통과 후회와 공포와 불안이 읽혀졌다. 처음 읽을 때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두 번째로 읽을 때는 재판을 통해 괴물의 형상들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상상했다. 연극으로 보게 된 프랑켄슈타인에서는 피조물의 절규가..그리고 소설에서도 역시 피조물에 대한 연민과,박사의 이기심이 원망스러웠는데..세 번 째 읽기에서야 비로소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던가에 대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앞서 두 번 읽기에서 박사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라 생각했었던 거다.해서 그는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걸까..생각했는데..시작에서 부터 끝까지 거의 박사의 생각으로 꽉꽉 차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조물에 대해서 만큼은 마음으로부터 사과하지 않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어쩌면 그의 정신이 거기까지 갈 수 조차 없을 만큼 피폐해져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믿고,성공을 기대했고,그러나 기대와 달랐던 상황에서 인간은 결코 이성적인 사고를 작동할 수 없었음을...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지만,그렇게 한 것 자체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그는 절규하듯 토해내고 있었다.그런데 나는 이제서야 프랑켄슈타인의 그 절규가 들린거다.어디 그 뿐인가,친구인 클레르발을 통해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알게 된다.그렇게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겠지만.그는 절규하듯,사람들에게 고한다.다시는 나와 같은 전철을 사람들이 겪지 않기를.(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괴물이 되어 또 다른 괴물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괴물의 시선으로 읽게 될 때는,누가 진짜 괴물인가?에  대한 물음이 따라왔다면,박사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는 건 오만함의 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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