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8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벽돌책 <저주받은 도시>를 읽기에도 벅찬데, 그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책들이 있어..실질적인 페이지 분량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다시 읽고 있다. <저주받은도시>에서 이 책의 원제목을 언급한 바람에...전혀 기억나지 않는 나를 원망하면서..말이다. 특별판 표지를 보는 순간, 원 제목의 비밀은 풀렸다.



그리고 소설에서 언급된 꼬마 검둥이이야기는 열 꼬마로 시작해서 한 꼬마가 외롭게 남았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45쪽 예전에 재미나게 읽었음이 분명하나, 스포일러가 될까봐 리뷰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다만, 여전히 저 이야기 끝의 결말을 아직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흥미롭게 읽고 있다. <저주받은도시>만 읽기에도 벅차지만..진짜 제대로 벽돌책..쌓는 기분으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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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 받은 도시' 제목 자체(에만) 집중하기도 버거운 이야기. 그러나 불쑥불쑥 격하게 밑즐 긋고 싶은 장면들이 보인다. 수없이 길을 잃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지만..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일단 그것만이 목표다!!^^

실종 사건은 테러 분위기를 부추기기 위한 평범한 살인 사건으로 변모한다. 헛소리와 위험한 속삭임과 거짓의 혼돈 속에서 지금도 계속 활동 중일 정보원들을 불길한 안개를 드리우는 중심을 찾아야 한다..../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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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너는 왜 자꾸 무덤 옆을 서성이는 거냐고 내가 따져 물었을 때 너는 영영 입을 다물어 버렸다.무덤 아니고 왕릉이라고, 하다못해 문화재로 공들여 가꾼 공원이라고 항변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너는 그러지 않았다"/85쪽


<여름철 대삼각형>을 읽을 때 콕 찍어 내가 찾아갔던 천문대이름이 언급되서 반가웠다. 타로이야기는 보너스 받은 기분마저 들었다. <걷다>에 실린, '유월이니까' 에는 왕릉이 언급되서 반가웠다. 왕릉 가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 마음을 들킨것 같아 놀랐다, 역사공부가 아니라, 산책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말할때 살짝 부끄러워서, 역사공부는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항변을 한다. 그런데 이야기 속 커플은 왕릉이몽인 듯 하다. 나 역시 무덤은 맞지만, 무덤이란 느낌을 받을 수 없어 좋지만, 무덤이라 생각할 때도 있어 좋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 그러니까 아둥바둥 살 필요도, 치고박고 싸우는 일도 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그러나 현실은 결코 우리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며, 누군가를 미워하고,원망한다. 왕릉이 등장한 관계로 마냥 말랑말랑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절반(만) 그랬다. 


"남의 불행을 듣는 건 어찌 보면 조금 흥미롭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불행과 비교해 위안을 얻기도 하는 꽤 묘한 악취미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98쪽



모호한 이야기처럼 읽혀지는 순간도 있었다. 내 이야기인듯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처럼 흘러가는 바람에.그러나 덕분에 왕릉 다니는 그를 이해할 수도,같이 걷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까.  역사 공부를 위해 왕릉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숲길처럼 만들어진 길이 좋아 걸었다. 무덤인데, 무덤 같지 않은 공간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그러니 복잡한 내 마음도, 실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다. 산책을 목적으로 왕릉을 찾지만, 그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역사를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인간의 알량한 욕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된  이들의 기록은,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무덤이란 공간은 죽은자들의 공간인, 동시에 산자들에게 끝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해 주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살려고 걷는 다는 어느 여자의 절규를 읽는 순간, 나는 알았다. 살고 싶어서 오히려 죽어 있는 공간을 걷고 싶었던 건지도. 올 가을 원없이 왕릉산책 해야 겠다. 알라딘에 계속 보이는 신간 제목의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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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선 얼마나 사신 거예요?"

"몰라 한 삼십 년 되나? 중동이라면 이제 아주 지긋지긋해"

"그럼 이번에 아예 서울로 이사 가시는 거예요?"

"영감도 없는 마당에...나 혼자 중동에 있으면 뭐해..."

중동과 기침.. 중동에서 삼심 년.. 그리고 잔기침..."/ 40쪽 '타인 바이러스' 중











"(...) 그러다가 내 옆의 남자가 내게 중동에 관해 물었어. 이집트에도 박물관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지.남자가 물었어. "거기 공동도서관 상태는 어떤가요?"/94쪽



'타인 바이러스' 라는 제목을 몰랐다면, 중동을 나는 특별(?)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게다. 바이러스와 중동..을 깊게 생각하다가.그만 작가의 함정에 빠져 피식 웃음이 났는데, 리디아 데이비스 이야기집에서 또 '중동'을 만났다. 중동에 대한 인식은..이렇게나 비슷한가 생각하다가, 작가의 마지막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 한 일들이 현실에서 아물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소설에서 '중동'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데, 하루에 두 번 서로 다른 책에서 중동을 마주쳤다.^^


"우리 작가들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생각하지만,언제나 현실이 훨씬 더 나빠!"/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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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을 지인에게 선물해 주고 나서 웬만해선...도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아주아주 짧은 소설이란 주제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작가마다 호불호야 있겠지만, 이 시리즈 챙겨볼 생각이다.목차를 살피다가 '제사'(전야)가 눈에 들어와 반가웠다. 마침 허수경시인의 <오늘의 착각>에서 '제사'에 관한 단상을 읽은 터라 그랬다.


제사는 죽은 자가 산 자를 방문하는 것을 가정 혹은 착각하려는 예의를 갖춘 시간이다. 준비된 착각의 시간,이것이 제사이다/60쪽 <오늘의 착각> 중에서



시인을 통해 들은 '제사'는 앞으로 제사 문화가 좀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면, 아주 짧은 이기호작가의 '제사'는 웃음짓게 했다. 제사문화가 여전히 행복한 집들도 있겠지만, 한 번쯤 제삿날 일어났을 법한 풍경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제사를 지낼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자식들 고생시키는 건 싫지만, 내가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도 섭섭한... 어릴적 복작복작 지내던 제사문화가, 이제는 성묘로 대체 되었는데..그러면서 좋아진 점은.소풍 가는 기분으로 성묘를 하게 되었다는 거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아닐까...아주 짧은 소설이었지만 '제사' 라는 주제는 결코 가벼이 생각할 주제가 아니다 보니..말이 길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사소한 말다툼이 차츰차츰 커지기 시작해
"자네들 아버지 돌아가시고 시골 땅 처분한 거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98쪽

"내일이 할아버지 제사니까, 할머니가 그때 죽는다고 했거든요. 그래야 제사도 한번에 지낼 수 있다고. 자식들 두 번 걸음 안 시킨다고"
나는 할머니가 내게 말한 것을 그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모두에게 말했습니다/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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