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대부분 사랑의 대상에 가해지는 폭정에 대한 불안한 요구일 뿐이다/213쪽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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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 읽은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다.(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다^^) 수없이 많은 문장을 메모할 방법이 있었으면 했다. 마음산책에서 <프루스트의 문장들>이 나왔다. 개인적 바람(?)은 '프루스트의 문장들' 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문장들이 주제별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 오랜만에 프루스트와 다시 만났고,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가 <프루스트의 마들렌> 제목의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에는 뭔가 또 아쉬워서 리뷰로 남길수가 없었다는~~



"이토록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차와 과자의 맛과 관련있다고 느꼈지만 그 맛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맛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리라 생각했다.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디서 포착해야 하는가? 나는 두 번째 모금을 마셨으나 첫 모금에서 느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보다 조금 더 못했다.그만 마실 때가 된 것이다.차의 효력이 줄어든 것 같았다.내가 찾는 진실은 차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은 내 정신이다"/46~47쪽 마들렌과 프티트 마들렌의 차이도 궁금했지만, 잃어버린...을 읽으면서 나는 정작 마들렌에 그닥 호들갑스럽지 않았더랬다. 다른 이야기가 더 나를 매혹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잃어버린...13편 즈음 가서 나는 마들렌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시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순간이 그 순간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 안에 시간의 범주로부터 벗어난 인간을 재창조한다.그리하여 그 인간은 비록 마들렌의 단순한 맛이 논리적으로 그 기쁨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쁨을 믿으며(....)"/ 38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3) 그래픽을 보면서 첫 모금, 두 번째 모금..으로 이어지는 상상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마들렌을 통해 프루스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벼운 낭만의 그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에는 마들렌과, 엄마, 그리고 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질베르트는 이미지가 몰입감을 방해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살짝 아쉬웠다. 다만 그녀를 자그맣게 표현한 지점에서..소설 속 화자가 그녀를 해바라기 했던 걸까..생각했다, 질베르트 보다 알베르틴을 통해, 질투의 화두로 잃어버린..을 읽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프루스트의 문장들>에서도 알베르틴이 내 눈에 더 많이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고. 잃어버린..을 읽기 전에는 스완의 사랑과 마들렌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줄 알았으나, 정작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알베르틴을 통해 사랑과 질투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와 주변 가족들을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 좋았지만, 세세한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마들렌'으로만 이 소설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가..생각했다.










"(....)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타인이 보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달의 정경만큼 알려지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예술 덕분에 단 하나의 세계, 즉 우리의 세계만을 보는 대신 세계가 증대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독창적인 예술가의 수만큼 서로 다른 다양한 세계는 무한히 지속되며 렘브란트나 페르메이르 같은 광원은 소멸한 지 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특별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30쪽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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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기념이 필요하다면 백발이 될 때까지 헤아려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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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멀홀랜드드라이브) 에서  '실렌시오'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반복적으로 나온다. 영화가 끝나고,의미를 찾아보았더니, 스페인이어로 '침묵'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미인초>에서 '정적'에 관한..글을 읽다가, 침묵과 정적에 대해 생각해봤다...'집착을 초월한 활기'....


정적만이 남았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가운데 그 고요함에 내 한 목숨을 의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세상 어딘가로 통하는 내피는 고요하게 움직이는데도 소리 없이 해탈한 심경으로 몸을 토목으로 여기고 하지만 어렴풋이 활기를 띤다. 살아 있다는 정도의 자각으로 살아서 받아야 할 애매한 번민을 버리는 것은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벗어나 하늘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집착을 초월한 활기다/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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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하고 싶은 카페가 있다.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란 뜻이다^^) 어느날 소세키전집이 눈에 들어왔다.지난해 현암사시리즈를 완주한 기쁨을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북카페도 아닌...커피를 마시는 곳에서 '우미인초'가 눈에 들오왔다. 소설과 우미인초의 어느 지점을 살려냈을까..궁금했으나, 카페는 정신없이 바빴고, 나는 우미인초를 구입해 돌아왔다. 다시 <우미인초>를 읽고 싶어졌다. 현암사시리즈 가운데 다시 읽게 된다면 '우미인초'부터 읽게 될 거라 생각했던 예감이 맞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얼마전 일드에서 소세키의 <우미인초>가 다시 언급되는 장면을 보면서..다시 우미인초가 읽고 싶어졌다. 일년만이다.무엇보다 '봄'에 읽어야 하는 소설인걸까 생각했다.^^




"산으로 접어드니 봄이 깊어지는데,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아직 눈이 남아 있어 추울 거라고 생각하며 올려다보는 봉우리 기슭을 뚫고 어두운 그늘로 이어지는 완만한 외줄기 오르막길 저쪽에서 오히라메가 온다. 교토의 봄은 끊이지 않는 소의 오줌 줄기처럼 길고 적막하다"/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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