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 읽은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다.(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다^^) 수없이 많은 문장을 메모할 방법이 있었으면 했다. 마음산책에서 <프루스트의 문장들>이 나왔다. 개인적 바람(?)은 '프루스트의 문장들' 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문장들이 주제별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 오랜만에 프루스트와 다시 만났고,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가 <프루스트의 마들렌> 제목의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에는 뭔가 또 아쉬워서 리뷰로 남길수가 없었다는~~



"이토록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차와 과자의 맛과 관련있다고 느꼈지만 그 맛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맛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리라 생각했다.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디서 포착해야 하는가? 나는 두 번째 모금을 마셨으나 첫 모금에서 느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보다 조금 더 못했다.그만 마실 때가 된 것이다.차의 효력이 줄어든 것 같았다.내가 찾는 진실은 차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은 내 정신이다"/46~47쪽 마들렌과 프티트 마들렌의 차이도 궁금했지만, 잃어버린...을 읽으면서 나는 정작 마들렌에 그닥 호들갑스럽지 않았더랬다. 다른 이야기가 더 나를 매혹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잃어버린...13편 즈음 가서 나는 마들렌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시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순간이 그 순간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 안에 시간의 범주로부터 벗어난 인간을 재창조한다.그리하여 그 인간은 비록 마들렌의 단순한 맛이 논리적으로 그 기쁨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쁨을 믿으며(....)"/ 38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3) 그래픽을 보면서 첫 모금, 두 번째 모금..으로 이어지는 상상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마들렌을 통해 프루스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벼운 낭만의 그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에는 마들렌과, 엄마, 그리고 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질베르트는 이미지가 몰입감을 방해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살짝 아쉬웠다. 다만 그녀를 자그맣게 표현한 지점에서..소설 속 화자가 그녀를 해바라기 했던 걸까..생각했다, 질베르트 보다 알베르틴을 통해, 질투의 화두로 잃어버린..을 읽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프루스트의 문장들>에서도 알베르틴이 내 눈에 더 많이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고. 잃어버린..을 읽기 전에는 스완의 사랑과 마들렌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줄 알았으나, 정작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알베르틴을 통해 사랑과 질투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와 주변 가족들을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 좋았지만, 세세한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마들렌'으로만 이 소설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가..생각했다.










"(....)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타인이 보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달의 정경만큼 알려지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예술 덕분에 단 하나의 세계, 즉 우리의 세계만을 보는 대신 세계가 증대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독창적인 예술가의 수만큼 서로 다른 다양한 세계는 무한히 지속되며 렘브란트나 페르메이르 같은 광원은 소멸한 지 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특별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30쪽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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