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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들 ㅣ 창비세계문학 88
에밀 졸라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저녁이 되자 벌써 입씨름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은 재앙에 봉착해 있었다. 바브르 영감은 왕년의 공증인들이 왕와 그렇듯 성격이 회의적이고 데면데면해서 그런 것인지 유언장을 남겨놓지 않았다.(...)"/343쪽
원제목도 '집구석들' 인지는 모르겠다. ~집구석이란 표현은 왠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의미일 것 같아서. 제목에서 부터 얼마나 시끄러운 소설일지 가늠되는 바, 굳이 읽어볼 필요가..있나 싶었는데, <루공가의 치부>를 읽으면서, 다시 졸라선생의 소설을 한 권씩 읽어보고 싶어졌다.예전에 뜨문뜨문 읽었음에도, '집구석들' 속 인물들이 다른 이야기 속 인물들과 오버랩되는 느낌을 떠올리는 순간들도 재미난 지점이었다. 집집마다 시끄럽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마주하고 있는 현실들. 그런데 굳이 시끄러운 이야기를 평면적으로 그려 놓을 생각이라면 소설로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위선' 이었다. 조스랑부인처럼 눈에 띄게 보이는 위선부터, 남들이 눈치 챌 수 없을 바브랑 영감의 위선까지.. <집구석들> 을 읽는 내내 가장 재미난 장면이었다. 그가 남겨 놓지 않았을(아니 남겨 놓지 못한) 유언장..에 대해 나는 차마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그래서 그의 위선을 눈치채지 못했다며 미묘한 변명을 하고 있다.
"서로 합의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은 공동의 묵계로 오귀스뜨와 베르뜨 사이의 말썽은 1만 프랑 때문에 생긴 단순한 금전 문제의 싸움이라고 못 박아버렸다. 그래야 훨씬 더 깨끗하니까.(..)"/532쪽
패악에 가까운 조스랑 부인을 가장 많이 미워했던 것 같은데,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가장 덜(?) 위선적이었던 사람이었나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났다. 덜 위선적으로 살려고 애쓴 조스랑이 측은하면서도 답답했던 이유인데, 사회가,어느만큼의 가면을 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몰아 넣었기 때문은 아닌가...싶다. 위선을 두르지 않는 순간, 그는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문제적 인간으로 낙인 찍힐 것이 분명하니깐...위선을 강요하는 사회는 위험하다.